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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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몸이 만난 의료보험 혜택

  • 입력2004-09-23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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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내 몸이 만난 의료보험 혜택
    나에게 올 가을은 의료보험비 감액을 위한 분주한 발걸음으로 시작되었다. 셈에 약하고 돈 관리에 게으른 나로서는 요율을 계산하고 서류를 작성해 관련 기관을 순례하기란 만만치 않은 모험이었다. ‘의료보험 피부양자 자격상실’ 통지서가 날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금 문제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지낼 수 있었는데 말이다. 큰돈 만질 일도 없고 프리랜서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알아서 원천징수돼 입금되는 덕분이었다. 나에게 숫자란 그림 그릴 때나 장식으로 쓰는 활자에 그쳐 나로서는 버는 만큼만 요령껏 지출하면 문제 될 건 없겠지 싶었다. 그러나 내 이름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비로소 이 땅의 국민 된 도리를 무겁게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가족에게 빌붙어 세금의 일부를 해결해온 처지를 부끄럽게 의식하게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없던 부담이 갑작스레 생겼다는 피해의식이 컸다. 지난해 말 세대주 독립을 한 데다 지역보험 대상자인 만큼 적지 않은 금액이리라 각오는 했지만 부과된 보험료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2년 전 소득을 소급 적용한 결과라니 수입이 늘어난 만큼 앞으로의 부담액이 여기에서 수직 상승할 것도 불 보듯 뻔하다!

    스스로 북유럽과 같은 복지 체제를 오랫동안 동경해온 줄 알았던 나는 의료보험 납부자가 되자 순식간에 무정부주의자로 둔갑했다. 국가가 날 위해 무어 해준 것이 있기에 생전 구경 않고 살았던 의료 혜택을 위해 이런 부담을 감수해야 하나. 더구나 세대 단위로 부과되는 만큼 나와 같이 독립해 홀로 지내는 싱글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처지가 비슷한 여성 동지들을 만나 하소연을 나누다 보면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의 부담은 가부장사회에 독신여성들을 편입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인 것이 분명한 듯했다. 이런 문제로 결혼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이들이 꽤 여럿이니 말이다.

    취업이나 ‘취집’이 새삼스러운 처지라면 납부액의 부과 기준을 면밀히 검토하고 관련 서류를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한 다음 행동이리라. 부지런히 알아보니 과연 한 달에 7000원 정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없지는 않았다. 서류 절차를 위해 번거로운 걸음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답할 때마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보험공단 담당자들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일쑤이긴 했지만. 결국 서류 송신만 남겨둔 마지막의 그 뿌듯한 순간, 거짓말처럼 보험비 부담에 대한 불만을 일부 수정할 사건도 생겨났다.

    서류를 들고 신나라 하며 집 앞 언덕을 뛰어내려가다가 발이 꺾이며 치마가 뒤집힌 채 구르는 바람에 뼈는 부러지고, 들고 있던 증명 서류들은 피범벅이 된 사고였다. 진단 결과는 족근골 골절을 포함해 전치 4주. 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동시에 의료보험 혜택도 받게 되었다. 병원을 다녀보니 보험 혜택이 어찌나 요긴한지, 혹시 납입 일자를 놓쳐 불이익을 당하면 어쩌나 달력에 살뜰히 동그라미 그리는 변화가 남세스럽긴 하다. 도움받을 손 없이 목발을 짚은 채 일하고 학교를 다니려니 일상의 불편이 도적 떼와 같이 몰려와 국가가 신체 상해자나 장애우에게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시설에 대한 관심 역시 부쩍 늘게 되었다.



    국가기관의 강제성이 동반하는 폭력을 부정한다는 신념 자체가 바뀐 건 아니다. 그러나 내 몸이 어떤 실제적인 혜택과 만나는 순간 서비스 제공자인 국가는 관념적인 집단에서 떨어져나와 현실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특별히 나처럼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싱글이라면 도저한 위험들에 맞서는 방편으로 정부의 구제 제도에 기대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 보험비도 하향 조정되었으니 이제는 정당한 대가를 누리기 위한 지불에 대해서도 충실해보겠다는 소리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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