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이후 ‘21세기는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라는 구호가 나오고, 95년에는 일정 규모 이상 건축물 앞에 건축비의 1%에 달하는 미술품을 강제로 설치하게 하는 이른바 ‘1% 법’이 만들어졌지만, 문화가 세상을 지배할-이 말 또한 매우 반문화적이다-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1% 법 때문에 일부 작가들은 기업 총무과에 고개를 숙이게 되었고, 기업의 문화 후원금은 여전히 최고경영자와의 친분으로 결정됐다.
94년에 ‘문화를 통한 기업들의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하는 메세나(Mecenat)가 설립됐어도 그 역시 일정 규모 이상 기업들에 강제되는 ‘1% 법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기업과 예술 혹은 예술가들의 관계가 일방적 후원과 시혜가 아니라 ‘윈윈’을 목표로 하는 동등한 ‘파트너십’이 될 수 있음을 양쪽이 인식하는 데에는 그로부터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2005년 12월5일 열린 ‘기업과 예술의 만남’ 출범식은 바로 기업과 예술의 새롭고 동등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메세나 활동의 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개념은 서구의 메세나에서 일반화되어 기업은 예술가로부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고, 작가는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 첫 번째 시도라 할 수 있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 출범에서 가장 신선했던 건 1호 결연 기업이 많은 후원금을 내는 삼성도 아니고, ‘예술’적 광고를 밀어붙이고 있는 기업도 아닌 복음보청기(대표 이경택)라는 중소기업이라는 점이었다. 나아가 중소기업이라는 점보다도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체가 문화 마케팅에 나섰다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와 결연
가는 귀 드신 할아버지가 강아지를 발로 차며 ‘복음인지 볶음인지’라고 말하던 투박한 광고의 기억도 이 같은 편견을 만드는 데 한몫했을 것이고.
“하하. 보청기 업체 광고들이 아무래도 좀 거칠고, 유치하기도 하죠? 그래도 그 광고 꽤 인기가 있었어요. 애견단체에서 항의도 많이 받았고요. 지금은 수업시간에 돌아서서 칠판에 글씨를 쓰는 선생님이 보청기 덕분에 누가 떠드는지 다 안다는 내용으로 광고가 바뀌었어요.”
이경택(37) 대표 역시 보청기업체와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 미혼의 젊은 기업인이다. 한 달 전 서울 구로구의 벤처빌딩으로 사옥을 옮긴 복음보청기 사무실 역시 첨단 테크놀로지나 바이오 산업 연구소처럼 보인다.
“신문에서 ‘예술을 키우는 기업이 강하다’는 글을 본 뒤 계속 머리에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 메세나에서 ‘기업과 예술의 만남’ 결연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음악은 소리인데, 우리는 소리를 전달하는 회사이고, 1차 결연 대상으로 중소기업을 찾고 있다는 말에 바로 우리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1차 결연 신청 기업 중 유명 기업도 있었는데, 우리가 선정돼 더 기쁘고요.”
‘기업과 예술의 만남’ 출범식에서 이경택 대표는 6인조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 장상인 대표와 결연 사인을 교환했다. 결연을 맺은 복음보청기와 메이트리는 노인복지회관이나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음악을 전달하기로 했다.
“메세나에서 음악, 미술, 무용 등 여러 문화 장르 중 어떤 예술가와 결연을 하고 싶은지 묻기에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아카펠라 그룹이면 가장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메이트리가 결정됐지요. 그런데 메이트리는 제가 이전에 우연히 지하철 학여울역에서 목소리만으로 리듬과 멜로디를 공연하는 것을 열심히 들었던 그룹이었어요. 인연이 참 신기하죠?”
복음보청기를 설립한 사람은 이경택 대표의 부친인 이태한 씨다. 6·25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한쪽 귀에 심한 난청을 얻은 이태한 씨는 직접 박스가 달린 보청기를 사용하며 1981년 대구에서 보청기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보청기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때였는데 80년대 중반 복음보청기가 보급형 보청기를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보청기가 몹시 불편하고 성능도 떨어졌죠. 또 부피가 큰 보청기를 하고 다니자니 ‘귀머거리’라는 말을 들었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아는 절실한 마음에서 아버지가 보청기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보청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사용해보시고 품평을 해주시는 1등 소비자가 아버지세요.”
이 대표는 스스로 아버지 같은 난청자들의 처지가 되어 보기 위해 3일 동안 귀를 막고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처음엔 예민해지다가 화가 나기 시작해요. 남들이 대화를 하면 오해를 하기 쉬워지고, 특히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싶으면 뭔가 나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히스테릭해집니다. 저희 직원들도 모두 체험해보도록 권하고 있어요.”
실제로 난청 환자들은 대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즉, 잘 들리지 않아서 내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면, 상대방이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것이라고 미리 생각해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보청기의 기본 원리는 작은 아날로그 소리, 즉 작은 진동을 보청기 안에서 전기신호로 바꾼 뒤 다시 큰 소리, 즉 큰 진동으로 바꿔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계는 주변의 잡음까지 똑같이 큰 소리로 바꾸는 한계를 갖게 되는데, 최근 디지털 방식이 도입되면서 잡음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기술에서 큰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런 기술적 진보는 주로 스위스·독일 등 유럽에서 이뤄지는데, 이는 보청기 발전과 보급이 곧 사회복지 수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물론 보청기 기술의 이상은 자연 귀로 듣는 것과 똑같은 소리를 난청자가 듣게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학에서 전자공학과 무역을 전공하고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보청기 회사에서 보청기술을 연수한, 이력상으로는 전형적인 엔지니어지만, 취미로 드럼 연주에 심취했을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전에는 난청이 노화 현상이어서 보청기가 노인들이나 하는 것처럼 인식됐지만, MP3와 개인 헤드셋이 보편화된 요즘은 난청을 겪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음악은 들으면 점점 더 크게 들으려 하게 되어 젊은 사람들 중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난청을 가진 인구가 늘고 있어요.”
이 대표의 바람은 보청기가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조 기구라는 인식이 확대되는 것이다. 마치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하지만 보청기를 쓰느니 대화를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직까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청기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바로 옆에서 봐야만 알 정도로 작은 크기의 보청기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작은 삽입형 보청기들은 개인별로 귓속 모양의 본을 떠서 만드는 수공업적 과정을 거친다. 보청기 제조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면서도 마지막 단계에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야 하므로 보청기 한 개 한 개에 정성을 쏟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그가 경영을 맡은 뒤 적극적으로 문화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데는 보청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2005년 사회공헌팀을 발족한 복음보청기는 보상판매로 수거한 중고 보청기를 수리해 카자흐스탄에 보냈고, CJ 인터넷과 함께 소통에 대한 청소년들의 수기를 공모해 보청기를 기증하기도 했다. 오는 12월17일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클론 공연에서는 난청을 가진 클론 팬들에게 보청기를 기증할 예정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어머니가 쓸 보청기를 사러 온 적이 있어요. 아들이 보청기 가격이 비싸다며 어머니를 타박하는 것을 보고 저희 아버지가 그냥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런 사람을 돕는 것이 참 뿌듯한 일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난청을 가진 분들이 보청기를 사용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가 미소를 다시 찾게 되기 때문이지요. 청력이 좋은 분들보다 훨씬 잘, 더 자주 웃으세요. 제가 보청기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을 감사드릴 수밖에요.”
1% 법 때문에 일부 작가들은 기업 총무과에 고개를 숙이게 되었고, 기업의 문화 후원금은 여전히 최고경영자와의 친분으로 결정됐다.
94년에 ‘문화를 통한 기업들의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하는 메세나(Mecenat)가 설립됐어도 그 역시 일정 규모 이상 기업들에 강제되는 ‘1% 법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기업과 예술 혹은 예술가들의 관계가 일방적 후원과 시혜가 아니라 ‘윈윈’을 목표로 하는 동등한 ‘파트너십’이 될 수 있음을 양쪽이 인식하는 데에는 그로부터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2005년 12월5일 열린 ‘기업과 예술의 만남’ 출범식은 바로 기업과 예술의 새롭고 동등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메세나 활동의 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개념은 서구의 메세나에서 일반화되어 기업은 예술가로부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고, 작가는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 첫 번째 시도라 할 수 있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 출범에서 가장 신선했던 건 1호 결연 기업이 많은 후원금을 내는 삼성도 아니고, ‘예술’적 광고를 밀어붙이고 있는 기업도 아닌 복음보청기(대표 이경택)라는 중소기업이라는 점이었다. 나아가 중소기업이라는 점보다도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체가 문화 마케팅에 나섰다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와 결연
가는 귀 드신 할아버지가 강아지를 발로 차며 ‘복음인지 볶음인지’라고 말하던 투박한 광고의 기억도 이 같은 편견을 만드는 데 한몫했을 것이고.
“하하. 보청기 업체 광고들이 아무래도 좀 거칠고, 유치하기도 하죠? 그래도 그 광고 꽤 인기가 있었어요. 애견단체에서 항의도 많이 받았고요. 지금은 수업시간에 돌아서서 칠판에 글씨를 쓰는 선생님이 보청기 덕분에 누가 떠드는지 다 안다는 내용으로 광고가 바뀌었어요.”
이경택(37) 대표 역시 보청기업체와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 미혼의 젊은 기업인이다. 한 달 전 서울 구로구의 벤처빌딩으로 사옥을 옮긴 복음보청기 사무실 역시 첨단 테크놀로지나 바이오 산업 연구소처럼 보인다.
“신문에서 ‘예술을 키우는 기업이 강하다’는 글을 본 뒤 계속 머리에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 메세나에서 ‘기업과 예술의 만남’ 결연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음악은 소리인데, 우리는 소리를 전달하는 회사이고, 1차 결연 대상으로 중소기업을 찾고 있다는 말에 바로 우리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1차 결연 신청 기업 중 유명 기업도 있었는데, 우리가 선정돼 더 기쁘고요.”
12월17일 ‘클론’ 공연에 앞서 이경택 대표가 난청 팬들을 위해 보청기를 기증했다.
“메세나에서 음악, 미술, 무용 등 여러 문화 장르 중 어떤 예술가와 결연을 하고 싶은지 묻기에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아카펠라 그룹이면 가장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메이트리가 결정됐지요. 그런데 메이트리는 제가 이전에 우연히 지하철 학여울역에서 목소리만으로 리듬과 멜로디를 공연하는 것을 열심히 들었던 그룹이었어요. 인연이 참 신기하죠?”
복음보청기를 설립한 사람은 이경택 대표의 부친인 이태한 씨다. 6·25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한쪽 귀에 심한 난청을 얻은 이태한 씨는 직접 박스가 달린 보청기를 사용하며 1981년 대구에서 보청기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보청기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때였는데 80년대 중반 복음보청기가 보급형 보청기를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보청기가 몹시 불편하고 성능도 떨어졌죠. 또 부피가 큰 보청기를 하고 다니자니 ‘귀머거리’라는 말을 들었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아는 절실한 마음에서 아버지가 보청기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보청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사용해보시고 품평을 해주시는 1등 소비자가 아버지세요.”
이 대표는 스스로 아버지 같은 난청자들의 처지가 되어 보기 위해 3일 동안 귀를 막고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처음엔 예민해지다가 화가 나기 시작해요. 남들이 대화를 하면 오해를 하기 쉬워지고, 특히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싶으면 뭔가 나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히스테릭해집니다. 저희 직원들도 모두 체험해보도록 권하고 있어요.”
실제로 난청 환자들은 대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즉, 잘 들리지 않아서 내가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면, 상대방이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것이라고 미리 생각해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12월5일 ‘기업과 예술의 만남’ 출범식에서 메이트리 장상인(왼쪽) 대표와 결연활동 사인을 하고 있는 이경택 사장.
이 대표는 대학에서 전자공학과 무역을 전공하고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보청기 회사에서 보청기술을 연수한, 이력상으로는 전형적인 엔지니어지만, 취미로 드럼 연주에 심취했을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전에는 난청이 노화 현상이어서 보청기가 노인들이나 하는 것처럼 인식됐지만, MP3와 개인 헤드셋이 보편화된 요즘은 난청을 겪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음악은 들으면 점점 더 크게 들으려 하게 되어 젊은 사람들 중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난청을 가진 인구가 늘고 있어요.”
이 대표의 바람은 보청기가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조 기구라는 인식이 확대되는 것이다. 마치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하지만 보청기를 쓰느니 대화를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직까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보청기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바로 옆에서 봐야만 알 정도로 작은 크기의 보청기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작은 삽입형 보청기들은 개인별로 귓속 모양의 본을 떠서 만드는 수공업적 과정을 거친다. 보청기 제조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면서도 마지막 단계에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야 하므로 보청기 한 개 한 개에 정성을 쏟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그가 경영을 맡은 뒤 적극적으로 문화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데는 보청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2005년 사회공헌팀을 발족한 복음보청기는 보상판매로 수거한 중고 보청기를 수리해 카자흐스탄에 보냈고, CJ 인터넷과 함께 소통에 대한 청소년들의 수기를 공모해 보청기를 기증하기도 했다. 오는 12월17일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클론 공연에서는 난청을 가진 클론 팬들에게 보청기를 기증할 예정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어머니가 쓸 보청기를 사러 온 적이 있어요. 아들이 보청기 가격이 비싸다며 어머니를 타박하는 것을 보고 저희 아버지가 그냥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런 사람을 돕는 것이 참 뿌듯한 일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난청을 가진 분들이 보청기를 사용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가 미소를 다시 찾게 되기 때문이지요. 청력이 좋은 분들보다 훨씬 잘, 더 자주 웃으세요. 제가 보청기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을 감사드릴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