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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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오페라 값비싼 교훈

  • 고희경 /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

    입력2003-10-02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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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장 오페라 값비싼 교훈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의 올해 최대 경쟁자는 다름 아닌 야외 오페라였다. 그만큼 야외 오페라, 아니 운동장 오페라는 공연계 안팎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2000년 중국 쯔진청(紫禁城) 이벤트로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던 장이모 연출의 ‘투란도트’가 5월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될 때만 해도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해 보이던 것이 9월 중순에 잠실 주경기장에서 이탈리아 파르마 극장이 제작한 ‘아이다’가 공연되면서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운동장 오페라의 1탄인 ‘투란도트’는 겉으로 드러난 흥행 성공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공연이었다.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와 테너의 목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들어야 하는 음향상의 문제는 운동장 오페라의 근본적인 문제인 만큼, 개인적인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폭이 150m가 넘는 무대와 화려한 조명으로 인한 시각적 만족은 잠시뿐, 결국 관객이 집중하는 것은 대형 스크린이라는 점이 공연 내내 불만스러웠다. 칼라프 왕자가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투란도트 공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화면에 소프라노의 모습이 비치자 운동장의 5만 관객은 폭소와 한숨을 터뜨렸다. 아름다운 공주 대신 덩치 큰 중년의 소프라노가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사실 투란도트 역은 웬만한 체격의 소프라노는 소화할 수 없는,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음역을 가진 대형가수만이 해낼 수 있는 배역이다.

    극장과는 다른 유통·소비 냉정한 판단 필요

    공연이 영상과 다른 점은 현장감과 환상일 것이다. 영상은 시공을 넘나드는 테크닉으로 이야기의 대부분을 시각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 반면 공연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감상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나름대로 완성된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공연이되 감동의 많은 요소들을 영상을 통해 전달해야 하는 운동장 오페라는 어디에 기대야 하는가?

    오페라 ‘아이다’는 운동장 오페라의 두 번째 작품이어서 그 한계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객석에 앉아서인지 베르디도 들리고 아이다도 보였다. 코끼리와 낙타가 등장하는 동물 서커스 같은 장면이 흠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탄탄한 프로덕션이었다. 제작진이 이미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오랫동안 야외 오페라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데다 세계 최정상급 가수들은 광활한 운동장에서도 감동적인 오페라 한 편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냉담했다. 특히 60만원을 호가한 최고석에서는 라다메스의 아리아 ‘청아한 아이다’가 울려퍼질 때도, 대규모 합창단과 엑스트라가 동원된 ‘개선행진곡’이 펼쳐질 때도 박수가 시원스레 터져나오지 않았다. 3층 스탠드석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식어버린 운동장을 데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공연으로 제작사는 수십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아이다’ 주최측은 불경기와 유난히 잦은 비 등 공연 외적인 요인과 입장권 판매 정책의 실패 등에 공연 실패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원인을 ‘오페라’가 아닌 ‘이벤트’에서 찾는다. 오페라의 대중화와 오페라 시장의 확산이라는 의미 부여에도 불구하고 야외 오페라는 오페라와는 다른 ‘이벤트’다. 야외 오페라가 성공할 수 있는 관건의 하나는 ‘장소’다. 중국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쯔진청, 고대 이집트의 유적지 룩소 등이 그러하다.

    야외 오페라는 극장에서 하는 오페라 공연과는 유통구조는 물론 소비형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관객층도 기존의 오페라 관객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투란도트’가 흥행면에서 성공하고 ‘아이다’가 실패한 것은 공연의 완성도와는 큰 관계가 없다. 오히려 공연의 브랜드와 포지셔닝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 최초’ ‘세계 최대 규모’ 등의 수식어를 이미 선점당한 ‘아이다’로서는 세계적인 가수들과 뛰어난 능력의 프로덕션으로도 대형 이벤트를 성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코끼리와 낙타의 물량공세도 소용 없었다.

    관객을 포함한 소비자는 냉정하다. 처음 시도된 공연이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비슷한 형태의 두 번째 공연도 성공하리라고 보장해주지 않는다. 운동장에서 오페라를 맛본 관객들이 정식 오페라 관객으로 전환되리라는 것도 지나친 낙관이다. 영세한 국내 공연제작 시장의 형편으로 보면 ‘아이다’의 손실 규모는 제작사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만한 것이다. 야외 오페라 붐은 쉽게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른 화려한 수업은 2003년으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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