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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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잔혹… 일상과의 근접조우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7-03-05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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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기… 잔혹… 일상과의 근접조우

    전경,‘머리쌓기(Pile of Heads)’.

    아바타, 도플갱어, 사이보그, 구체관절인형, 심지어 다마고치에서 포켓몬, 디지몬까지 각종 인공적인 창조물들이 범람하는 시대다. 월트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이나 영화 속 주인공 캐릭터는 이미 구식이다. 개개인이 창조한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컴퓨터게임과 사이버 문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룹쇼’전에 한국, 일본 출신 젊은 작가들의 ‘캐릭터’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혜림은 게임에 등장할 것 같은 ‘토키’라는 여자 캐릭터의 젖가슴과 젖꼭지, 성기, 입술, 눈, 엉덩이 등 몸의 조각들을 파편화해 보여준다. 그것은 ‘옵세션(Obsession)’이라는 향수 속에 담겨 있기도 하다.

    전경의 그림들에는 벌거벗은 소녀와 소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혓바닥이나 곱고 길게 딴 머리카락으로 결박돼 있거나 목이 잘려 있기도 하고, 소녀는 왜소한 남자의 성기를 자르기도 한다.

    일본 작가 히데야키 가와시마는 창백하고 몸통이 없는, 마치 유령 얼굴 같은 이미지를 그린다. 대부분 파스텔톤으로 그려진 그 얼굴들은 모두 커다란 눈을 살그머니 뜨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허공을 둥실둥실 떠다니듯 그려져 있다.

    와이피가 그려낸 캐릭터들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는다. 그들의 표정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동자 때문에 더욱 희극적으로 보인다. 눈에서는 방독면을 뒤집어쓴 토끼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어떤 캐릭터는 혀를 길게 뺀 채 목이 잘려 있는데, 목에선 피가 솟구친다. 이 캐릭터들은 그들의 행위나 묘사된 장면의 잔인함과 달리 무표정하기도 하고, 심지어 웃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장면에서 입술, 성기 등과 같은 욕구 부위가 직접적이고 반복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캐릭터들은 구강기나 항문기적 유아 상태로 퇴행한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상상은 매우 일상적이고 심지어 진부하기까지 한 것일지 모른다. 사실 우리는 참수, 성기 절단, 잔혹 살인과 같은 사건들뿐만 아니라 강박과 집착에 이르기까지 이미 일상적으로 이런 상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이런 캐릭터들을 만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왜 엽기, 도착, 잔인함에 대한 상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속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며 변종하는 희극적이고 냉담해 보이는 도착적 캐릭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사회가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상상의 시대가 눈앞에 닥쳐왔다는 반성일까. 3월4일까지, 국제갤러리,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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