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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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이모작 포차’ 전성시대

낮엔 카센터, 밤엔 포장마차 ‘화려한 변신’ … 퓨전 안주에 물(?)관리도 각별 ‘인기 짱’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05-22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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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담동 ‘이모작 포차’ 전성시대

    청담동 일대 카센터는 밤이면 포장마차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디자이너 부티크와 대형 피트니스 센터, 명성을 날리는 레스토랑과 극장 등이 모여 트렌디한 청담동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서울 학동 사거리. 이곳에도 카센터로 불리는 자동차정비업소들이 있다. 정비사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곳 카센터의 모습은 BMW가 소나타보다 더 많다는 점만 빼면 다른 곳과 비슷하다.

    그러나 해가 질 무렵 청담동 카센터들은 갑자기 분주해진다. 차들이 옮겨지고 순식간에 물청소가 끝나면, 빨간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들이 놓인다. 카센터 사무실 반대편 문에서 커다란 아이스박스들과 대형 가스레인지, 접시와 물컵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쪽 벽을 가리고 있던 천막이 걷히니 활어들이 헤엄치는 수족관도 나온다.

    마술처럼 1시간 만에 카센터를 완벽한 포장마차로 바꿔놓은 것은 저녁 8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포장마차의 종업원들이다. 길가에 발레 파킹 부스가 세워지고, 대리운전업체에서 ‘080’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 현수막을 내걸면 청담동의 밤이 시작된다.

    화장실 갖추고 주차 서비스도 만점

    “여기 땅값이 워낙 비싸니까 시작됐죠. 낮에는 카센터, 밤에는 포장마차. 우리끼린 ‘이모작’ 한다고 해요. 카센터 주인과 포장마차 주인은 아무 관계 없구요.”



    2년 전 이곳 카센터에서 영업을 시작한 한 포장마차의 매니저 노경상씨의 말이다. 근처 토지 매매가가 평당 5000만원-실제 거래는 거의 없다-이고 카센터 면적이 보통 150평 안팎이므로 간단히 75억원짜리 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2001년 이곳 학동 사거리에 한 달 간격으로 ‘패밀리’ ‘노는 아이’ ‘하자’ 등 3개의 ‘이모작’형 포장마차들이 처음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모야’ ‘거시기’ 등 비슷한 스타일의 포장마차들이 10여개에 이른다.

    ‘이모작’ 포장마차의 원조임을 주장하는 한 포장마차 주인은 “이젠 카센터뿐 아니라 밤에 비는 공간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어디든 포장마차를 개업하려는 사람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불만스러워했다.

    ‘이모작’ 포장마차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경기침체와 부동산 가격 폭등의 결과라는 게 청담동 포장마차 주인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소주 3000원에 안주 1만~1만5000원으로 청담동에선 상대적으로 싸게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불황 속에서 오히려 호황을 맞고 있다고 귀띔한다.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포장마차 ‘노는 아이’의 대표안주는 치즈계란말이와 낙지떡볶이. 저녁 8시에서 오전 2~3시까지 쉴 새 없이 치즈계란말이를 만든다는 주방 아주머니는 “계란 8개에 치즈 1장을 넣어 두껍고 담백하게 부치는 게 비결”이라며 손님 많은 주말에 첫 손님이 계란말이를 주문하면 그날은 100장은 족히 만든다”고 말했다.

    청담동 ‘이모작 포차’ 전성시대

    ‘이모작’ 포장마차에는 특히 여자들끼리 온 손님이 많다(위). 술안주도 여성 취향의 계란말이와 낙지떡볶이가 인기.

    비록 포장마차지만 1000원의 봉사료를 받는 발레 파킹 서비스를 한다든가,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점 등은 근처 레스토랑과 다를 게 없다.

    “청담동은 발레 파킹 안 해주면 장사할 수 없는 곳이에요. 친절은 기본이고 바닥도 늘 깨끗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니저도 있어야 하고 주차요원이 3명, 서빙 아르바이트생이 6명이나 되죠.주방 담당까지 포함하면 총 15명이 일해요. 큰 규모죠.”

    ‘노는 아이’ 유강필 사장은 세도 비싼데 인건비 부담도 적지 않아 포장마차들 사이에 점점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덧붙인다.

    적극적으로 ‘연예인 마케팅’에 나선다는 점도 청담동답다. 청담동에서 레스토랑이든 옷집이든 화제가 되려면 ‘좋다’로는 부족하다. 황신혜 고소영 같은 스타들이 드나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이곳 포장마차들도 처음 문을 열 때 신인이라도 연예인을 ‘얼굴마담’으로 고용한다. 연예인이 ‘개업’해야 동료들도 찾아오고, 언론도 다뤄주기 때문이다. 스포츠스타 서모씨나 인기탤런트 이모씨 등이 모두 청담동 포장마차 앞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연예인 형사’로 잘 알려진 연홍식씨는 “강남에 사는 연예인들이 포장마차를 자주 찾고, 유흥업소 종사자들도 적지 않아 ‘물 좋다’는 소문이 나 멀리서까지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전성시대를 맞은 것 같다”고 한다. 실제로 주말에는 ‘패션’으로서 청담동 포장마차를 경험하려고 강남 밖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댄다.

    싼 술값에 옛 정취 만끽 ‘문전성시’

    청담동에서 처음으로 뉴욕 스타일의 트렌디한 카페를 낸 ‘하루에’의 주수암 사장은 “이곳 카페들이 외국생활을 경험한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해 성공했지만, 그들은 결국 한국사람이다. 스트레스 받으면 소주에 매운 안주 먹어야 풀리는 게 우리 아니냐”고 말했다.

    포장마차에서 만난 일본 유학생 박일진씨(20)는 “친구들과 일주일에 서너 번은 여기 온다. 집 같다. 모두들 너무나 멋지게 차려 입은 바나 카페보다 자유스럽다”며 친구들과 소주잔을 부딪쳤다.

    나이 지긋한 한 중년 남성은 “대학생인 아들과 얘기해본 지도 오래됐다. 하지만 그 녀석도 친구들과 포장마차에 다니는 걸 보면 뭔가 통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국사람들에게 룸살롱에서 양주를 마시는 것이 업무적이고 위선적인 인간관계의 상징이라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는 것은 원초적이고 솔직한 인간관계의 제의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후보들이 단일화를 하고, 포장마차로 직행해 ‘러브샷’을 한 건 포장마차가 우리의 문화적 코드이기 때문이다.

    “청담동이니까 처음엔 양주를 가져다 놓았죠. 그런데 절대적으로 소주예요. 아, 가끔 찾는 분이 있어요. 그런데 창피하다고 주전자에 따라서 달라고 하죠.”

    ‘노는 아이’ 유강필 사장의 말이다.

    청담동 포장마차에서 첫 손님 대열에 속하는 직장인들이 소주 한 잔을 반주 삼아 저녁을 때우고 사라지면, 젊은 남녀들이 나이트클럽에 가기 전에 들러 ‘부킹’의 결의를 다진다. 늦은 밤에는 단란주점까지 거친 사람들이, 아침이 가까운 새벽에는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피곤한 얼굴로 이곳을 찾아와 소주 한 잔을 기울인다.

    매일 밤을 밝히는 포장마차들 덕분에 청담동은 두 개의 풍경을 갖게 됐다. 왁스칠한 외제차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밤이 되면 소주잔이 놓인다. 모퉁이만 돌면 로데오가의 대리석 건물들과 마주치지만 밤의 청담동은 종로 세운상가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것을 청담동의 또 다른 ‘겉멋’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때 청담동을 점령할 듯하다 자취를 감춰버린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들보다는 훨씬 ‘정통’처럼 느껴진다.

    ‘이모작’ 포장마차의 싸구려 의자에 앉아 “열받아!”를 외치며 조개탕 국물을 안주 삼아 부지런히 소주잔을 비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곳도 대한민국 어딘가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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