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4월 중순을 고비로 세계 주식시장은 ‘전쟁 악재’에서 벗어나 서서히 기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전후 특수’가 새로운 호재로 떠올랐고 유럽증시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증시는 예외였다. 일본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20년 만의 최저치로 곤두박질쳤고 그 여파는 대만과 싱가포르에까지 번졌다. 한 애널리스트는 “‘소니 쇼크’가 아시아 증시를 그로기 상태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소니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의 대표기업. 대체 소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소니는 4월24일 증시 폐장 직후 3월 말 결산결과를 발표했다. 매출은 7조4736억엔으로 전년보다 약간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500억엔 가량 늘었다. 장기불황으로 일본 내수경기가 바닥인 점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선전했다고 평가받을 만한 성적이었다.
“소니마저 …” 충격받은 일본열도
문제는 2002 회계연도의 마지막 분기인 올 1~3월 중 1165억엔의 손실을 입었다는 점. 내수시장과 해외시장 모두에서 가전제품의 판매가 부진했던 탓이다. 소니측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하는 재고 처리 작업에 들어간 비용이 포함됐기 때문으로 향후 전망은 나쁘지 않다”고 강변했지만 투자자들은 다른 기업도 아닌 소니가 적자를 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다음날인 25일 도쿄증시에서는 개장과 동시에 투매현상이 나타났다. 이틀간에 걸친 주가폭락만으로 소니의 시가총액 중 1조엔(약 10조원) 가까운 돈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여기에 히타치 마쓰시타 등 멀쩡한 기업들의 주가도 사업구조가 소니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덩달아 하락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바이오’ 노트북 등 소니 핵심제품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여서 소니의 고전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니의 적자는 게임 소프트웨어 등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느라 DVD 플레이어와 PDP-TV 등 경쟁이 치열한 디지털가전 분야에서 새 모델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애널리스트는 “소니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디지털가전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며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소니의 순익이 이전의 성장세를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소니 신용등급의 하향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최근의 부진을 ‘소니 신화의 종말’로 연결짓기는 이르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소니는 디지털가전 시장의 재편에 대비해 1990년대 중반 이후 제품구조를 꾸준히 재편해온 데다 브랜드 이미지에서 강점이 있어 후속 모델만 적절히 공급한다면 언제든 흑자로 돌아설 잠재력이 있기 때문. 어쨌든 주가폭락의 주범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니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또 다른 ‘일본 대표기업’ 도요타의 상승세는 라이벌 소니의 고전으로 더욱 돋보인다. 도요타자동차는 3월 말 결산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매출 16조542억엔, 경상이익 1조4140억엔(약 14조원)으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매출은 전년보다 6.3%, 경상이익은 27.0% 늘어난 수치다.
자동차 판매대수는 624만대로 처음으로 600만대를 돌파해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에 이어 3위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지난해 일본기업 중 처음으로 ‘경상이익 1조엔 시대’를 연 도요타는 이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제조업의 간판’임을 입증했다.
조 후지오(張 富士夫) 도요타 사장은 “목적지는 멀었으며 이제 중·장기적인 성장을 향해 통과하는 단계일 뿐”이라며 우선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15%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당면과제라고 말했다. 표현은 겸손했지만 업계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포드를 제치고 GM과 세계 1위를 놓고 한판승부를 겨뤄보겠다는 내심을 비춘 것으로 해석했다.
도요타와 소니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불황 속에서도 양호한 성적을 낸 반면, 전자업계는 상당수 업체들이 적자에 허덕이거나 소폭 흑자를 내는 데 그쳤다. 도요타와 함께 일본의 ‘자동차 빅3’로 꼽히는 닛산과 혼다는 최고이익을 기록하면서 전체 일본기업 중 경상이익 4,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도요타, 닛산, 혼다 등 3개사가 모두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의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용병 CEO’인 카를로스 곤 사장의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기업에서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한 닛산자동차는 7000억엔이 넘는 경상이익을 올리며 한때 2조엔이 넘던 천문학적인 부채를 모두 갚았다. 젊은층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혼다차 역시 신형 모델이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끈 데 힘입어 매출액에서 닛산을 앞서는 저력을 발휘했다.
반면 전자업계는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초 대형 전자업체들은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낸 뒤 비용절감을 위해 인원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에 올해는 소폭이나마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러나 결산 직전인 3월 이라크전쟁 등의 영향으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각사가 보유한 주식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던 거액의 평가손을 입은 것이다.
미쓰비시 전기, NEC, 산요도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영업에서는 이익을 내고도 적자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2년 연속 거액의 적자를 낸 후지쓰는 적자 누적으로 투자 여력이 고갈된 데다 내부개혁도 지지부진해 회사 존립마저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자업계는 “증시 침체 때문에 적자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며 억울해하지만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분명한 만큼 발상을 전환하지 않는 한 옛날의 명성을 되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아시아 증시는 예외였다. 일본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20년 만의 최저치로 곤두박질쳤고 그 여파는 대만과 싱가포르에까지 번졌다. 한 애널리스트는 “‘소니 쇼크’가 아시아 증시를 그로기 상태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소니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의 대표기업. 대체 소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소니는 4월24일 증시 폐장 직후 3월 말 결산결과를 발표했다. 매출은 7조4736억엔으로 전년보다 약간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500억엔 가량 늘었다. 장기불황으로 일본 내수경기가 바닥인 점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선전했다고 평가받을 만한 성적이었다.
“소니마저 …” 충격받은 일본열도
문제는 2002 회계연도의 마지막 분기인 올 1~3월 중 1165억엔의 손실을 입었다는 점. 내수시장과 해외시장 모두에서 가전제품의 판매가 부진했던 탓이다. 소니측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하는 재고 처리 작업에 들어간 비용이 포함됐기 때문으로 향후 전망은 나쁘지 않다”고 강변했지만 투자자들은 다른 기업도 아닌 소니가 적자를 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다음날인 25일 도쿄증시에서는 개장과 동시에 투매현상이 나타났다. 이틀간에 걸친 주가폭락만으로 소니의 시가총액 중 1조엔(약 10조원) 가까운 돈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여기에 히타치 마쓰시타 등 멀쩡한 기업들의 주가도 사업구조가 소니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덩달아 하락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바이오’ 노트북 등 소니 핵심제품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여서 소니의 고전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니의 적자는 게임 소프트웨어 등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하느라 DVD 플레이어와 PDP-TV 등 경쟁이 치열한 디지털가전 분야에서 새 모델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애널리스트는 “소니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디지털가전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며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소니의 순익이 이전의 성장세를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소니 신용등급의 하향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최근의 부진을 ‘소니 신화의 종말’로 연결짓기는 이르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소니는 디지털가전 시장의 재편에 대비해 1990년대 중반 이후 제품구조를 꾸준히 재편해온 데다 브랜드 이미지에서 강점이 있어 후속 모델만 적절히 공급한다면 언제든 흑자로 돌아설 잠재력이 있기 때문. 어쨌든 주가폭락의 주범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니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또 다른 ‘일본 대표기업’ 도요타의 상승세는 라이벌 소니의 고전으로 더욱 돋보인다. 도요타자동차는 3월 말 결산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매출 16조542억엔, 경상이익 1조4140억엔(약 14조원)으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매출은 전년보다 6.3%, 경상이익은 27.0% 늘어난 수치다.
자동차 판매대수는 624만대로 처음으로 600만대를 돌파해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에 이어 3위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지난해 일본기업 중 처음으로 ‘경상이익 1조엔 시대’를 연 도요타는 이로써 명실상부한 ‘일본 제조업의 간판’임을 입증했다.
조 후지오(張 富士夫) 도요타 사장은 “목적지는 멀었으며 이제 중·장기적인 성장을 향해 통과하는 단계일 뿐”이라며 우선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15%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당면과제라고 말했다. 표현은 겸손했지만 업계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포드를 제치고 GM과 세계 1위를 놓고 한판승부를 겨뤄보겠다는 내심을 비춘 것으로 해석했다.
도요타와 소니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불황 속에서도 양호한 성적을 낸 반면, 전자업계는 상당수 업체들이 적자에 허덕이거나 소폭 흑자를 내는 데 그쳤다. 도요타와 함께 일본의 ‘자동차 빅3’로 꼽히는 닛산과 혼다는 최고이익을 기록하면서 전체 일본기업 중 경상이익 4,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도요타, 닛산, 혼다 등 3개사가 모두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의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용병 CEO’인 카를로스 곤 사장의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기업에서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한 닛산자동차는 7000억엔이 넘는 경상이익을 올리며 한때 2조엔이 넘던 천문학적인 부채를 모두 갚았다. 젊은층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혼다차 역시 신형 모델이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끈 데 힘입어 매출액에서 닛산을 앞서는 저력을 발휘했다.
반면 전자업계는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초 대형 전자업체들은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낸 뒤 비용절감을 위해 인원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에 올해는 소폭이나마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러나 결산 직전인 3월 이라크전쟁 등의 영향으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각사가 보유한 주식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던 거액의 평가손을 입은 것이다.
미쓰비시 전기, NEC, 산요도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영업에서는 이익을 내고도 적자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2년 연속 거액의 적자를 낸 후지쓰는 적자 누적으로 투자 여력이 고갈된 데다 내부개혁도 지지부진해 회사 존립마저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자업계는 “증시 침체 때문에 적자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며 억울해하지만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분명한 만큼 발상을 전환하지 않는 한 옛날의 명성을 되찾기는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