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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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아리송한 연판장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3-05-21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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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의 아리송한 연판장

    통외통위의 대표적 보수파 김용갑 의원. 대북 비료 지원 찬반을 묻는 연판장도 김의원 등 당내 보수파의 작품이다.

    5월 초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이하 통외통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묘한 연판장이 나돌았다. ‘대북 비료지원 반대 서명부’라는 제목의 이 연판장을 돌린 이는 조웅규 통외통위 한나라당 간사.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출되는 20만t, 시가 650억원 상당의 비료 지원에 대해 한나라당 통외통위 의원들의 찬반 의견을 물은 것.

    눈길을 끄는 것은 비료 지원 찬반의견을 묻는 질문내용. 찬성란에는 ‘즉각 지원하자’고 표현한 반면 반대란에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가시적 성과가 있기 전까지 유보하자’고 표현한 것. 찬반 의견 밑은 공란으로 두고 의원들에게 서명할 것을 요구했는데 ‘비료 지원 유보’란에는 조간사를 포함, 김용갑 유흥수 의원 등 대북 강경파 의원들이 이미 인쇄체로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이 연판장을 받아든 한나라당 의원들의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강경파 의원들처럼 비료 지원을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즉각 지원하자’는 란에 서명을 하자니 한나라당의 보수적 분위기와 맞지 않아 대다수 의원들이 곤혹스러워했다는 것.

    결국 홍사덕 의원만이 공개적으로 비료 지원을 하자는 의견을 밝혔을 뿐 대다수 통외통위 의원들이 차일피일 서명을 미루며 눈치를 봤다. 한 관계자는 “비료 지원은 경제협력기금에서 지출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국회 동의 과정이 따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모든 대북사업에 대해 이런 식으로 한나라당 내부 의견 단속을 하기 시작하면 보수적 인사들 외에는 대북협력에 대해 자기 소신을 밝히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헌법기관인데 이런 식으로 의원 개인의 의견을 통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회창 총재시절이 그립다”고 말했다. “이총재가 당을 틀어쥘 때만 해도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총재가 의견조율을 해줬다. 하지만 당의 리더가 사라진 뒤 매사에 찬반 의견을 묻는가 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권을 쥐는 식으로 당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



    한편 정부는 5월16일 제111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어 비료 20만t, 650억원어치의 대북 지원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정부는 비료 구입과 수송선사 계약을 거쳐 이달 말부터 대북 비료 지원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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