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일이지. 우리가 Corea로 불렸을 때는 줄곧 한 나라였는데 Korea로 불린 이후에는 분단되어 있으니 말이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거주하는 인공관절 전문의사인 오인동 박사(63)는 197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 줄곧 미국에 머물며 의사와 학자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70~80년대에는 하버드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를 지내며 관련 특허 11개를 포함, 수십여 편의 논문을 쏟아내어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의학보다는 한반도의 역사와 평화 문제가 그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97년 ‘국호를 Corea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통일을 하자면 가장 시급한 사항이 국호가 아니오? 그런데 ‘대한’ ‘조선’ ‘고려’라는 명칭은 서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고, 그렇다면 일단 과도기적으로 영어 명칭인 Korea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시작한 게 국호 연구였다. 그가 주목한 분야는 대한제국 이전부터 조선, 고려의 대외 외교문서. 한국의 사학자들과 미국 한국학연구소의 모든 자료를 찾아서 확인해본 결과 대한제국 이전의 우리 국호는 Corea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처음으로 아라비아 상인들과 교류했던 서기 1024년 당시 기록을 통해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불렀는지 알고 싶어 아랍어 고고음성학자의 도움까지 받았다.
“얼마 전에 북한도 ‘꼬레아-Corea가 좋다’고 논평했더군요. 알파벳 순서상 Japan의 ‘J’보다 Corea의 ‘C’가 앞선다는 속 좁은 이유이긴 했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맞춰가는 게 통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오박사는 LA의 한인 지식인들의 모임 ‘코리아-2000’의 연구위원을 맡아 미국 지식인들이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을 또 다른 목표로 삼고 있다. 국호 문제는 지난 4월 초 베를린에서 열린 4차 세계한민족포럼에서 특별제안 형식으로 Corea 국호론을 제기해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Corea 국호론에 갈수록 힘이 더해지고 있어 몇 년간의 연구가 빛을 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서울을 거쳐 미국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학자의 마지막 소망은 역시 자주적인 통일.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돼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걱정하고 있는지 위정자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도대체 그들에게 역사의식이 있는지 모르겠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거주하는 인공관절 전문의사인 오인동 박사(63)는 197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 줄곧 미국에 머물며 의사와 학자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70~80년대에는 하버드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를 지내며 관련 특허 11개를 포함, 수십여 편의 논문을 쏟아내어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의학보다는 한반도의 역사와 평화 문제가 그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던 중 97년 ‘국호를 Corea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통일을 하자면 가장 시급한 사항이 국호가 아니오? 그런데 ‘대한’ ‘조선’ ‘고려’라는 명칭은 서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고, 그렇다면 일단 과도기적으로 영어 명칭인 Korea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시작한 게 국호 연구였다. 그가 주목한 분야는 대한제국 이전부터 조선, 고려의 대외 외교문서. 한국의 사학자들과 미국 한국학연구소의 모든 자료를 찾아서 확인해본 결과 대한제국 이전의 우리 국호는 Corea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처음으로 아라비아 상인들과 교류했던 서기 1024년 당시 기록을 통해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불렀는지 알고 싶어 아랍어 고고음성학자의 도움까지 받았다.
“얼마 전에 북한도 ‘꼬레아-Corea가 좋다’고 논평했더군요. 알파벳 순서상 Japan의 ‘J’보다 Corea의 ‘C’가 앞선다는 속 좁은 이유이긴 했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맞춰가는 게 통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오박사는 LA의 한인 지식인들의 모임 ‘코리아-2000’의 연구위원을 맡아 미국 지식인들이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을 또 다른 목표로 삼고 있다. 국호 문제는 지난 4월 초 베를린에서 열린 4차 세계한민족포럼에서 특별제안 형식으로 Corea 국호론을 제기해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Corea 국호론에 갈수록 힘이 더해지고 있어 몇 년간의 연구가 빛을 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서울을 거쳐 미국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는 학자의 마지막 소망은 역시 자주적인 통일.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돼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걱정하고 있는지 위정자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도대체 그들에게 역사의식이 있는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