리허설-감동에는 리허설이 없다!
“오늘도 사랑의 전화가 변함없이 열려 있습니다.”
토요일, 방송 2시간 전.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생방송을 앞둔 스튜디오 안은 분주하다. 대본을 챙기고 카메라를 점검하고, 출연 가수들은 노래를 맞춰본다. 그래도 스태프들은 “리허설 때가 가장 여유롭다”고 말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최종 점검을 하는 리허설 시간에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정말 바쁘게 돌아갑니다. 특히 생방송이 있는 토요일은 오전에 더빙과 내레이션 녹음을 하고 VCR 편집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에 더 정신이 없습니다.”(오정근 PD)
‘사랑의 리퀘스트’는 지난해 12월 자그마치 방송 10주년을 맞았고, 3월1일 방송 500회를 맞았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기부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모인 성금은 600억원. 방송 안팎으로 4만명 이상의 국민이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을 이룬 데는 토요일 방송을 위해 뒤에서 뛰는 스태프 9명의 노력이 숨어 있다.
2004년부터 프로그램을 맡아온 오정근 PD는 매주 현장 ENG 촬영에 나선다. 몸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어려워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가는 그는 “현장에 나가보면 너무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조금만 도움을 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할 가정이 많습니다. 저희가 삶의 굴곡만 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웃들의 작은 행복까지 지켜주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사랑의 리퀘스트’ 팀은 이웃과의 나눔, 그리고 작은 행복 찾아주기 과정을 통해 “자신들도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지난 방송 10주년 특집 때는 방송 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을 담아 내보냈다. 이는 시청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제작진 스스로도 자신들의 땀의 결실을 되돌아보는 일이기에 보람됐다고.
생방송-이웃에 대한 관심은 늘 ‘on-air’
생방송. 긴장감만 감돌 것 같던 스튜디오 한쪽에서 한숨소리와 눈물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이날은 가난 때문에 위탁가정에 맡겨진 건이 웅이 형제, 7명의 식구가 단칸방에 모여 사는 시영이네 가족, 그리고 희귀근육병을 앓고 있는 쌍둥이 성선 은선 자매의 사연이 소개됐다. 성선 은선 자매는 9년 전 방송에 출연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들이 16세 사춘기 소녀로 자라나는 사이 몹쓸 근육병도 점점 진행돼 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방송을 위해 어려운 형편에 놓인 분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촬영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물론 원치 않는 부분은 공개하지 않지만, 방송 때문에 아이들의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고, 특히 성선 은선 자매처럼 예민한 시기에 방송에 노출돼야 할 경우엔 신경이 많이 쓰이죠.”(김혜옥 작가)
‘사랑의 리퀘스트’를 진행한 지 1년째 돼가는 김경란 아나운서는 처음 프로그램을 맡았을 당시엔 “사연을 객관적으로 보려 애썼다”고 한다. 그래서 가슴 아픈 사연을 보면서 울지 않으려 꾹꾹 참기도 여러 번. 하지만 결국 사연에 목이 메어 멘트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겨우 방송을 마무리하고 내려올 때 ‘오늘 내가 진행을 잘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주위 분들은 오히려 ‘그 사연을 보니 나도 가슴이 메이더라’며 공감해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사랑의 리퀘스트’에서는 뉴스에서처럼 머리로 정리하고 진행하기보다 사연에 몰입해 가슴으로 느끼는 대로 진행했어요.”
“이웃의 아픔을 한숨과 눈빛으로 공감하는 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눔의 하나”라고 생각한단다. 실제 방송을 보면 김 아나운서에게서는 매번 눈물을 눌러 담으면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 마음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는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방송 그 이후-떠나지 않는 훈훈함과 나눔의 기운
지켜보는 사람은 그 훈훈함 때문에 50분의 방송시간이 짧게 느껴지지만, 방송을 마친 제작진의 눈빛에는 어쩐지 아쉬움이 감돈다. 이날 ARS 성금 모금액은 3000만원 남짓. 평소 4000만~5000만원, 많게는 1억원에 이르던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우리는 시청률보다 모금액에 관심이 많습니다.(웃음) 전화 모금은 저희에게 단순한 ‘돈’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니까요. 오늘은 조금 아쉽네요.”(오 PD)
2004년 이후 ARS 성금 모금액은 갈수록 줄고 있는 추세다. 편성시간대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 PD는 ‘프로그램 콘셉트의 변화’에서 그 주된 원인을 찾았다. 예전에는 어려운 이웃들의 상황만 보여주고 도움을 이끌어내는 형태였다면, 2004년부터는 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 어려운 상황에 대한 동정에만 호소하기보다, 기부를 하나의 문화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ARS 성금 외에 직접 찾아와 기탁하는 고액 기부도 많아
이 때문에 ARS 성금 모금액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전체 모금액이 줄어든 건 아니다. 전화로 문의하거나 직접 찾아와서 기탁하는 고액 기부가 해마다 늘고 있기 때문이다. 모 기업은 방송 중에 모금된 ARS 모금액의 10%를 매번 기부하고 있으며, 행사 수익금을 기부하는 연예인 팬클럽처럼 다양한 형식의 기부가 늘고 있다.
성금에 대한 살림살이도 야무지다. 매달 후원금운영위원회가 열려 방송된 사연을 점검하고, 방송에 나가지 못한 사연 중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선별해 한 달 평균 50곳에 후원금을 준다. 병원 진료비 지원의 경우, 개인에게 직접 전달하기보다 해당 병원으로 후원금을 보내며, 빈곤 후원금을 탕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복지사를 통해 해당 가정의 형편에 맞게 나눠서 지급하는 등 모으는 일 못지않게 나누는 일에도 빈틈이 없다.
이제 10년, 그리고 500회를 넘긴 ‘사랑의 리퀘스트’가 지향하는 콘셉트는 ‘기부, 나눔은 즐겁다’이다. 이들은 ‘힘을 뺀’ 나눔과 기부를 확대하고자 한다. 생일에만 먹는 특별한 잔칫상이 아니라, 밥상에 늘 오르는 된장찌개처럼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돈뿐 아니라 자신의 재능이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로도 즐겁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 혹 ‘사랑의 리퀘스트’가 전하는 이야기가 그저 눈물에 그치더라도 그 의미는 작지 않다. 울음으로 들썩대는 어깨를 감싸 안고 등을 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나눔은 시작된 것이니까.
“오늘도 사랑의 전화가 변함없이 열려 있습니다.”
토요일, 방송 2시간 전.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생방송을 앞둔 스튜디오 안은 분주하다. 대본을 챙기고 카메라를 점검하고, 출연 가수들은 노래를 맞춰본다. 그래도 스태프들은 “리허설 때가 가장 여유롭다”고 말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최종 점검을 하는 리허설 시간에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정말 바쁘게 돌아갑니다. 특히 생방송이 있는 토요일은 오전에 더빙과 내레이션 녹음을 하고 VCR 편집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에 더 정신이 없습니다.”(오정근 PD)
‘사랑의 리퀘스트’는 지난해 12월 자그마치 방송 10주년을 맞았고, 3월1일 방송 500회를 맞았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기부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모인 성금은 600억원. 방송 안팎으로 4만명 이상의 국민이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을 이룬 데는 토요일 방송을 위해 뒤에서 뛰는 스태프 9명의 노력이 숨어 있다.
2004년부터 프로그램을 맡아온 오정근 PD는 매주 현장 ENG 촬영에 나선다. 몸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어려워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찾아가는 그는 “현장에 나가보면 너무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조금만 도움을 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할 가정이 많습니다. 저희가 삶의 굴곡만 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웃들의 작은 행복까지 지켜주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사랑의 리퀘스트’ 팀은 이웃과의 나눔, 그리고 작은 행복 찾아주기 과정을 통해 “자신들도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지난 방송 10주년 특집 때는 방송 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을 담아 내보냈다. 이는 시청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제작진 스스로도 자신들의 땀의 결실을 되돌아보는 일이기에 보람됐다고.
1997년 방송을 시작한 ‘사랑의 리퀘스트’는 3월1일 500회를 맞았다.
생방송. 긴장감만 감돌 것 같던 스튜디오 한쪽에서 한숨소리와 눈물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이날은 가난 때문에 위탁가정에 맡겨진 건이 웅이 형제, 7명의 식구가 단칸방에 모여 사는 시영이네 가족, 그리고 희귀근육병을 앓고 있는 쌍둥이 성선 은선 자매의 사연이 소개됐다. 성선 은선 자매는 9년 전 방송에 출연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이들이 16세 사춘기 소녀로 자라나는 사이 몹쓸 근육병도 점점 진행돼 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방송을 위해 어려운 형편에 놓인 분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촬영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물론 원치 않는 부분은 공개하지 않지만, 방송 때문에 아이들의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고, 특히 성선 은선 자매처럼 예민한 시기에 방송에 노출돼야 할 경우엔 신경이 많이 쓰이죠.”(김혜옥 작가)
‘사랑의 리퀘스트’를 진행한 지 1년째 돼가는 김경란 아나운서는 처음 프로그램을 맡았을 당시엔 “사연을 객관적으로 보려 애썼다”고 한다. 그래서 가슴 아픈 사연을 보면서 울지 않으려 꾹꾹 참기도 여러 번. 하지만 결국 사연에 목이 메어 멘트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겨우 방송을 마무리하고 내려올 때 ‘오늘 내가 진행을 잘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주위 분들은 오히려 ‘그 사연을 보니 나도 가슴이 메이더라’며 공감해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사랑의 리퀘스트’에서는 뉴스에서처럼 머리로 정리하고 진행하기보다 사연에 몰입해 가슴으로 느끼는 대로 진행했어요.”
“이웃의 아픔을 한숨과 눈빛으로 공감하는 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나눔의 하나”라고 생각한단다. 실제 방송을 보면 김 아나운서에게서는 매번 눈물을 눌러 담으면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 마음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는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방송 그 이후-떠나지 않는 훈훈함과 나눔의 기운
지켜보는 사람은 그 훈훈함 때문에 50분의 방송시간이 짧게 느껴지지만, 방송을 마친 제작진의 눈빛에는 어쩐지 아쉬움이 감돈다. 이날 ARS 성금 모금액은 3000만원 남짓. 평소 4000만~5000만원, 많게는 1억원에 이르던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우리는 시청률보다 모금액에 관심이 많습니다.(웃음) 전화 모금은 저희에게 단순한 ‘돈’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니까요. 오늘은 조금 아쉽네요.”(오 PD)
2004년 이후 ARS 성금 모금액은 갈수록 줄고 있는 추세다. 편성시간대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 PD는 ‘프로그램 콘셉트의 변화’에서 그 주된 원인을 찾았다. 예전에는 어려운 이웃들의 상황만 보여주고 도움을 이끌어내는 형태였다면, 2004년부터는 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 어려운 상황에 대한 동정에만 호소하기보다, 기부를 하나의 문화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ARS 성금 외에 직접 찾아와 기탁하는 고액 기부도 많아
이 때문에 ARS 성금 모금액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전체 모금액이 줄어든 건 아니다. 전화로 문의하거나 직접 찾아와서 기탁하는 고액 기부가 해마다 늘고 있기 때문이다. 모 기업은 방송 중에 모금된 ARS 모금액의 10%를 매번 기부하고 있으며, 행사 수익금을 기부하는 연예인 팬클럽처럼 다양한 형식의 기부가 늘고 있다.
성금에 대한 살림살이도 야무지다. 매달 후원금운영위원회가 열려 방송된 사연을 점검하고, 방송에 나가지 못한 사연 중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선별해 한 달 평균 50곳에 후원금을 준다. 병원 진료비 지원의 경우, 개인에게 직접 전달하기보다 해당 병원으로 후원금을 보내며, 빈곤 후원금을 탕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복지사를 통해 해당 가정의 형편에 맞게 나눠서 지급하는 등 모으는 일 못지않게 나누는 일에도 빈틈이 없다.
이제 10년, 그리고 500회를 넘긴 ‘사랑의 리퀘스트’가 지향하는 콘셉트는 ‘기부, 나눔은 즐겁다’이다. 이들은 ‘힘을 뺀’ 나눔과 기부를 확대하고자 한다. 생일에만 먹는 특별한 잔칫상이 아니라, 밥상에 늘 오르는 된장찌개처럼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돈뿐 아니라 자신의 재능이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로도 즐겁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 혹 ‘사랑의 리퀘스트’가 전하는 이야기가 그저 눈물에 그치더라도 그 의미는 작지 않다. 울음으로 들썩대는 어깨를 감싸 안고 등을 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나눔은 시작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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