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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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광한 잔치는 안 끝났다

선수들 그 순수한 표정과 매력 현재진행형 … 오늘밤도 비디오 보며 ‘행복’

  • 최영미/ 시인

    입력2003-05-21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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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열광한 잔치는 안 끝났다
    월드컵의 추억이라니?

    월드컵은 내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추억할 수는 없다. 나는 축구에 미친 사람이다. 기자에게 원고청탁 전화를 받은 날 새벽에도 나는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시청하느라 잠을 설쳤다.

    자명종 시계를 3시30분에 맞춰놓고 행여 생중계를 놓칠까 자는 둥 마는 둥 누워 있다, 정확히 오전 3시30분에 침대에서 일어나 가운을 걸쳤다. 멍한 눈을 비비며 더듬더듬 거실에 불을 밝히고 텔레비전을 켰다. 광고가 나오는 동안 나는 베란다에 서서 맞은편 아파트에서 불이 켜진 집을 세어본다. 한 층에 한 집 정도 불이 들어왔다. 지금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선 난리가 났겠지. 챔피언스리그를 실시간으로 저녁 7시쯤에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나의 꿈을 실현하려면 책을 출판해야 하는데, 월드컵이 아니었다면 작년에 완성했을 소설을 질질 끌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치민다. 아, 축구는 내 삶의 이유이자 덫이었다.

    깊은 잠에 빠진 도시의 어둠을 응시하며 나는 지난해 6월, 내 이마에 내려앉았던 눈부신 햇살을 추억한다. 아침 7시, 혹은 6시도 안 된 ‘꼭두새벽’에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거리로 나갔다. 현관문을 밀어젖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거리의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만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가까운 편의점에 내가 애독하는 스포츠신문이 없으면 다시 20m쯤 걸어가 지하철역 앞 가판대에서 나의 다급한 갈증을 채워줄 ‘마약’을 샀다. 600원짜리 마약을 옆에 끼고 모자를 눌러쓴 채 나는 조용히 마약에 탐닉할 의자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 나는 신문을 읽었다. 어제의 경기에 대한 뻔한 기록보다 각국 선수들의 동정과 인터뷰 기사를 챙겼다. 덴마크 선수들은 경기가 없는 날이면 숙소인 남해의 바닷가에서 낚시를 한다. 참 근사하군. 북유럽 청년들이라 확실히 여유가 있어. 인생이 뭔지 아는 인간들 같아. 내가 왜 진작 이런 남자들을 만나지 못했을까. 덴마크의 최전방 공격수인 토마손의 깎은 듯한 완벽한 미모는 신의 작품이었다. 그가 내 것이 아니더라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나는 행복했다.



    최고 선수는 상대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배워

    내가 열광한 잔치는 안 끝났다
    6월의 모든 아침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활자의 숲을 산책하느라 눈이 침침해지고, 앞으로 숙인 이마가 태양에 달궈져 뜨뜻해질 무렵,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신문에서 눈을 떼면 어느새 해가 중천에 걸렸고 사방에 싱그러운 햇살이 가득했다. 검은 글씨들에서 벗어나 갑자기 푸른 신록을 마주하던 순간의 그 아찔한 현기증. 어질어질함 속에서 나는 예감했던가. 앞으로 영원히 나는 축구에 코를 박으리라. 그것이 나의 운명임을, 불쌍한 최영미의 영혼을 위해 신이 내린 축복이자 저주임을….

    브라질과의 예선 경기에서 골을 넣은 터키팀의 하산 샤슈의 우수 어린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층에는 동아일보 Y기자가 산다. 하산의 신비로운 모습에 가슴이 울렁거린 며칠 뒤 어느 날 나는 Y의 집을 방문했다. 카스텔라 봉지를 뇌물처럼 그의 부인에게 내밀며 내가 지을 수 있는 최고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터키의 11번, 하산 샤슈(Sas Hasan).’ 그녀에게 건네준 쪽지에 적힌 이름의 알파벳 철자가 틀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내가 지금 철 지난 짝사랑 타령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가? 아니다. 나는 좀더 심오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를 열광시켰던 건 그네들의 순수한 표정이었다. 그처럼 욕심 없고 깨끗한 얼굴과 살아 움직이는 몸짓에 나는 굶주려 있었다. 이영표와 유상철, 김남일이 이 땅 뭇여성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건 그동안 조선의 남자들이 조선의 여자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남보다 월등한 지식을 탐하는 치들의 얼굴이 지겨웠다.

    모든 선수들이 나를 매료시킨 건 아니다. 마피아의 행동대원처럼 생긴 이탈리아의 토티가 경기 중 심판의 눈을 속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홍명보와 팔이 살짝 부딪쳤는데도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픈 시늉을 했다. 그처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도 반칙을 하다니… . 나는 충격을 받았다.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세상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그동안 나는 실력이 모자라는 인간들만 남한테 해코지한다는 흑백논리에 갇혀 있었다.

    2002년 6월 한 달 동안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신문을 읽고 축구를 보고 축구에 대해 수다 떠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6월이 지난 다음에도 한동안 나는 월드컵 후유증을 앓았다. 재방송해주는 한국팀의 경기를 모조리 시청했고 2002 월드컵의 주요 경기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세트로 구입했다. 그리고 영자로 발행되는 ‘월드 사커’를 사기 위해 버스를 탔다.

    나는 축구를 통해 어떤 고매한 사상가의 책에서도 얻지 못한 인생의 교훈을 몇 가지 얻었다. 실력 있는 선수도 반칙을 범하고 심판의 눈을 속이지만, 호나우두나 지단처럼 최고의 선수는 상대를 해치지 않는다. 옐로카드나 레드카드를 받지 않는다. 적어도 일부러 상대를 해치는 행위를 먼저 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어젯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결심하며 그동안 30번쯤 본(과장이 아님!) 한국과 이탈리아와의 8강전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장 완장을 찬 말디니의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단발머리가 눈에 걸렸다. 나보다 멋진 그의 헤어스타일이 빗장수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팀이 패배한 진짜 원인이 아닐까. 경기 중에 그는 손으로 머리를 자주 쓰다듬었다. 앞을 가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는 데 신경을 쓰느라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후반 종료 직전에 터진 설기현의 동점골은 이탈리아 수비수의 실수로 얻은 선물이었다. 바티스투타, 크레스포, 아이마르를 거느린 아르헨티나가 예선 탈락한 것도 월드컵에 출전한 32개 나라 중에서 가장 길고 분방한 선수들의 머리카락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해 여름 나를 두드렸던 무수한 느낌과 사색의 조각들을 더 늘어놓는 건 지루한 일이리라.

    월드컵은 끝났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던 정몽준과 히딩크의 야망이 만나 연출한 황홀한 연극은 막을 내렸다. 땀을 흘린 선수들은 연극의 배우였고, ‘대~한민국’을 합창한 국민들은 어마어마한 돈과 재능과 시간을 쏟아 부은 잔치를 무료로 관람한 관객이자 주인이었다. 두 남자는 무대 뒤로 사라졌지만 그해 6월, 내 이마에 내려앉았던 뜨거운 햇살은 영원하리라. 오로지 추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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