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부산 영락공원 묘원에 마련된 안상영 부산시장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빈소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아래 왼쪽)가 안시장의 부인 김채정 여사를 위로하고 있다.
2월4일 부산구치소에서 자살한 안상영 부산시장이 침대 시트 밑에 남긴 일기장(2003년 10월19일 작성)의 한 대목이다. 부산구치소에 수감된 지 단 사흘 만에 쓴 이 글에 안시장은 이미 죽음의 그림자를 남겼다.
그는 지난해 10월16일, 부산 시외버스터미널 이전과 관련해 진흥기업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부산구치소에 수감된 뒤 1심에서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진실 여부는 영원한 미제로 남게 됐다.
안시장의 돌연한 죽음은 다양한 파장을 낳았다.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정치적 논쟁거리로 비화했으며, 법무 교도행정의 난맥상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국회 법사위에서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퇴임문제까지 거론됐으며, 법무부는 대규모 조사단을 부산에 내려보내기까지 했다.
유서 통해 열악한 구치소 환경·체력적 한계 피력
확실한 점 한 가지는 열악한 구치소 환경이 그가 죽음을 택한 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안시장은 옥중에서 남긴 글을 통해 부산구치소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낮에 가을 햇살이… 쇠그물이 이중으로 장치된 사이로 밝고 따사롭게 비친다. 변기가 있고 위쪽으로 수도꼭지, 오른쪽으로 물통과 쓰레기통, 그 위에 세숫대야 그리고 그 안에 밥·찬그릇을 씻어 엎어두고…. 뒤쪽 아래에는 쇠그물 막혀 있는 작은 구멍이, 뒤로 돌아 앉으면 흙이 보이는 곳이다.”
지방의 구치소 대부분은 빈약한 재정지원으로 인해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서울구치소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난방이 되는 교정시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66세의 고령에 수감된 안시장이 맞은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는 그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1.7평의 오싹한 독방에 놓여진 그는 구치소에 들어온 사람들이 보통 그러하듯 처음에는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억울함이 벗겨지도록 최선을 다하자”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의 메모는 절망적으로 변해갔다.
“어제는 의무실에서 주사를 맞고 잤다. 추운 밤을 지냈다. 하루하루가 힘겹다. 이겨내야 하지만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 시련에서 벗어나도록 힘을 주십시오.”(지난해 11월13일)
악필과 오자(誤字)로 점철된 메모는 한겨울의 추위를 맞는 그의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의 억울함을 끝끝내 주장하던 처절한 육필 메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해보는 투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가족과 부산시청 직원들에게 남기는 유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첫 유서를 작성한 시점은 12월17일. 1심 판결이 한참 남은 시점인 이날은 언론에 동성여객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날이었다. 김운용 IOC 부위원장 비리를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채동욱 부장검사)가 김광태 전 동성여객 사장(KOC 위원)이 안시장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힌 게 언론 보도 내용이었다. 안시장은 이날 가족에게 남기는 글을 써 내려갔다.
“실감나지 않는 현실입니다. 당신을 보면 내가 얼마나 미운지 모르겠소.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돼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석은 쉽게 허가 나지 않았다. 부패사범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결연한 의지 때문이었다.
그는 1월29일 서울중앙지검으로 불려갔다가 사건이 부산지검으로 이첩되면서 2월3일 부산구치소로 돌아왔다. 이런 참혹한 과정을 거치며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했다.
안시장 주변사람들은 동성여객 수뢰사건과 관련해 안시장이 부인을 통해 돈을 돌려줬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부산지검과 지법 관계자들은 “안타깝지만 망자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는 법이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의 주장대로 ‘시대의 희생양’인지, 아니면 검찰의 기소대로 ‘전형적인 부패사범’인지는 역사의 판단으로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