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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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항’ 나가라니 기가 막혀

지역이기주의에 국가 안보 뒷전 … 대통령 전용기 이착륙·유사시 수도권 생명줄 등 막중한 임무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3-10-01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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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공항’ 나가라니 기가 막혀

    서울 에어쇼가 열린 서울공항.

    서울 송파구와 붙어 있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일대에서는 ‘서울공항’ 방향을 가리키는 도로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서울공항의 원 이름은 공군 제15혼성비행단이 부속돼 있는 ‘서울기지’. 그러나 공군측은 ‘K-16기지’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전용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인 이곳을 상당수의 시민들은 성남에 있다고 하여 편하게 ‘성남공항’이라고 부른다.

    서울공항은 ‘군용항공기지법’을 근거로 운영된다. 이에 따라 비행안전구역에 해당하는 주변 지역에서는 건축물의 개·증축이 엄격히 제한되고, 서울공항의 활주로가 뻗어 있는 방향의 경우 이착륙하는 항공기와 충돌하지 않도록 건축물의 높이가 제한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서울 송파구 일대에 서울공항을 ‘쫓아내야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대대적으로 내걸렸다.

    서울공항의 활주로는 송파구의 중심인 석촌호수 방향을 향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이 호수 주변에 112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 했으나 고도제한에 걸려 현재 36층짜리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고도제한이 풀리면 언제라도 112층짜리 건물을 짓기 위해 설계변경을 할 것으로 보인다.

    고도제한 송파구 일대 현수막 내걸려

    112층 건물이 들어서면 석촌호수 일대는 금싸라기 땅이 된다. 고도제한 때문에 마음대로 건축물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가락동과 문정동, 장지동 또한 크게 발전할 것이다.



    서울공항은 성남의 분당이나 9월27일 ‘학원 신도시 건설안’이 백지화된 판교보다 서울 강남에 훨씬 더 가깝다. 따라서 공항이 이전하고 이곳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면 천정부지로 땅값이 치솟을 수 있다. 이러니 송파구 입장에서 서울공항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익을 바라는 세력들은’ 서울 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논의가 일 때마다 서울공항 일대가 신도시 건설이 최적지라는 여론을 조장해왔다.

    ‘서울공항’ 나가라니 기가 막혀

    서울공항 이전을 촉구하는 현수막과 전단.

    9월3일 최종찬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 장관은 경기 의왕시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10년 이내에 수도권에 3~4개의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적잖은 언론이 서울공항이 신도시 건설의 적지라는 내용의 해설기사를 내보냈는데, 이런 보도는 서울공항 이전을 바라는 이 지역여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일부 부동산업자들은 이 보도를 이용해 이 지역에 대한 투기를 부추겼다(상자기사 참조).

    서울공항 이전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은 송파구의회와 강남구의회, 성남시의회가 공동으로 내걸었다. 이 중에서도 서울공항 이전운동을 펼치는 주체는 송파구의회인데, 특히 임춘대 의원(석촌동)이 앞장서고 있다. 다음은 임의원의 주장.

    “나는 송파구에 한 평의 땅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송파구는 서울공항 때문에 전체 면적의 68%가 건축에 제한을 받고 있다. 가락동의 아파트는 12층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고 있으며, 서울공항 가까이 있는 문정·장지 지구는 소음이 심각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3월 인천공항이 개항한 후 국제선 항공편이 옮겨가 김포공항에 여유가 많다. 김포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가 이착륙하면 될 텐데 왜 서울공항을 고집하는가?”

    ‘서울공항’ 나가라니 기가 막혀

    서부지역 최전방에 위치한 서울공항 정문(위)과 이 공항 부근의 부동산중개사무소들.

    7월5일 송파구의회는 28명의 구의원 전원이 서울공항 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청와대와 국회 재정경제부 국방부 건교부 서울시 서울시의회 등에 전달했다. 그리고 서울공항 이전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1차로 1만5537명의 서명을 받아 위 기관에 전달했다. 임의원은 “우리는 3만명한테 서명을 받을 계획이다. 지금은 2차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한 관계기관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과연 관계기관은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건교부나 국방부 등 관계기관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공식의견을 내놓은 바 없다. 때문에 이 문제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서울기지의 모체는 여의도기지(세칭 여의도공항). 1974년 현 서울기지 자리로 옮겨와 제15혼성비행단이 되었다. 공군의 비행단에는 전투기만으로 구성된 전투비행단, 수송기로 구성된 전술공수비행단, 폭격기로 편성된 폭격비행단 등이 있는데, 여러 종류의 항공기로 편성된 경우에는 혼성비행단이란 이름을 얻는다.

    여러 종류 항공기로 편성 ‘혼성비행단’

    비행단은 보통 육군의 연대에 해당하는 ‘전대(戰隊)’ 세 개로 편성된다. 항공기와 이를 조종하는 조종사로 편성된 ‘비행전대’, 항공기를 정비하고 무기를 장착하고 연료를 보급해주는 ‘군수전대’, 그리고 기지를 방어하며 모든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기지지원전대’가 그것이다. 제15혼성비행단에는 이 세 개 전대 외에 ‘귀빈임무전대’라는 또 하나의 전대가 있다.

    귀빈임무전대는 ‘공군 1호기’로 불리는 대통령 전용기와 수행원과 경호원을 태우는 항공기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부대다. 대통령은 가까운 거리는 헬기로 움직이는데 헬기 운용 또한 이 전대에서 담당한다. 귀빈임무전대가 있어 여느 부대보다도 규모가 크고 임무가 막중한 것이 제15혼성비행단인 것이다.

    인천공항이 개항한 후 김포공항의 이용률은 과거의 60% 정도밖에 되지 않아 김포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가 뜨고 내릴 여지는 있다. 그러나 ‘공군 1호기’가 착륙하려면 한 시간 전부터 모든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된다. 착륙하려던 비행기는 선회비행을 하며 착륙 사인을 기다려야 하고, 비행기를 타려는 승객과 항공사 직원들은 건물 안에서 꼼짝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

    대통령 전용기 이착륙 임무가 김포공항으로 넘어가면 이 공항을 이용하는 국내선 승객이 이러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공군측은 “우리는 군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동할 때마다 대기명령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러나 김포로 옮겨가면 과연 일반 승객이 이러한 불편을 참아낼지 의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 경호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고 그로 인한 일반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선진국은 공군 1호기 임무를 공군기지에서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는 국제선을 위한 덜레스 공항과 국내선을 위한 로널드 레이건 공항이 있지만, 대통령 전용기는 백악관에서 17.6km 떨어진 앤드류 공군기지에서 이착륙한다.

    두 번째로 살펴볼 점은 서울공항이 수행하는 비밀업무다. 제15혼성비행단의 비행전대 밑에는 린다 김 스캔들로 화제를 모았던 백두정찰기와 금강정찰기를 운용하는 대대가 있다. 백두정찰기는 국군 3275부대(777부대)의 장비를 싣고 이륙해 백두산 이남에서 오가는 모든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신호정보 수집기다. 금강정찰기는 국군정보사가 보유한 촬영장비를 싣고 떠올라 금강산 이남의 북한 최전방지역의 북한군 이동상황 등을 촬영한다.

    백두정찰기와 금강정찰기는 임무 수행 중 수시로 지상과 교신하는데, 이를 위해 서울공항 인근 산에는 송수신센터가 있다. 따라서 서울공항을 폐쇄해 정찰임무를 타기지에서 수행할 경우 이러한 지상기지도 옮겨야 한다. 2차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대북 정보수집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때에 과연 이러한 부담을 감내하며 서울공항을 폐쇄해야 하는 것일까.

    세 번째로는 전쟁이 발발해 서울이 위태로워지거나 지진 등 재난이 발생해 서울이 아수라장이 된 유사시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해보아야 한다. 서울공항은 서부지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공군기지이기 때문에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난다면 후방 기지에 있던 전투기가 대거 이곳으로 이동해 수도방어작전을 펼친다. 또한 육로를 통한 서울지역에의 식량보급이 여의치 않을 땐 이곳에서 비행기를 이륙시켜 식량을 투하해야 한다.

    서울에서 큰 지진이 발생해 철도와 도로가 끊어졌다면 식량과 의료품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뿐인데, 이러한 항공추진기지 역할을 할 곳은 이곳과 김포공항밖에 없다. 실제로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서울공항은 모든 작전을 중단하고 황급히 헬기를 띄워 부상자를 수송하고 필요한 자재를 운반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유사시를 대비해 수도권에 군 공항을 두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DC 근처에는 앞서 언급한 앤드류 기지가 있고, 일본의 도쿄 근처에는 이루마 기지가, 영국 런던 부근에는 노스홀트 기지가 있다. 파리 부근에는 파리 에어쇼 개최지로 유명한 부르제 기지가 있고 중국 베이징 인근에는 남원 기지가 있다. 공군 관계자들은 “휴전선에서 직선으로 불과 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분단국의 수도에서 군 공항 이전 소리가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찼다.

    네 번째로는 서울공항을 옮겨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송파구의회는 서울공항에 있는 공군부대를 수원기지로 보내라고 하지만, 수원기지는 너무 좁아 비행전대 예하의 한 개 전투기대대를 청주기지로 보낸 상태다. 수원공항이 김포공항으로 이어지는 민항기 항로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기지 옆 미 17항공여단 1대대 포진

    수원 상공에서는 김포나 인천 공항으로 가는 민항기는 고도를 낮추고 수원공항에서 이륙하는 전투기는 급속히 고도를 높인다.

    공군 관제단과 서울지방항공청은 민항기의 착륙고도는 얼마 이상, 전투기의 이륙 고도는 얼마 이하로 제한해놓고 있지만 훈련에 들어간 전투기는 종종 민항기 항로를 침범하는 ‘사고’를 일으킨다. 기지는 물론이고 공역(空域)에 여유가 없는 수원기지로 서울기지의 항공기가 옮겨온다면 이러한 사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섯 번째는 서울공항 이전만으로는 고도제한 등이 풀리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서울기지 바로 옆에는 UH-60 헬기와 C-12F 항공기를 운용하는 미 17항공여단 제1대대가 포진해 있다. 미군은 이 기지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판문점 지역에 대한 공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UH-60은 수직으로 이착륙하는 헬기라서 비행안전구역이 넓지 않지만, C-12F는 활주로를 달려서 이착륙하는 고정익기라서 여전히 주변지역에 대한 고도제한을 필요로 한다.

    미 17항공여단이 이곳에 주둔하게 된 것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의한 것. 따라서 한미 간의 합의가 없으면 ‘천하의’ 청와대일지라도 마음대로 이전을 결정할 수가 없다. 최근 한미 간에 이전 합의가 이뤄진 것은 용산에 있는 미 8군기지뿐이라 이 기지는 해당되지 않는다.

    여섯 번째 이 지역에는 서울공항과 미 17항공여단 기지 외에 여러 국가시설이 있어, 두 부대가 옮겨간다고 해도 여전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지역에는 국가정보원과 국군 화방사가 포진해 있다. 북한군이 화학탄을 쏘면 화방사는 헬기를 타고 가 신속히 제독(除毒)해야 하므로 이곳에는 반드시 항공부대가 있어야 한다.

    서울기지와 미 17항공여단이 빠져나가면 송파구뿐만 아니라 성남지역 땅값까지 오르는 것은 불문가지. 그러나 안보가 위태로워진다면 이러한 발전은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서울 송파와 경기도 성남의 발전도 이 기지가 안보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군 관계자는 “안보를 도외시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민족의 미래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시끄럽다’고, ‘건축물을 더 높이 지을 수 없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군복을 입고 헌신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참담하게 느껴진다”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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