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6일 박근혜 전 대표 캠프 관계자들이 아침 회의를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학교수, 변호사, 관료, 언론인 등 이른바 전문가 그룹이 이력서를 들고 ‘구애’에 나섰다.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는 이곳에 여의도 ‘인력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 그러나 각 캠프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하는 눈치다. 박근혜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이런 상황을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설명한다.
서울 여의도의 박 전 대표 사무실. 90여 평 사무실에 상근하는 참모는 모두 20여 명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경선에 나선 맹형규 의원의 캠프 멤버가 100명이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초미니 캠프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박 전 대표 캠프 측은 이 미니 캠프의 덩치를 곱절 이상으로 키워야 조직의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연설원고·조직관리 분야는 절대 부족
박 전 대표 캠프가 당장 보강해야 할 분야는 10개가 넘는다. 박 전 대표의 색깔과 정치노선, 대선전략 등을 ‘컨트롤’하는 기획분야를 비롯해 메시지(연설원고) 담당자도 충원해야 한다. 지방 일정 등이 겹칠 경우 박 전 대표는 하루 7, 8개 이상 서로 다른 성격의 연설문이 필요하다. 현재 인력으로는 그 연설문을 다 소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직을 담당하는 참모도 수혈 대상이다. 선거구도가 바뀌고 사이버 선거로 무게중심이 넘어갔다지만, 정치 일선은 아직 ‘아날로그식’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과 청년 조직을 맡아줄 인물은 지금 당장 뽑아야 할 정도로 분초를 다툰다. 새로운 각축장으로 떠오른 사이버 전선을 담당할 인력 역시 보강해야 할 ‘위크(weak) 포인트’로 거론된다.
공보팀 보강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 박 전 대표를 보좌하는 공보특보는 모두 3명. 이들은 임무를 분담하는데 이정현 구상찬 특보는 박 전 대표를 그림자처럼 수행한다. ‘강아지 특보’(사무실을 지키며 언론을 상대하는 특보) 역을 맡고 있는 신동철 공보특보는 잠시도 사무실을 비울 수 없는 처지. 이들은 지난 두 달 동안 대(對)언론 전쟁의 최일선인 국회 기자실을 한 번도 찾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500여 m 떨어진 이곳을 찾을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 신 특보는 “공보팀에만 2명 이상의 인원이 충원돼야 한다”고 말한다.
2월17일 이명박 전 시장 캠프 관계자들이 팬클럽 회원이 보내준 이 전 시장의 캐릭터를 점검하고 있다.
안국포럼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조직이 엉성하다”고 말한다. 이 전 시장의 맨파워가 조직을 압도한다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측근은 많지 않다. 따라서 네트워크를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부분의 참모들은 공감을 표한다.
‘김대업-김유찬’ 같은 돌발 이슈에 순발력 있게 대응할 만한 현장형 참모는 당장 영입해야 할 처지다. 캠프 내부를 컨트롤할 리더십을 갖춘 참모도 필요하다. 위아래 의사소통은 물론 유사시 캠프를 이끌 수 있는 팔방미인이 이상형. 네트워킹을 하기 위해서는 포용력, 재력, 전문성을 적당히 갖춰야 한다는 조건도 거론된다. 이 밖에도 공보, 홍보, 기획 분야도 더 많은 인재 영입을 기다리고 있다.
쇄도하는 이력서 정책이나 공약 쪽에 몰려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경우 경선 정국에서 일단 참모 영입에 주춤하는 분위기다. 열린우리당 정동영·김근태 전 당의장 진영의 인력시장은 썰렁한 분위기. 여권 내부의 통합문제가 정리돼야 시장도 활기를 되찾을 것 같다.
전국의 신진 기예들은 ‘빅2’ 진영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인을 통하거나 직접 이력서를 들고 캠프를 찾아가 자기 홍보(PR)에 열을 올리는 적극파도 많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캠프에는 하루 평균 10명 내외의 이력서가 전달된다고 한다. 일부 지망생들은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측에 동시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각 대선 캠프에 전달되는 이력서를 보면 외국 유수대학에서 공부했거나 국내 명문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대부분 중간에 사람을 넣어 이력서를 전달한다. 체면 때문에 직접 캠프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이력서를 들고 직접 후보 캠프를 찾는 학자들도 있다. 이른바 ‘폴리페서(정치꾼+교수)’들이다.
2002년 이회창 전 후보의 보좌역으로 일하다 최근 모 대선후보 특보로 활동하는 A씨. 그는 3월 초, 2002년 대선 당시 이 전 후보 캠프에서 ‘브레인’이라며 돌아다니던 수도권 소재 대학의 B 교수와 ‘감격적인(?)’ 해후를 했지만 기분이 찜찜했다. 수인사를 나눈 B 교수가 “같이 일할 수 있게 해달라”며 이력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A씨는 예의상 이력서를 받긴 했지만 사무실에 전달하지 않았다. 그가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각 캠프 참모들은 쇄도하는 이력서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캠프는 당장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경험과 자질을 갖춘 ‘선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쇄도하는 이력서는 정책이나 공약 분야 등에서 일할 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 분야의 네트워킹이 이미 끝났다는 점.
박 전 대표는 100여 명의 학자그룹을 통해 정책과 이슈에 대해 자문받고 있고, 이 전 시장 역시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자문단을 운영 중이다. 이 전 시장 캠프의 경우 이 자문단에서 경부대운하 등과 관련한 이론적 뼈대를 만들었다. 따라서 웬만해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기 어렵다.
그렇다고 전문가 그룹을 대선의 최전선인 캠프에서 활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론과 현실’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분 안 상하게 돌려보내기 묘안 백출
기자 그룹도 실무진 처지에서 보면 ‘답답한’ 그룹에 속한다. 그들은 뉴스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기능은 탁월하지만, 뉴스를 생산하는 기능은 약하다. 변호사 그룹은 “경직된 사고와 엘리트 의식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악평이 캠프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다.
각 캠프에서는 예를 갖춰 이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묘안을 짜낸다. “이력서를 두고 가면 연락하겠다”는 식의 고전적 방법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 이런 수법이 통하지 않는 지망생에게는 고강도 압박이 가해진다. “캠프는 자봉(자원봉사자)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급여를 한 푼도 주지 않는다”고 통보하는 식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인사들의 ‘신분 상승’과 ‘벼락 출세’를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작정하고 1년간 머슴생활을 자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들은 대선 캠프를 일종의 벤처기업으로 본다. 승률은 높지 않지만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한국의 정치문화가 마치 마약 같은 흡입력으로 그들을 여의도로 불러 모으고 있는 셈이다.
이력서를 옆에 낀 정치 지망생들의 ‘여의도 배회’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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