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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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 땅값 누가 좀 말려줘요”

미군기지 이전·수도권전철 연결 등 잇단 호재에 투기 세력 밀물 ‘천정부지’

  • 평택=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2-12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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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택 땅값 누가 좀 말려줘요”

    평택항 전경. 평택항 시대의 개막으로 들썩이던 평택 땅값이 미군부대의 이전 소식이 전해지면서 치솟고 있다.

    ”○○네 집은 땅을 20억원에 넘겼다더라.”

    “△△네는 30억원은 받을 수 있다던데.”

    “뭐라고?!”

    “내가 사는 아파트도 두 배는 족히 뛰었는걸 뭐…. 그런데 30억원이라니 억수로 부럽긴 하다.”

    설 연휴에 경기 평택시의 부모님 댁을 찾은 회사원 박모씨(37)는 오랜만에 고향친구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고향을 지켜온 친구들이 안줏거리로 내놓은 화제는 불붙은 땅과 아파트 값이었다. 31평형 아파트가 1억8000만원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박씨를 뒤집어지게 만든 것은 누구네가 보상금으로 20억원을 받았다느니, 아무개네는 30억원을 받을 거라느니, 농사짓고 과수원 하던 친구집이 ‘재벌’이 됐다느니 하는 소식이었다. 그는 “수억원대도 아니고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단위’에 화들짝 놀랐다”면서 “축하할 일이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값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값이 내림세로 돌아선 후 대기 투자자금이 쌓여 있는 데다 경부고속철도 개통, 행정수도 이전계획, 신도시개발 등의 호재가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개발 호재를 지닌 지역에선 매물을 보기조차 어렵다. 땅값 오름세의 진앙은 크게 둘. 하나는 신행정수도 후보지 일대고, 또 다른 하나는 판교와 평택 등을 중심으로 한 신도시 관련 지역. 특히 박씨의 동창생들이 ‘벼락부자가 된’ 평택은 수도권전철 연장, 용산 미군기지 이전, 평화신도시 건설, 고속철도 중간역 설치설 등 ‘호재의 백화점’으로 불리며 연쇄적인 땅값 상승의 연결고리 노릇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오를 만큼 오른’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부터 배턴을 이어받아 땅값 상승의 진앙 구실을 하고 있는 평택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2월5일 오전 평택시 송탄지역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연신 울려대는 전화기를 붙잡고 문의에 답하느라 정신없던 주인 K씨는 대뜸 “신문 보고 왔느냐”고 묻는다. 한 일간지에 자신의 코멘트가 보도된 후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다는 것. 그는 하루 평균 “30통 가량의 문의전화를 받는다”면서 “토지와 아파트 모두 사자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10배 껑충도 예사 … 벼락부자 잇단 탄생

    “ 평택 땅값 누가 좀 말려줘요”
    또 다른 중개업소에 들러 “토지 쪽에 관심 있는데 그냥 공부 좀 하고 싶어서 왔다”고 운을 떼자 공인중개사 L씨가 신문기사 스크랩 철을 들고 나와 개발 예정지를 하나씩 지목하며 투자가치를 설명했다. 갈무리된 기사는 주로 국제평화도시 건설과 관련한 중앙일간지와 지역일간지의 보도 내용. 경기도는 미군기지 이전에 맞춰 평택시에 미군 및 군속 20여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500만평 규모의 국제평화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같은 계획이 가뜩이나 호재가 많은 평택의 불붙은 땅값에 기름 구실을 하고 있다.

    L씨의 중개업소가 위치한 장당지구는 서울에서부터 수원을 거쳐 천안까지 연결되는 수도권 전철 정차역인 서정리역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데다 국제평화도시 관련 소문이 맞물리면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설명을 이어가던 L씨는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는 기사 하나를 가리키며 “평화신도시는 서정동 장당동 고덕면 일대로 확정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L씨는 “서정동 고덕면으로 기정사실화됐다”면서 언론에 이미 보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신문에서 잘라낸 것이라며 보여준 기사는 사실 바이라인(필자면)조차 제대로 달려 있지 않은 부동산정보지의 내용이었다.

    장당지구와 함께 평택에서 부동산 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캠프 험프리즈(Camp Humphreys·K-6)와 이웃한 안정리. 대추리 안정리 등 팽성읍 일대는 용산 미군기지 기간 부대의 이전지로 결정된 곳이다. 상권이 죽어 있던 터라 안정리는 최근까지 땅값이 비교적 안정돼 있었다. 그런데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발표되면서 평당 10만~20만원 선이던 땅값이 최고 100만원 선으로 10배까지 뛰었다. 안정리에선 미군 대상 임대 건물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임대업을 목적으로 한다고. 부동산업자들은 5억~8억원대에 거래되는 3층짜리 주택으로 임대사업에 나서면 월 400만원에서 최고 800만원의 수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평택 땅값 누가 좀 말려줘요”

    미군을 상대로 한 임대주택이 속속 지어지고 있는 안정리 일대(위).미군 상대 임대 광고를 내건 한 주택.

    안정리에 자리한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들러 “서울 사람도 땅을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외지인이 몰리지 않았으면 땅값이 오를 턱이 있느냐. 쓸데없이 그런 걸 왜 물어보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상업지역이야 쉽게 등기가 가능하고 준농림지 농림지 녹지 역시 조금만 품을 팔아 편법을 동원하면 땅을 구입할 수 있다. 위장전입은 크게 줄어드는 추세고, 대신 증여로 위장하거나 근저당을 설정해 경매로 낙찰받는 등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는 “토지거래허가지역에선 매매 시점을 소급하거나 토지를 쪼개 농민들에게 명의신탁하는 방식이 이용된다”고 귀띔했다.

    실현 여부가 불확실한 소문도 땅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업자들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소문 중 하나는 경부고속철도 평택역이 만들어진다는 것. 고속철도 철로가 구조물에 올려지지 않고 지상으로 통과하는 해창리·궁리 일대는 평택역이 들어설 경우 역 건설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입지라는 점에서 10만원 하던 땅값이 최근 6개월 동안 70만원까지 올랐다. 또 땅이 부족해 자연녹지지역이 일반주거지로 풀릴 것이라는 루머가 퍼지면서 녹지지역까지도 투기대상이 되고 있다. 안성천 서쪽의 안중읍엔 서울에서 DM 등을 발송해 투자자들을 꾀어온 기획부동산이 활개 친다고 한다.

    이젠 농민들까지 나서 땅값 상승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읍대책위원회’가 발족되는 등 미군부대 이전 반대를 외치는 농민들이 적지 않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공공연히 민족주의적 감정에서가 아니라 보상가를 올리기 위해 시위에 나섰다고 말한다. 어차피 농사로는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 적절한 보상만 받는다면 농토를 넘기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장당지구와 팽성읍에서 시작된 부동산 폭풍은 안중읍을 거쳐 화성시 발안지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중읍 포승면 등에서 도로변에 위치한 토지는 평당 200만원이 넘어선 곳도 있고 평택항 주변의 일부 토지는 평당 3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그렇다면 땅값이 이렇게 오를 동안 정부는 뭘 하고 있었을까. 2월4일 정부가 내놓은 ‘토지시장 안정대책’에 따라 평택은 이달 중 토지투기지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전형적인 뒷북대책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토지투기지역으로 겨우 4곳(대전 서구와 유성구, 천안시, 김포시)만 지정됐다. 땅값이 단기간에 폭등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땅값이 오른 뒤에야 대책을 내놓는 것은 들불로 번진 뒤 잡겠다고 나서는 꼴이다.

    전문가들은 토지투기지역은 땅값이 오른 사실이 있어야만 지정할 수 있기 때문에 땅값 상승을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는다. 주민들의 반발이 있더라도 개발 호재가 있는 곳은 발 빠르게 토지투기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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