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차 퍼그워시 회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첫째는 한국총회의 대표자와 개막식의 주요 참석자들이 대체로 정치인들이란 점이다. 두 번째 놀라움이란 이 회의가 과학사에서 제법 유명한 모임이지만, 최근 뚜렷한 활동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우리나라에서 총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최근 활동이 부진하다는 평가는 물론 나의 과문(寡聞) 탓일 것이다.
퍼그워시는 캐나다의 한 작은 도시 이름이다. 1957년 7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퍼그워시에서 첫 회의가 열려 퍼그워시 이름이 붙었다. 정식명칭은 ‘과학과 국제 문제에 관한 회의’였다. 45년 미국이 원자탄 사용으로 전쟁을 끝내고 소비에트연방이 뒤따라 원자탄 개발에 성공하자 군비경쟁은 세계로 확산됐다.
군사경쟁을 줄이고 군비 감축을 위해 지혜를 모으자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게 이 회의였던 셈이다. 퍼그워시 회의를 이끌어낸 인물들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였던 아인슈타인과 그에 못지않은 명성을 가진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 등이다.
20여명의 과학자들이 퍼그워시의 한 자선사업가 저택에 모여 시작한 이 모임이 당시에는 세계적 주목을 끌어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95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퍼그워시 회의에 참석했던 과학자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로트블라트는 지금도 퍼그워시 의장인데, 이 모임을 통해 반핵운동을 펼친 공로로 그와 퍼그워시 회의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1908년 폴란드 태생인 로트블라트는 올해 96살로 미국의 맨해튼 계획에 참가해 원자탄 제조에 가담했던 핵물리학자다.
그런데 나의 의문은 다름 아닌 왜 한국총회에 한국 과학자 이름이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이름이 더 중요해서 과학자 이름 따위는 알릴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 참석자로는 회의 대표를 맡은 정치인과 개막 연설을 한 전직 대통령이 보였을 뿐이고, 과학자는 토론에 참석한 한 원자핵공학자 이름만이 눈에 띌 뿐이다.
그 이유는 한국 과학기술자들은 대체로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은 우리 역사가 과학기술의 문제를 주로 중인층에 떠맡기고 양반 지배층은 무관심해온 전통과 관련 깊다. 이런 전통을 필자는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중인(中人) 의식’이라 불러왔다. 이 같은 중인 의식 때문에 한국에서는 사회참여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과학기술자도 드물고, 그러고 보니 모처럼 한국에서 퍼그워시 회의가 열려도 이를 주도할 마땅한 인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편향성은 우리 사회의 이공계 기피로 연결된다.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과학기술자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