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북적이는 뉴델리의 한 대형 쇼핑센터.‘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로르의 한 IT업체의 풍경(위).최근 인도경제의 호황으로 번화가가 쇼핑족들로 붐비고 있다.
인근의 고급 주택가에 자리잡은 피트니스센터 앞도 차로 붐비긴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가장 비싼 차인 벤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중형 이하의 차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1년치 연회비 6만 루피(약 174만원)를 미리 내야 등록이 가능한 이곳에서 이미 수백명의 회원들이 체형관리를 하고 있으며, 매일 몰려드는 신입회원 때문에 센터측은 공간 확보를 고민하고 있다.
경제 특수 혜택 도농 격차는 커
과거 ‘빈곤의 나라’로 인식되었던 인도에서 최근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풍경들이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과 한 번의 파티나 여행에 수억원을 아끼지 않는 최상류층의 두 부류 사이에서 최근 ‘뜨고 있는’ 계층이 신흥 중산층이다.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중산층이란 계층이 지금에서야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의 꾸준한 수적 팽창과 갑작스러운 소비 패턴의 변화다.
새로 떠오른 중산층에는 도시에 거주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데 소프트웨어 기술자와 정보통신 분야 종사자, 특히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몇 년간 급속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정보통신·컴퓨터 관련 업종이 그 분야 관련 종사자들의 수를 늘리고, 그들의 삶의 질을 바꿔놓은 것이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벵갈로르에서는 미국 1000대 기업 중 30% 이상이 기술개발과 업무처리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GE, 루슨트 테크놀러지 등 굴지의 기업들이 인도에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삼성전자도 이곳에 소프트웨어 연구소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통계수치에 그대로 나타난다. 국내총생산(GDP)의 경우 2002 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에 4.3%였던 성장률이 2003 회계연도 상반기에는 7%로 뛰어올랐고, 하반기 실적까지 포함할 경우 7.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와 각종 업무처리 아웃소싱을 포함하는 서비스업은 8.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15년 통계수치에서 가장 급속한 성장세다. 1991년 사회주의식 계획경제에서 벗어나 신경제정책을 실시한 지 13년 만에 가시화되고 있는 성과다.
인도경제의 활황은 단순히 통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주식시장도 ‘폭발적’이라 할 정도의 신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3개월간 개인투자자들이 주식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700억 루피(약 2조3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각종 부가가치세, 수입관세 등에 대한 지속적인 하향 조정으로 가격 인하요인이 많이 생겼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률을 훨씬 밑도는 6%. 인도의 소비 붐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LG전자는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인도에서 열린 국제 크리켓 대회를 후원하기도 했다.
이 같은 가시적인 인도경제의 성과에 모든 이들이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강하게 제기되는 반론은, 이러한 요소 대부분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경제 특수로 실제 혜택을 입는 사람은 인도 전체 인구의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10%의 대부분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헐벗은 농촌의 현실이 드러나고, 대부분의 농민들은 경제적 혜택에서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는 게 많은 학자와 사회운동가들의 주장이다. 농촌 인구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어떤 경제학자는 2002 회계연도의 상황을 예로 들며 2003 회계연도의 고도성장은 적당한 강우량으로 말미암은 농업 부문의 실적(성장률 7.7%)에 힘입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002 회계연도의 경우 극심한 가뭄으로 농업이 3.2%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GDP도 4.3% 상승하는 데 그쳤다. 즉 인도의 성장률은 하늘에서 비가 얼마나 내려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정부 홍보 덕에 거품 많다” 의견도
또 많은 경제학자들은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 3차산업의 활황으로 인한 특수를 중국경제에 제조업이 기여한 정도로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경고한다. 인도의 산업구조는 아직도 농업의 비중이 가장 높으며, 경제발전의 근간을 이루는 제조업의 안정적인 성장 없이 서비스 분야의 증가만으로 경제성장을 노리기는 어렵고, 정보통신과 소프트웨어 분야 등은 대규모의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지금의 인도경제 성장은 정부의 지나친 홍보로 크게 부풀려져 거품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인도 정부는 올해의 총선을 의식해서인지 현 정권이 이룩한 경제발전을 홍보하는 데 40억 루피(약 1160억원)를 쏟아붓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제시하는 여러 수치들은 내용을 잘 알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주장하는 엄청난 외환보유고는 당장에라도 빠져나갈 수 있는 해외펀드의 투자액까지 더한 것으로, 과거에는 이런 투자금액을 외환보유고에 넣은 적이 없었다.
어쨌든 지금의 인도경제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소비 증가 추세가 이를 말해주고 있으며, 현지에 진출한 한국의 대기업들도 경제 활황의 수혜자다. 인도 승용차 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인도 현지법인은 올 2월 판매실적이 작년 동기 대비 109% 증가했으며 이중 68%를 인도 내수가 차지했다고 밝혔다. 또한 LG전자와 삼성전자도 가전제품 거의 모든 품목에서 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 회사들은 앞으로 폭발적인 수요 증대를 예상해서 생산망 확충을 계획하고 있다. 인도 재계순위 제1위의 릴라이언스 그룹 총수 무케시 암바니 같은 기업가는 이런 추세라면 2010년까지 매년 두 자리 숫자의 성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낙관론을 펴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과연 인도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해외자본의 투자와 잘나가는 중산층, 화려한 소비문화로 빛나는 대도시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문 닫는 중소 규모 국영기업과 내리는 비에 한 해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기아로 얼룩진 촌락에 있는 것일까. 현재의 경제성장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리고 얼마만큼이 실제이고 얼마만큼이 거품인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