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29분. 3시에 맞춰두었던 알람시계를 끄고 다시 비몽사몽 꿈속을 헤매다 불현듯 확인한 시간이 그러하였고,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 중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일만큼 스스로를 채근하는 일은 없을 터이다. 오늘 새벽 막중한 책임감으로 나를 깨운 일은 다름 아닌 오늘 아침 반드시 신문사에 넘겨야 할 ‘글’을 쓰는 일이다. 그러나 시간에 쫓긴다고 생각하는 순간일수록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일은 시간에 쫓김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리드할 것인가다.
이 문제와 정면도전함으로써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주어진 시간 안에, 시간을 뛰어 넘어 자기실현을 달성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가속도 붙어 있는 인생 잠시 쉬는 멋진 시테크
여기에서 나의 ‘시간 멈추기 놀이’는 시작된다. ‘시간 멈추기 놀이’는 쫓기는 삶으로부터 헤어나기 위한 본능적인 문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아등바등 쫓기는 삶을 살던 어느 날, 내 시간에 대한 나의 ‘권리’에 대해 문득 질문하게 되었고, 자유와 방종의 관계가 그러하듯,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 삶 속에서 내 시간에 대한 권리를 되찾으려는 자각이 ‘시간 멈추기 놀이’를 시작하게 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숨어 있는 10분의 틈새 시간은 찾아낼 수 있는 법이고, 비록 10분에 불과하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쫓기는 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시간에 대해 여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시간 멈추기 놀이’의 비결이 있다. 원고를 청탁받은 날이 화요일이었고, 마감은 월요일 아침.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회사 동료들과 MT를 다녀오기로 했다. 수요일과 목요일엔 숨가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밀려왔다. 결국 MT 갔다 돌아온 일요일 저녁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도 나의 용도대로 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썰렁하게 주말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을 두고 또다시 내 사정만을 들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뭔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온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식사는 물론 과일이라도 깎아주며 함께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계획 같은 것이 있으면 즐거이 이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의 부재로 인해 침체된 집안의 공기를 다시 따뜻하게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글을 쓰기 위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모색하느라 분주하였다. 그중의 첫째가 ‘시간 멈추기 놀이’를 위한 작전을 세우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미리 메모해둔 게 있었으므로 이에 의거해 기본적인 골격을 만드는 데 2시간, 다시 글을 다듬는 데 1시간 정도를 쓰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여기에 약간의 여유를 더해 내일 아침까지 4시간을 확실히 예약해두면 된다. 바꿔 말하면 저녁식사를 마친 8시부터 아침 8시까지의 12시간 중에서 4시간을 뺀 8시간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시간의 호사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마음속으로 어떠한 걱정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간은 멈춰지지 않고, 휴식도 작업도 아닌 고통스러운 상태로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나의 ‘시간 멈추기 놀이’를 발동시켰으므로 가족들과 함께 9시 뉴스를 시청했으며,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을 즐겼다.
다섯 시간의 숙면을 취했으며, 시간에 대한 내 권리를 충분히 누린 덕분에 새벽 작업의 의무에 즐겁게, 그리고 마음껏 몰두할 수 있었다. 새로운 해의 시간이 설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시간 멈추기 놀이’는 일초 일분을 다툴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오히려 여유를 찾아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해주는 나만의 시테크다. 또다시 쫓고 쫓기는 많은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시간 멈추기 놀이’를 통해 멈추어놓은 시간을 의심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든 시간은 잠시 쉬었다 지나갈 것이다.
이 문제와 정면도전함으로써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생각’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주어진 시간 안에, 시간을 뛰어 넘어 자기실현을 달성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가속도 붙어 있는 인생 잠시 쉬는 멋진 시테크
여기에서 나의 ‘시간 멈추기 놀이’는 시작된다. ‘시간 멈추기 놀이’는 쫓기는 삶으로부터 헤어나기 위한 본능적인 문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아등바등 쫓기는 삶을 살던 어느 날, 내 시간에 대한 나의 ‘권리’에 대해 문득 질문하게 되었고, 자유와 방종의 관계가 그러하듯,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 삶 속에서 내 시간에 대한 권리를 되찾으려는 자각이 ‘시간 멈추기 놀이’를 시작하게 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숨어 있는 10분의 틈새 시간은 찾아낼 수 있는 법이고, 비록 10분에 불과하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쫓기는 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시간에 대해 여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시간 멈추기 놀이’의 비결이 있다. 원고를 청탁받은 날이 화요일이었고, 마감은 월요일 아침.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회사 동료들과 MT를 다녀오기로 했다. 수요일과 목요일엔 숨가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밀려왔다. 결국 MT 갔다 돌아온 일요일 저녁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도 나의 용도대로 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썰렁하게 주말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을 두고 또다시 내 사정만을 들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뭔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온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식사는 물론 과일이라도 깎아주며 함께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계획 같은 것이 있으면 즐거이 이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의 부재로 인해 침체된 집안의 공기를 다시 따뜻하게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글을 쓰기 위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모색하느라 분주하였다. 그중의 첫째가 ‘시간 멈추기 놀이’를 위한 작전을 세우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미리 메모해둔 게 있었으므로 이에 의거해 기본적인 골격을 만드는 데 2시간, 다시 글을 다듬는 데 1시간 정도를 쓰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여기에 약간의 여유를 더해 내일 아침까지 4시간을 확실히 예약해두면 된다. 바꿔 말하면 저녁식사를 마친 8시부터 아침 8시까지의 12시간 중에서 4시간을 뺀 8시간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시간의 호사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마음속으로 어떠한 걱정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간은 멈춰지지 않고, 휴식도 작업도 아닌 고통스러운 상태로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나의 ‘시간 멈추기 놀이’를 발동시켰으므로 가족들과 함께 9시 뉴스를 시청했으며,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을 즐겼다.
다섯 시간의 숙면을 취했으며, 시간에 대한 내 권리를 충분히 누린 덕분에 새벽 작업의 의무에 즐겁게, 그리고 마음껏 몰두할 수 있었다. 새로운 해의 시간이 설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시간 멈추기 놀이’는 일초 일분을 다툴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오히려 여유를 찾아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해주는 나만의 시테크다. 또다시 쫓고 쫓기는 많은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시간 멈추기 놀이’를 통해 멈추어놓은 시간을 의심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든 시간은 잠시 쉬었다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