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호박과 단호박을 섞어 만드는 호박죽은 산모, 위장이 약한 사람, 회복기 환자에게 좋다.
나도 예전에는 밥을 먹지 않고 잘 버티는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쌀을 먹지 않고 지나간 날은 무엇인가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직장 선배가 마흔 넘으면 밥 생각이 날 것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실감났다.
그래서 아침상 차리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면서 맛있는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나는 우리 입맛에 맞는 죽을 택했다.
동남아나 홍콩에 출장 가면 나는 우리 죽보다 훨씬 묽은 광둥식 죽을 먹는다. 메뉴에 ‘Congee’라고 쓰여 있는데 중국말 ‘꽁쥬’를 영어로 표기한 것이다. 홍콩의 호텔에 머무르게 되면 아침에 나오는 조식 뷔페에서 항상 이 ‘Congee’를 먹곤 한다. 홍콩식 죽은 일단 먹기가 편하고, 남쪽 지방 쌀 특유의 향이 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먹다 보면 아주 별미다.
죽은 밥보다 더 먼저, 솥이 이용되기 전부터 발달한 음식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쌀을 간 물에 우유를 넣고 쑤는 ‘타락죽’이란 것이 있었는데 궁중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영양이 많다.
쌀과 물의 분량을 조절하면 다양한 형태의 죽이 만들어진다. 흔히 말하기를 쌀의 1.5배 정도 물을 부으면 밥이 되고, 5~10배 정도 물을 부으면 죽이 된다. 죽을 쑬 때도 물을 많이 부을수록 먹기 쉬워지고 소화도 잘 된다. 최근에 아파서(T_T) 어지러워서(@u@) 죽을 많이 먹게 되었다.(이모티콘을 써보니 재미있네요.) 그런데 죽의 세계는 놀랄 정도로 다양하고 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의 달큰, 시원한 맛과 미역이 어우러지는 ‘게살미역죽’은 산모나 이유식 후의 아이에게 좋다. 검은깨로 쑤는 흑임자죽은 쌀보다 검은깨가 더 많이 들어가야 맛이 좋다. 황기인삼닭죽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좋은 닭죽에 황기나 인삼, 대추를 넣어 쑨, 병약자에게 좋은 건강 죽이다.(왼쪽부터)
죽에는 기호에 맞춰 넣도록 다진 파가 곁들여진다. 그리고 보통 달걀이 많이 들어간다. 죽 자체에 여러 재료가 들어가는 까닭에 반찬의 종류가 많지 않지만 따라오는 반찬으로는 젓갈과 물김치, 콩나물, 우엉 등이 있다. 김치의 매콤하고 신 맛, 젓갈의 강하고 짠 맛, 물김치의 시원함도 죽과 잘 어우러지는 맛들이다. 장조림도 반찬으로 자주 나오는 편이다.
쌀뜨물에 새우와 아욱을 넣고 된장으로 간을 하는 가을철 별미죽인 ‘새우아욱죽’(왼쪽)과 ‘쇠고기 애호박죽’.
서울 역삼동 상록회관 뒤 다화(02-508-3785),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 지하 2층의 미단(02-2112-2983),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 위의 송죽(02-2265-5129), 서울 중구 백병원 맞은편 서울골프 2층 죽향(02-2265-1058) 등도 추천할 만한 곳이다.
죽은 밥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노약자들의 음식으로 인식돼왔지만 최근에는 소화가 잘되는 건강식으로 되살아났다. 카페 같은 인테리어로 꾸민 죽집도 많아지고 신세대 음악이 흘러나오고 소파를 놓아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 곳도 많다. 대학가 신세대 죽집에는 치즈가 들어간 야채죽, 참치죽도 있다. 다양한 죽으로 건강한 아침, 활기찬 하루를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