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살짝 가린 여수 백도 풍경
문선명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이하 통일교) 총재는 정월 대보름 달을 전남 여수시에서 봤다. 문총재는 요즘 여수행이 잦다. 한국에 머물 때면 많은 시간을 여수에서 보낸다. 여수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말도 이따금 내뱉는다고 한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천혜의 땅이라고 감탄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문총재는 최근 통일교측이 인수한 5층짜리 아파트에 머물면서 여수에서 이뤄질 초대형 프로젝트를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그룹이 여수에서 벌이고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는 대규모 관광·위락단지 개발 사업. 문총재는 헬기를 이용해 입지를 여러 차례 답사하는 등 여수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보여왔다. 여수를 관광단지 개발 입지로 결정하기 이전엔 강원 양양군 등 한반도의 내로라하는 관광지를 둘러봤다고 한다. 지난해 한 일간지의 보도로 통일그룹의 관광단지 개발 계획의 밑그림이 알려졌지만, 통일교측은 특정 종교계의 반발 등을 고려해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런데 문제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통일그룹에 대한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을 정도의 큰 선물이 주어졌다는 것. 통일그룹 관계사인 ㈜일상이 토지를 매입해온 여수시 화양지구가 통째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게 특혜 논란의 핵심이다. ㈜일상은 수년 전부터 화양지구의 땅을 조금씩 매입해 현재까지 사들인 규모가 100만평이 넘는다고 한다. 통일그룹은 화양지구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됨으로써 막대한 유·무형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통일교측의 한 인사는 이와 관련해 “㈜일상의 개발 예정지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선견지명으로 입지를 잘 골랐을 따름이다”고 해명했다. 이 인사의 설명대로 통일그룹의 관광단지 개발 프로젝트와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각기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것은 사실이다. 화양지구의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외관상으로는 통일그룹측과 무관하게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계획의 일부로 이뤄졌다.
통일그룹은 화양지구에 300만평 규모의 관광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1차로 골프장과 일성콘도를 건설하고 2차로 위락단지를 조성해 해양관광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계획서를 여수시에 제출했다. 2020년까지 조성될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은 물류 중심의 광양지구, 산업 중심의 율촌지구, 외국인 주거단지 중심의 신덕지구, 그리고 여가 중심의 화양지구 등으로 나뉘어 육성된다.
막대한 유·무형 혜택 특혜 논란
지난해 11월18일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를 국가 계획으로 확정할 것을 요구한 여수 시민 궐기대회.
전남도의 계획에 따르면 화양지구엔 세계문화촌 골프장 콘도 등 종합관광 위락시설이 10여년에 걸쳐 조성되고, 우선적으로 골프장 콘도 등이 건설될 계획이다. 공교롭게도 300만평의 규모(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화양지구는 299만평)를 비롯해 통일그룹의 개발 계획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초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의 배후 위락시설로 여수시가 논의했던 곳은 묘도 일대라고 한다.
여수 형제섬, 여수 사도, 돌산대교 (왼쪽부터)
경제자유구역에 포함됨에 따라 화양지구는 올 1월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부지를 더 매입해야 하는 통일그룹으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전남도와 여수시는 화양지구 주변의 수자원보호구역 해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면 수산자원보호구역 해제는 언감생심이었다. 이밖에 여수시는 접근이 어려웠던 화양지구로의 진·출입을 수월케 하기 위해 도로확장 및 신설 공사를 발 빠르게 추진할 계획이다.
여수시는 지난해 세계해양박람회 유치 실패 이후 여수를 세계적 관광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해외자본 등 다양한 형태의 투자유치를 모색해왔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그렇듯 아직까지 본 계약이 이뤄진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로 여수시도 외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여수시는 미국 리버티파이낸셜사와 양해각서를 교환하는 등 총 1조7000억원 이상의 양해각서 및 투자의향서를 체결했으나 변죽만 울렸을 뿐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전무한 실정이다. 여수시 외자유치 담당자는 “외자유치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그룹은 여수시의 구세주였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마웠다”고 말했다.
전남도 한 관계자에 따르면 통일그룹측이 여수에 투자할 금액은 무려 1조6000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통일그룹측에서 각종 규제 등으로 인해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며 투자처를 옮긴다는 식의 압력을 가해와 전남도가 불안해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유일하게 투자가 확정된 통일그룹이 철수할 경우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사업 자체가 흔들리게 될 수도 있었던 터라 막대한 혜택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는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관련 자본 유입 ‘통일교 타운’ 되나
이에 대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안호열 국장은 “특혜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투자를 결정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교측은 “문총재의 지시로 전국 읍·면·동의 땅을 각각 300평씩 구입한 적이 있다. 땅을 구입하지 못한 지역이 많았지만 땅값 상승으로 인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또 제주도 등에서도 미래를 예견한 투자로 쏠쏠한 투자수익을 올린 바 있다”고 밝혔다. 안국장은 “과거처럼 이번에도 문총재의 선견지명이 들어맞았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비의 결과이든 바짓가랑이 잡기이든 선견지명이든, 통일그룹은 화양지구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막대한 혜택을 누리게 됐다. 통일그룹은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디딤돌로 1조6000억원대에 이른다는 자금 마련을 위해 외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외자의 상당 부분은 미국 일본 등의 통일교 관련 자본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화양지구 일대가 ‘통일교 타운’이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투자를 원하는 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는 것은 투자유치의 ABC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통일그룹에 막대한 혜택을 준 전남도와 여수시의 정책은 적절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특정업체의 사업지역 전체에 국가의 이름을 빌려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선물을 준 것은 전례도 없을 뿐더러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차라리 발표 당시 전후사정을 떳떳하게 밝혔다면 어땠을까. 어쨌든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의 성공 여부는 통일그룹이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