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에 대한 마피아 갱 조직의 존경심이 종교적 경배와도 같다는 것을 느끼게 한 영화 ‘대부(The Godfather)’.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 분위기를 잘 전달한 탁월한 작명처럼 보인다. 그런데 천주교 측에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대부’라는 종교적 후견인 제도가 어떻든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 반가웠을까, 아니면 갱 집단을 연상시키는 것이 돼버려서 불쾌했을까.
영화 제목으로 처음 등장해 이제는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단어로 ‘다이하드(Die Hard)’가 있다. 영화 주인공인 형사 존 매클레인이 그야말로 ‘죽도록 고생하는’ 모습을 빗댄 제목은 영화의 흥행과 함께 신조어로 이름을 올린 경우다. ‘매트릭스’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매트릭스’는 기업체 등의 사업부서별 조직체제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이 용어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 이 말은 기계에 의해 지배되는 가상세계라는 뜻일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어떤 말을 대중화하고, 때로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의미나 이미지가 변용되거나 부차적인 의미가 주요 의미를 제치고 전면으로 나서기도 한다. 의미의 ‘역전’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계 괴물’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뭘까. ‘에이리언’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에이리언’이라는 말을 외계 괴물로 해석하는 것도 그 의미에 약간의 왜곡과 변용이 일어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에이리언이라는 단어의 원뜻은 ‘외계인’이라기보다는 ‘외국인’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할 대목이 있다. 우리 사회가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외국인=외계 괴물’이라는 현실의 일단이 비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요새 지상파 방송 오락프로그램에는 젊고 늘씬한 외국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다문화 흐름을 따라가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주로 서구 출신의 잘생긴 얼굴에 멋진 몸매의 여성들이 들려주는 유쾌한 대화에는 우리 주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는 외국인이라기보다는 외계 괴물과도 같은 ‘에이리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에이리언’이라는 말은 엉뚱하게도 한국 사회에 대한 은유가 돼버린 셈이다.
영화 제목으로 처음 등장해 이제는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는 단어로 ‘다이하드(Die Hard)’가 있다. 영화 주인공인 형사 존 매클레인이 그야말로 ‘죽도록 고생하는’ 모습을 빗댄 제목은 영화의 흥행과 함께 신조어로 이름을 올린 경우다. ‘매트릭스’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매트릭스’는 기업체 등의 사업부서별 조직체제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이 용어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 이 말은 기계에 의해 지배되는 가상세계라는 뜻일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어떤 말을 대중화하고, 때로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의미나 이미지가 변용되거나 부차적인 의미가 주요 의미를 제치고 전면으로 나서기도 한다. 의미의 ‘역전’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계 괴물’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뭘까. ‘에이리언’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에이리언’이라는 말을 외계 괴물로 해석하는 것도 그 의미에 약간의 왜곡과 변용이 일어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에이리언이라는 단어의 원뜻은 ‘외계인’이라기보다는 ‘외국인’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할 대목이 있다. 우리 사회가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외국인=외계 괴물’이라는 현실의 일단이 비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요새 지상파 방송 오락프로그램에는 젊고 늘씬한 외국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다문화 흐름을 따라가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주로 서구 출신의 잘생긴 얼굴에 멋진 몸매의 여성들이 들려주는 유쾌한 대화에는 우리 주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는 외국인이라기보다는 외계 괴물과도 같은 ‘에이리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에이리언’이라는 말은 엉뚱하게도 한국 사회에 대한 은유가 돼버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