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와 배관선이 드러난 이리카페. 그러나 무선인터넷과 첨단 음향시설, 희귀 서적이 갖춰져 있어 누구나 자신의 작업실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뮤지션이자 이리카페 대표인 김상우 씨.
그러나 ‘홍대 앞’이 ‘관광지’로 인기를 얻으면서 비싼 임대료를 견디다 못한 대안공간들은 다른 곳을 찾아 떠났고,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메카였던 클럽들은 ‘춤방’으로 변신해 살길을 찾았다. 홍대 앞은 원기왕성함과 활력을 잃어버렸으며, 문화가 생산되던 공간에선 나른한 소비만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홍대 앞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2005년 홍대 앞에서 방황하던 두 ‘술친구’가 의기투합해 ‘이리카페’의 문을 열었고, 지금은 젊은 문화 생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황야의 이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니, 상업화된 홍대 앞과 순화된 주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계의 이리’들을 위한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겠다.
“원래 대중목욕탕 자리였는데, 공동 작업실로 얻으면서 먹고살 궁리도 해보자고 카페로 문을 열었어요. 카페 수익으로 생활도 해결하고, 여기 모이는 아티스트들과 연결되기 때문에 창작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김상우(33) 대표의 말이다. 그는 대표적 ‘홍대 앞’ 스타 밴드인 ‘3호선 버터플라이’와 ‘허클베리핀’ 멤버 출신으로, 지금은 혼자 작업을 한다. 또 다른 대표는 뉴욕에서 패션과 미술을 공부하고 작가로 활동 중인 이주영(33) 씨. 지금 이리카페 입구에 걸린 대작 ‘루돌프 이리’가 그의 작품이다. 눈빛은 매서운 이리인데, 연말 전시용이라 사슴처럼 뿔이 돋았다.
이리카페 사장과 직원들이 만든 ‘직장인 밴드’의 공연 모습.
오전 10시, 김상우 씨와 이주영 씨가 하루 교대로 카페 문을 열고 오후 2시가 되면 ‘직원’들이 슬슬 출근한다. 직원의 반은 작가, 반은 뮤지션이다. 시간나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일을 하기 때문에 사장님도 직원이 몇 명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한다.
특별한 전시가 없으면 직원들 작품이 벽에 걸리고, 때로 직원들과 김상우 대표가 ‘직장인 밴드’를 구성해 연주회를 갖는다. ‘재미삼아’ 시작한 ‘직장인 밴드’는 반응이 좋아 앞으로 몇 차례 더 시도해볼 계획이다.
이리카페의 공동대표이자 작가 이주영 씨가 그린 연말연시를 위한 이리 작품.
그러나 두려울 것 없는 이리들도 뛰는 임대료 앞에선 이맛살부터 찌푸린다.
“이 동네, 정 떨어져요. 왜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지 늘 자문하면서도 떠나질 못해요. 그게 정말 이상해요.”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그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한 점은 그들처럼 야성을 가진 이리들이 어슬렁거리기에, 홍대 앞이 여전히 그 ‘홍대 앞’임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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