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휴대전화 학생증을 이용해 책을 대출하고 있는 숙명여대 학생들(위).국제학생증 기능이 포함된 아주대학교의 스마트카드 학생증.
연세대 학생들은 학생증으로 지하철, 버스를 탈 수 있고 도서관이나 기숙사 출입도 가능하다. 강의시간에는 강의실 뒷문에 설치된 단말기에 이 카드를 한 번 갖다 대는 것으로 출석 체크를 끝낸다. 점심식사도 구내식당에서 학생증으로 결제하고, 문구점이나 매점 이용도 척척이다. 말 그대로 똑똑한 ‘스마트카드’가 캠퍼스 안에 널리 통용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풍속도다. 학생증이 신분증 역할에만 머무르던 시절 도서관 출입증, 현금카드, 교통카드, 신용카드를 따로 챙겨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융합, 컨버전스의 실현이다.
그래서 지금껏 스마트카드 학생증의 사용은 최첨단 정보화 캠퍼스의 실현으로 칭송받으며 확산 일변도를 걸어왔다. 2000년 성균관대가 처음으로 기초적 단계의 스마트카드를 도입한 이후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중앙대, 명지대, 인하대, 동국대, 과기원, 경희대, 삼육대, 성신여대, 수원여대 등이 속속 그 대열에 가세하며 기능과 쓰임새를 넓혀온 것이다. 최근 아주대는 국제 학생증 기능이 추가된 학생증으로, 숙명여대는 휴대폰에 들어간 칩으로 현금을 결제하는 ‘모바일 학생증’으로 다른 대학을 앞서는 ‘최첨단’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미래 고객 확보 ‘캠퍼스 마케팅’
대학들이 스마트카드 학생증을 도입하는 이유는 투명한 학사 행정과 교내 매장의 매출관리, 인원 감축 등의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 연세대의 경우 수천명이 한꺼번에 수강하는 채플 수업의 출·결석 체크를 스마트카드 학생증으로 바꿈으로써 매학기 조교 20여명을 투입하는 ‘인력 낭비’를 개선할 수 있었다.
첨단 캠퍼스의 이미지를 대내외에 알리는 홍보효과도 신입생 유치에 목마른 최근의 대학들이 스마트카드 학생증 도입에 앞장서는 또 다른 이유다.
하지만 이처럼 스마트카드 학생증이 확산되는 진짜 배경에는 수익원을 다양화하고 미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은행들의 ‘캠퍼스 마케팅’이 자리잡고 있다. 기초 시스템 구축에만 한 학교당 수십억원의 비용이 드는 이 사업을 대학측이 자체 비용으로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스마트카드 학생증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들의 경우, 비용을 투자한 ‘스폰서’가 모두 대학 안에 지점을 차린 제휴 은행들이다.
우리은행은 연세대를 비롯해 국민대, 중앙대, 경희대, 단국대, 삼육대 등 40여개 대학에 현금·교통카드 기능에 전자출결, 전자화폐 기능이 더해진 다기능 학생증을 발급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아주대, 동국대, 명지대 등에 다기능 카드를 보급했고, 조흥은행은 한양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천안기술교육대 등과, 하나은행은 고려대, 충남대 등과 다기능 학생증 사업을 제휴하고 있다.
서울대 연세대 등 전국 11개 대학에 다기능 학생증 인프라를 설비한 한국심트라 박준석 과장에 따르면 학생 수가 많은 학교의 경우 최초 설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40억~50억원 수준. 은행들이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기꺼이 투자하는 것은 전자결제시스템을 갖춘 학생증을 제작할 경우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계좌를 개설해 해당 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이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은행측은 상당한 부가수익을 얻게 된다.
이제 대학생들은 스마트카드 학생증 하나로 모든 학교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의 카드 리더기 밥값을 학생증으로 결제하는 모습. 전자결제 금액을 충전하는 카드 충전기와 학생증으로 출석을 확인하는 모습(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지만 바로 이 같은 금융권의 속내 때문에 일부에서는 스마트카드 학생증 도입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울대 학생들이 농협과 제휴해 2004년부터 스마트카드 학생증을 도입하려는 학교측에 맞서 전교생의 학생증 의무 발급을 저지한 것이 한 사례다.
서울대 학생들은 2003년 2학기부터 학교측이 스마트카드 학생증 일괄 발급을 추진하자 학내 반(反)감시모임 ‘뒷통수’ 등을 중심으로 ‘서울대 학생증의 미래에 대한 합의회의’를 열어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들은 “학생들의 정보를 집적해 의무적으로 금융권에 넘기도록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편리함 이면엔 언제나 위험”
홍상욱 당시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회의 패널로 참석해 “스마트카드의 첨단성과 보안기능 을 문제삼거나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학교가 아닌 농협이 학생 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집해 학생증을 발급하는 것, 이를 위해 모든 학생이 농협에 계좌를 만들도록 강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개인의 자기 정보 통제권 문제를 부각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대는 전교생에게 의무적으로 스마트카드를 발급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올해부터 희망자에 한해 카드를 발급하기로 했다.
역시 올 1학기부터 스마트카드 학생증을 일괄 발급하기로 한 방송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방송대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LG카드와 제휴해 방송대 학생증 겸용 체크카드를 발급한다”며 “이번 학기부터 기존의 학생증은 사용할 수 없다”고 고시했다. LG카드측에 개인정보를 주고 카드를 발급받지 않을 경우 도서관 출입 및 도서대출 등 학생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누릴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학교측은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학생들의 우려에 대해 “학교와 LG카드 간에 체결한 약정서에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공공기관의 개인정보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위반시 법적 책임을 지고 손해배상하도록 이미 약정되어 있으며, 학생증 발급신청서의 개인신용정보 활용동의서를 삭제해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대학 경영학과 4학년 김선기씨는 “방송대의 학생증 발급은 금융기관에 학사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학생들의 ‘자기 정보에 대한 통제권’ 등 정보인권을 침해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송대의 특성상 개인의 금융정보가 집적돼 원치 않는 이에게 보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 아닌가. 최근 LG카드의 유동성 위기 사태를 지켜보면 학생 신상정보가 과연 안전할까 걱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뜻을 같이하는 방송대 학생들과 함께 ‘스마트카드 학생증 일괄 발급’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스마트카드 학생증이 기존의 학생증에 비해 다양한 첨단 기능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자체 암호키가 내장됨으로써 보안 정도도 훨씬 높아졌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또 스마트카드 학생증의 기능들이 첨단 캠퍼스 구축에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집적과 이용을 가능케 하는 데 대해서는 통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컴퓨터 네트워크를 전공하고 있는 이동영씨는 월간 ‘네트워커’에 기고한 글을 통해 “ 편리함의 이면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도 후불교통카드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자신의 동선을 카드회사에 보고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여기에 신용카드 정보까지 더해지면 정보 집적은 더 엄청나다. 기업들이 교통카드와 신용카드에 위치추적이 가능한 이동전화를 결합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첨단 캠퍼스의 환상에 젖어 프라이버시권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