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의 충격으로 지구의 바다와 땅, 사람, 짐승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못 들어봤는데…. ‘여왕 마고’에 나오는 마고, 아니면 샤또 마고? 부드럽고 그윽한 향기가 나는 프랑스 와인이지.”
“아니,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는 마귀할멈이 마고잖아! 괴기하고 술법을 잘 부리는 쪼그랑할멈 말이야. 동화에 많이 나와.”
“그게…, 올 누드로 촬영했다는 모델들이 우루루 나오는 ‘마고’라는 우리 영화 말인가?”
우리의 여신 마고는 아직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마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혼란스럽다. 신화학자들 중에는 마고를 가장 원초적인 여신인 대모신(大母神·the Great Mother)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고와 관련된 이야기는 수백 편이 넘는다. 단지 이것이 단편적인 전설이나 설화로만 남아 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고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신격인지, 신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하는 마고의 이미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마고에 얽힌 이야기가 제대로 기록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녀들이 굿을 통해 모신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민중들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마고를 기억하고 오늘날까지도 마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닌가?
이제 마고의 진실에 다가가보자. 전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마고 신화의 조각들을 모아서 하나하나 이어보자. 쪼그랑 마귀할멈이 어느새 우리 태고 때의 거대한 여신 마고로 재탄생하여 커다란 조각보 위에 자신의 신화를 그려 보여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마고가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모습.
“그 산이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니더. 옛날에 걸어 들어왔다니더, 산이. 그래 걸어 들어와가 다 이래 보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요 ‘저 산 봐라! 산이 걸어 들어온다!’ 하니까 고만 멈춰뿌렸다니더. 안 그랬으면 지품면이 굉장히 넓었을 낀데….”(영덕군 지품면, 문문희·34·여)
산이 걸어다닌다고? 설마! 산이 어떻게? 어디서나 이렇게 한마디로 끝난다. 짧다. 산이 걸어다닌다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있겠는가? 믿지 못할 게 뻔하니까 더 할 말이 없는가보다. 산이 걸어 들어왔다고, 토도 달지 않고 똑같은 말로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못 믿겠지? 못 믿어? 응? 그래도 또 들어봐! 옛날부터 조상들이 전해준 이야기야.’ 이렇게 세 번씩이나!
“산이 딱 요 망경산처럼 와서 도롯이(호젓하게) 주저앉아 있는데, 저기 전라도에서 왔다고 전라도 산이라 하거든. 왜? ‘거 미친놈이다! 무슨 전라도 산이냐?’ (웃으며) 이렇게 옥종 사람들한테 물으면, 산이 전라도서 날아온께네 여자가 ‘아이구, 저런! 산이 날아온다!’ 하니께 푹 주저앉았다 하거덩. 어디? 아 저 옥종 장터 아래로 얼마 안 내려가면 있어.”(하동군 옥종면, 김두상·70)
청룡, 백호, 현무와 함께 하늘의 4신(四神)이라 불리는 주작.
“시대는 잘 모르겠고 하여튼 마 천지개벽할 시긴데, 빨래하는 여자가 보니까 산이 둥둥 떠내려가는 기라. 그래 ‘산 떠내려간다’ 카이까네 마 산이 서버렸어. 난 이렇게 들었어. 외동면 석계리 의례산 이야기여. 마 모두들 명당이라고 이래 쌓는데….”(울주군 청량면, 손영수·50)
이제는 산이 떠내려온다. 천지개벽의 큰물이 져서 개나 고양이나 집채도 아니고 산이 떠내려온다는 것이다. 물론 바다에서는 떠내려오는 것이 보나마나 섬일 테지? ‘떠내려오는 섬’ 이야기다.
“‘저 바다서 섬이 둥둥 떠서 들어오더라 하대예. 그래 옛날 할매들이 그랬는갑대예. ‘저 봐라! 섬이 떠돌아다닌다!’ 그라니께 그 섬이 고마 주저앉아가 그 모가지(산달도와 거제도 사이 좁은 수로)가 생겨가 객선도 댕기고 한다고, 그런 말이 있대예.”(거제, 박천수·70·여)
산이 걸어오고 산이 날아오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산이 큰물에 떠내려오고, 바다로 가서 섬이 되어 떠다닌다? 정말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허풍인가, 그냥 우스갯소리인가, 아니면 판타지인가.
상상력으로 말하는 상고대인들의 과학
산이 걸어오고 날아다니고 떠내려오는 이야기는 산을 옮기는 거인 마고가 뒤에 숨어 있는 유형이거나, 아니면 거인 마고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빨래하는 여자’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 유형이다. 자, 엄청나게 큰 거인 마고가 산을 옮긴다고 상상해보라. 이걸 사람들이 보았다면 산이 날아다닌다고 하지 않겠는가?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여신 ‘쉐멩듸’가 빨래를 하다가 한라산이 높아서 불편하다고 산꼭대기를 잡아당겨 던진 것이 날아가 산방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빨래하는 여자’가 걸어가는 산을 보고 방망이로 쥐어박아 그 자리에 주저앉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거인 마고가 자신의 이름과 신격을 잃어버렸다. ‘빨래하는 여자’로서 작은 흔적만 남겨놓은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떠다닌다는 학설이 나온 것은 1915년의 일이다. 독일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가 ‘대륙과 해양의 기원(The Origin of Continent and Ocean)’이라는 책에서 ‘대륙이동설’을 제기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베게너의 이론을 그저 공상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후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난 판의 운동을 추적한 결과 과학자들은 모든 대륙이 한때는 ‘판게아(Pangaia)’라는 거대한 하나의 대륙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베게너의 견해가 옳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것이 ‘판 구조론’이다. 오늘날에는 판이 1년에 약 10cm씩 움직인다고 한다.
거인신 마고가 하늘을 들어올린 채 땅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마포 9만 통으로 치마를 해 입어도 한 폭이 모자라
도대체 얼마나 커야 산을 날려보낼 수 있을까? 마고는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얼마나 큰지 ‘말할 수도 없다’고 한다.
“키가 얼마나 컸능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라. 말할 수도 없지라. 완도로 가는 길 남창 앞에 달도라는 섬이 있어라.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호남 일대에서는 제일 짚지라(깊지요). 그란디 ‘얼마나 짚은가 보자’ 하고 한번 내려가봉께 그래도 포도시(겨우) 마고의 넓적다리에 가 닿더래요. 그래 ‘그만치 짚구나.’ 그러고 나왔는디, 또 이 산 건너서 저 건너 산을 보면은 그 사이가 있지라. ‘니가 얼마나 너른가 보자’ 그라고 이 산의 바우 끝에다 한 발을 딛고 저 건너 산 바우 끝에다 또 한 발을 딛고 가랭이를 대봉께 포도시 닿더래네요. 그래 이 산 저 산 바우에다 발을 딛고 저 오심이고개에 손을 딛고 저 멀리 용둠벙에다 입을 대고 물을 마셨제. 그래 마고가 얼마나 킁가 알았다카더만.”(해남군 삼산면, 서만오·63)
마고는 ‘마포(麻布) 9만 통을 가지고 치마를 해 입어도 한 폭이 모자라 엉덩잇살이 남는다’고 한다(거창군 남하면 세바우들 전설). 여기서 ‘통’은 피륙의 길이를 재는 단위다. 한 통이 50필이니까 9만 통이면 450만필이다. 한 필이 125마 가량이고 한 마가 90cm니까, 1000억cm의 마포가 든다. 보통사람 6억명을 세워놓은 길이다. 대략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2배 하고도 반이나 된다. 자, 이제 치마를 만들어보자. 보통 우리 옷의 폭이 112cm 정도라고 보고 가로 세로 1대 2.2의 비율로 치마 길이를 계산하면 500만cm 정도다. 마고의 키를 치마 길이의 2배로 치면 1000만cm. 정말 어마어마하다. 물론 어림으로 계산한 것이다. ‘마포 9만 통’이라는 상징을 실물로 이해하기 위해서 대충 계산해본 것이다.
이전에 우리는 우주거인 미륵의 키를 계산해보았다. 대충 4만cm로 보통사람의 250배 정도 크기였다. 마고는 미륵보다 250배나 더 크다. 도저히 비교할 만한 대상이 못 된다. 후대에 미륵을 노래한 신녀의 상상력이 쪼그라든 게 틀림없다.
“옛날에 노고가 있었는데, 이 노고가 산천을 전부 만들었대. 산천을 만드는데, 손이 얼마나 크고 힘이 얼마나 좋은지 그저 손으로 평평한 곳을 쭉쭉 그으면 산이 되고 골이 돼서 인물이 나고 그랬대.”(강원도 옥제면, 최종철·71)
정말 그럴 법하다. 어디 산과 내를 만드는 일뿐이겠는가? 성도 쌓고 탑도 쌓고 길 가다가 떨어뜨린 바위로 선돌도 세운다. 여기서 ‘노고(老姑)’는 마고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연륜이 쌓여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마고라고 보면 된다. ‘노고’가 이름이 되어버렸다. 예컨대 지리산 노고단은 ‘지리산에서 마고를 모시고 하늘에 제를 드리는 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고는 가냘픈 ‘선녀’가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술법을 부리는 마귀할멈도 될 수 없다. 마고는 ‘마포 9만 통으로 옷을 해 입은’ ‘말할 수도 없이’ 큰 거인이었던 것이다.
전국 각지에 마고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산천이 있을까? 마고가 직접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거나 산을 짐바로 묶어 지고 나르는 것은 ‘큰 산 만들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어디 산이 큰 산밖에 없나? 작은 산도 있다. 그래서 마고 신화에서는 꼭 치마 한쪽 끈이 풀어지거나 옷에 구멍이 나서 흙이나 돌, 바위가 흘러내려 작은 산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산 만들기’에 얽힌 이야기들은 구수한 입담으로 재미있게 이야기해야 듣는 사람들도 웃게 마련이다. 그 덕분에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마고가 전국의 산과 내를 다 만들었다는 것은 그냥 듣고 넘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정말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마고가 산을 조화 있게 만들어서 그 태백산맥이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저 소백산맥으로 쭈욱 가 가지고 영주 북쪽, 죽령, 조령, 추풍령을 품어 지리산을 만들잖아요. 바로 여기서 뺑 돌려서 이쪽으로 가 가지고 영월을 가는 산맥을 하나 만들지요.
여기서 정선을 가자면 산맥이 나오는데 바로 여기서 쭈욱 빠져나가는 금산을 만들고 삼척 남산을 딱 만들었지요. 이 봉황산 줄기는 대관령을 쭈욱 내려오다가 두타산을 봉긋하게 올려놓고. 산이 전부 에워싸고 마고가 사는 곳의 사방을 가지고 와서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요.”(삼척 남양리, 김일기·52)
역시 전국에 널려 있는 마고바위 가운데 하나인 삼척 남양리의 마고할미바위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마고할미의 조화’라는 이야기다.
전국의 산을 만들려면 자연히 산맥을 틀어쥐어야 하고 전국의 내를 만들려면 자연히 내가 흘러 들어가는 만과 바다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은 크게는 지구를 만드는 일이요, 작게는 마을 앞의 내와 바위와 돌을 그 자리에 있게 하는 일이다.
결국 마고라는 존재가 자연 자체와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을 만든 여신으로서 생명 자체와 함께한다고나 할까? 마고는 산과 내와 바위와 돌로 자신의 신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자, 이제 마고의 존재가 보이는가? 마고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마고라는 여신의 신격이 느껴지는가? 이제, 독자 여러분도 마고 신화의 조각그림 맞추기를 해볼 생각이 들었다면 도전해보기 바란다. 그를 위해서 필자가 모은 이야기 마디들, 조각들을 제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