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앙쥐에게 곤장을 치는 미륵의 모습. 미륵은 새앙쥐에게 천하의 뒤주를 내맡기고서야 물과 불의 근본을 알아낸다.
우주거인 미륵은 도대체 누구인가? 미륵이 얼마나 대단한 신격이기에 본디 창세신의 이름을 대체하고 에피소드를 바꾸면서까지 우리 창세신화의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그 속에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우리 거석문화의 대표
논산의 은진미륵, 안성의 비봉산을 등지고 서 있는 태평미륵, 파주의 용미리 쌍미륵, 홍성 용봉산 입구에 우람하게 서 있는 큰미륵들을 보면 누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다.
땅에서 올라온 자연석을 다듬어서 만들었다는 은진미륵은 키가 18m로 한국 최대의 미륵이다. 거대한 천연암벽에 마애각법으로 몸을 새기고 머리 부분은 따로 만들어 올린 용미리 쌍미륵은 키가 17.4m에 이른다. 홍성의 큰미륵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키가 7m에 둘레가 4m다. 태평미륵은 키가 6m이고 둘레가3.17m, 머리덮개가 1.5m에 달한다.
이 미륵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륵이야말로 우리 거석문화의 대표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시시대의 고인돌 문화와는 다른 친밀감으로 다가오는 돌 숭배 문화로서 말이다.
최치원 선생은 우리의 현묘한 도 ‘풍류’에는 유불도 3교가 포함되어 접화군생(接化郡生), 즉 뭇 생명을 가까이하고 감화한다고 했다. 이에는 물론 미륵 신앙도 포함되어 있다.
미륵은 불교 신화에 등장하는, 미래에 우리를 구제하러 오는 미래불이다. 불교에서는 미륵이 오는 미래의 유토피아를 용화세계라 한다. 그곳에서는 감미로운 과일나무와 향기롭고 아름다운 풀과 나무들만이 자란다. 음식을 먹고자 하면 저절로 쌀이 생기고 옷을 입고자 하면 저절로 옷이 생긴다. 질병도 없어진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이 8만4000세에 이르고 500세가 되어야 결혼한다. 그곳에서는 욕심, 화, 어리석음이 없어지고 모든 번뇌가 사라지며, 사람들의 마음도 어긋남이 없이 평화롭다. 그곳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미륵보살은 용화수 아래에서 도를 이루어 모든 사람을 깨우친다.
이 용화세계는 기독교의 천년왕국이나 도교의 선계와 같은 유토피아다. 미륵은 그것을 약속하고 실현하는 미래불이자 예수와 같은 구세주인 것이다. 그래서 신라 때에도 고려 때에도 지배층이 앞장서서 미륵세상을 열겠노라고, 혹은 이미 미륵세상이 되었노라고 과시하기 위해 거대 미륵을 만든 것이다.
보물 제93호 파주 용미리 쌍미륵. 1465년 세조와 정희왕후의 모습을 미륵불로 상징화해 세운 것이다(왼쪽 위).운악산 미륵바위. 그저 솟구쳐 오른 암석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미륵바위라고 이름 붙이고 신성시했다(왼쪽 아래).국보 제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신라시대 화랑들의 ‘아바타’로서 젊은 미륵을 묘사한 듯하다(오른쪽).
미륵은 절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밭이나 논에서 솟아나온 돌도 미륵이요, 바다에서 어부가 건져 올린 돌도 미륵이요, 마을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돌도 미륵이다. 심지어 산에 솟아 있는 바위도 미륵바위요, 솟구쳐 오른 산봉우리도 미륵봉이다. 온 세상에 있는 미륵과 비슷한 것은 모두 미륵이라 이름 붙이고, 그 앞에 정화수라도 한 사발 놓고 빌어야 살맛이 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 농부가 밭을 갈다 머리가 없는 돌부처를 발견하고는 밭에 모셔두었는데 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돌부처에게 절하고 나서 효험을 보자 병든 사람, 아들 없는 사람, 그밖에 다른 소원이 있는 수많은 남녀가 쌀과 베, 향과 촛불, 꽃과 과일 따위를 가지고 와서 이곳에 바쳤다고 한다. 조신의 ‘소문쇄록’에 기록돼 있는, 1482년 경상도 개령현 송방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서울 출신의 한 모시 장수가 미륵에게 모시옷을 입혀주고 나서 부자도 되고 혼인도 하게 되었다는 충남의 은진미륵 이야기도 있다. 또 제주의 해안 마을 화북리에는 어부가 그물로 건져 올린 돌을 미륵으로 섬기자, 미륵이 그 사람을 잘살게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뒤 마을 청년들이 돌미륵에게 상처를 입히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부병에 걸렸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미륵을 수호신으로 모시자 피부병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몇 가지 유형의 이야기들이 전국에 있는 돌미륵들과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한에만 371기의 미륵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돌미륵의 물결 속에서 거대 미륵도 결국 민중들의 것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돌미륵이 된 조수바위
그런데 왜 이렇게 미륵을 모셨을까? 미륵을 절에 모시지 않고 들과 밭에,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포구에, 마을 앞에, 교통의 요충지에, 성문 앞에 모셨을까? 미륵의 메시아적인 성격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똑같이 불교와 함께 미륵이 전파되었는데도 한국처럼 절 담을 넘어서 민중의 신앙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된 ‘돌미륵이 된 조수바우’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수바우와 그의 사돈 정일환은 역적 모의를 하여 서울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서울로 쳐들어가기로 한 날, 아침상을 받은 조수바우가 며느리의 말을 듣지 않고 딸의 말을 들었다가 거사를 그르치게 된다. 재미있는 상징이다. 며느리는 국을 먼저 먹으라고 권했고, 딸은 장을 먼저 먹으라고 권했는데 장을 먼저 먹어서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다니! 왕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반란군 내의 내부갈등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인가? 어쨌든 왕은 조수바우의 집터와 묘터가 좋아서 역모를 꾀했다고 생각해 집터에 못을 만들고 묘에 무쇠 철갑을 씌웠다. 그 후 조수바우의 집안은 망하고 만다. 묘에다 무쇠 철갑을 둘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손발만 묶은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가둬버렸다는 것이니 대단한 상징이다.
산 위 커다란 암석에 미륵을 새긴 미륵산 미륵불과 세월의 풍상에 깊이 패인 얼굴선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한 홍성 대교리 미륵.후천 개벽을 기다려온 오랜 세월이 아로새겨져 있는 운주사 와불(왼쪽부터 시계 방향). 이 와불이 벌떡 일어나면 세상이 뒤바뀔까?
‘돌미륵이 된 선비’ 이야기도 비슷한 내용이다. 하루 밤 하루 낮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세상을 바꾸려 하였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미 닭이 울었다’는 머슴의 거짓말 때문에 와불을 세우지 못한 운주사의 도선국사 이야기도 그렇다.
물론 여기서 돌미륵은 예수가 부활하듯이 다시 세상에 내려와 민중을 구할 구세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저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병을 고쳐달라고,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어떻게 미륵이 우리 민중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렸는지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민중들이 미륵의 뒤를 따라 세상을 바꾸려 봉기했을 정도로 미륵을 믿었을까? 문제의 핵심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있다.
14세기 후반에 경상도 고성 출신인 이금(伊金)은 미륵을 자처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포교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 무당이 특히 미륵신앙이 두터워 자신들이 모셔온 성황신 대신 미륵을 모실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은 미륵신앙과 민중봉기에 관한 여러 기록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즉 역사를 움직인 민중봉기의 주인공들이 미륵을 끌어들여 세상을 심판하려 했던 것이다. 드디어 미륵이 민중의 전통신앙과 결합했다. 우주거인 미륵으로서, 창세신으로 재탄생함으로써 한국의 민중들에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는 신이 된 것이다. 미륵은 불교의 미륵불에서부터 민중의 미륵신앙의 주체로서의 미륵과 무속의 신으로서의 미륵, 창세신으로서의 우주거인 미륵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미륵이 원래부터 거인신이었다는 것도 우리 신화와 결합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미륵의 키는 석가의 80팔뚝 크기 혹은 16유순이라고 한다. 유순이란 고대 인도에서 사용한 거리의 단위다. 1유순은 소달구지가 하루에 가는 거리. 평균 10km쯤이라고 한다. 16유순이면 160km이니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 밖에 미륵의 머리털은 검붉은 유리 빛깔이며, 머리에는 온 세상을 비추는 여의주와 보석으로 만든 하늘관이 씌워져 있다. 미륵이 몸을 일으키면 마치 황금산 같다고 한다.
미륵은 우리 창세신화의 주인공이 되자마자 우주창조와 천지개벽의 과정에서 하늘과 땅을 떼어내고, 물과 불의 근원을 찾고,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세상을 빼앗으려는 석가와 내기를 한다. 제주도 신화에서는 천지왕과 그의 아들 대별왕 소별왕이 경쟁해서 이승과 저승을 차지하는데, ‘창세가’에서는 미륵과 석가가 경쟁한다.
미륵님 세월에는 섬두리 말두리 잡숫고 인간 세월이 태평하고 그랬는데, 석가님이 나와서서 이 세월을 앗아 뺏자고 마련하와, 미륵님의 말씀이 아직은 내 세월이지 네 세월은 못 된다. 석가님의 말씀이 미륵님 세월은 다 갔다, 인제는 내 세월을 만들겠다. 미륵님의 말씀이 너 내 세월 앗아가겠거든, 너와 나와 내기하자. 더럽고 축축한 이 석가야.
너와 나와 한 방에서 누워서 모란 꽃이 모락모락 피어서 내 무릎에 올라오면 내 세월이요, 네 무릎에 올라오면 네 세월이라. 석가는 도적 마음을 먹고 반잠 자고 미륵님은 참잠을 잤다. 미륵님 무릎 위에 모란꽃이 피어올랐소아 석가가 중동 사리로 꺾어다가 제 무릎에 꽂았다 일어나서, 축축하고 더러운 이 석가야, 내 무릎에 꽃이 피었는데 네 무릎에 꺾어 꽂았으니 꽃이 피어 열흘이 못 가고 심어 십년이 못 가리라.
미륵님이 석가의 너무 성화를 받기 싫어 석가에게 세월을 주기로 마련하고 축축하고 더러운 석가야, 네 세월이 될라치면, 가문마다 기생 나고 가문마다 과부 나고 가문마다 무당 나고 가문마다 역적 나고 가문마다 백정 나고 네 세월이 될라치면, 삼천 중에 일천 거사 나느니라. 세월이 그런 즉 말세가 된다.
세상에, 현세의 부처 석가가 도적놈에 불과하다니! 마음으로 부처를 모시는 사람들아, 놀라지 마시라. 이것은 석가가 현세를 지배하는 신격으로, 우리 신화의 상징으로 등장했다는 의미다. 그것은 우리 민중들이 ‘지금 여기’의 현실을 도적의 세월로 생각했다는 상징이다. 그것은 또한 미륵의 용화세계 유토피아를 빼앗은 석가의 현세를 말세로 생각했다는 상징이다. 여기서 우리 창세신격을 대체한 것이 왜 석가가 아니고 미륵일까 하는 의문이 풀린다.
이때의 미륵도 물론 우리 신화의 신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불교의 미래불이 아니라 우리 신화로 포섭된 미륵인 것이다. 그것도 56억 7000만년 후의 멀고도 먼 미래에 나타날 부처가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생명을 움직이는 힘으로서, 미륵은 ‘지금 여기’에 함께하는 창세신격이자 메시아인 것이다. 그것은 석가와의 마지막 내기에서 ‘생명꽃’을 피워 자라게 한 미륵의 능력으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천지개벽 끝에 실패하는 혁명가
그러나 미륵은 ‘천지개벽’을 이루지만 세상을 갖지 못한다. 착하기 짝이 없어서였을까, 세상사에 뜻이 없어서였을까. 우리 민중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법하다. 석가에게 속아서 세상을 내준 미륵처럼, 늘 현실에서는 실패하는 혁명가들이 돌미륵이 된다. 그래서 미륵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땅속에서 바다 속에서 곳곳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엉거주춤 일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미륵은 끝까지 우리 신화와 함께 민중의 곁에 남는다. 저항의 메시아로서 우주거인으로서 수호신으로서, 혹은 우리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