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당국이 불법 체류 조선족들을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취급하고 있어 호주 한인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호주 이민성에 따르면 2005년 호주의 주요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한국 여권 소지자는 158명이다. 이는 말레이시아(588명), 뉴질랜드(171명)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이곳 불법체류자 수용소에 갇혀 있는 한국인도 419명이나 되고, 호주에 거주하는 한국인 중 비자가 취소된 사람도 1394명이나 된다.
한국 여권이 가짜임이 들통 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조선족 동포이거나 제3국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총영사관은 2003~2004년 가짜 한국 여권이 발각돼 호주 불법체류자 수용소에 머물렀던 458명 중 80% 이상은 한국 국적이 없는 사람들로 상당수가 조선족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0대 조선족 여성 김모 씨는 지난해 말 가짜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입국해 시드니에서 일하다 적발됐다. 김 여인의 겉모습은 한국인과 거의 같고 한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해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고 공항을 무사히 통과했다. 최근까지 한국 음식점에서 일하다 그의 행동거지를 수상하게 여긴 이웃의 신고로 이민성 직원에 의해 적발됐다.
값싼 임금 취업, 한인들과 일자리 갈등도
김 여인은 호주로 밀입국하는 다른 조선족 동포들처럼 중국에 있는 현지 브로커를 통해 가짜 한국 여권을 만들었다. 이에 들어간 비용은 약 200만원. 그는 비행기 값이 부족해 호주에서 일해 번 돈으로 갚기로 했지만, 브로커에게 빚진 돈을 다 갚지 못한 채 적발돼 더욱 막막한 처지가 됐다. 20여 년 전 호주로 이민 와 현재 형편이 어려운 조선족 동포의 편의를 봐주고 있는 한인교포 박모 씨는 “중국 여권으로는 호주 입국이 어렵자 위조가 용이한 한국 여권을 마련해 입국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호주 당국은 이러한 조선족을 단속하는 데 큰 애를 먹고 있다. 가짜 여권을 소지한 것으로 적발된 조선족은 외모가 한국인과 매우 비슷하고 한국어 또한 유창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이민성 직원들은 이들을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간주한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해 호주 한인사회는 조선족 불법이민이 한국인의 비자 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한국이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한창 몸살을 앓던 1999~2000년에 학생비자를 가지고 호주에 들어와 불법취업을 한 외국인 중 한국인이 4위를 차지했다. 그 영향으로 한국 유학생들의 비자 등급은 2등급에서 3등급으로 떨어졌다. 이후 비자 등급은 한국 정부와 한인들의 거센 항의로 우여곡절 끝에 다시 2등급으로 회복됐다.
한인사회가 불법이민 온 조선족을 곱지 않은 눈길로 보는 이유는 또 있다. 청소부나 식당 종업원, 건설 인부 등 3D 업종에 조선족이 값싼 임금을 받고 취업하는 바람에 한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불법체류 사실을 빌미 삼아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한인 고용주 탓이다.
이처럼 호주 한인사회에서는 조선족 불법이민으로 인한 한-한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조선족을 돕고 있는 한 한인교포는 “어쨌든 한민족인데 서로를 탓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