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부시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는 데는 기대 수준이 낮았던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미정상회담 직후인 5월16일 이뤄진 이 조사에 응한 전문가는 백진현 교수(서울대 국제지역원) 조명철 박사(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허문영 박사(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궁곤 교수(경희대 정치학) 이장희 교수(외국어대 법학·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건우 교수(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장·전 주미대사) 강규형 교수(명지대 교양학부) 박건영 교수(가톨릭대 국제학부) 박인휘 박사(한미교류협회 연구위원) 마상윤 교수(가톨릭대 초빙교수·이상 무순) 등 10명이다.
먼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설문에 응한 10명의 전문가들 중 6명이 ‘성공적이었다’고 답변했다. ‘그저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은 2명이었고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응답한 사람과 ‘소기의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각각 1명씩이었다.
핵문제 경협 연결 즉흥적 발언 인상
통일연구원 허문영 선임연구위원은 “김대중-부시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언급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정권 교체(regime change)’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북한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는 응답(6명)이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다’는 응답(4명)보다 많아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특히 일부 전문가는 정상회담 직후 발생한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인 길재경 부부장의 미국 망명 사건이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에 단기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서울대 백진현 교수는“한미 양국 간 차이만 피해갔을 뿐 북핵 문제에 대한 공동전략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경협을 연계하게 되면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라고 우려한 전문가도 있었다. 가톨릭대 박건영 교수는 “핵문제와 경협을 연결한 것은 숙고와 성찰이 결여된 즉흥적 발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한미동맹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10명 중 6명이 ‘한미동맹 관계 회복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응답했으나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4명이나 됐다. 다만 한미동맹 관계의 이견을 확인했다거나 이견을 심화시켰다는 응답은 없었다.
가장 의견이 엇갈리는 대목은 노대통령의 방미 중 발언에 대한 평가였다. 특히 “한국전쟁 때 미군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라는 노대통령의 발언은 한미 간 신뢰를 회복하고 미국 내 강경파의 노대통령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을지 몰라도 방법론에 있어서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럼스펠드 장관(위 사진 왼쪽) 같은 강경파와 경제 지도자들을 만나 한미관계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명철 연구위원은 “미국 방문 전에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대통령 발언 수준을 미리 공론화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러한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한 상태”라고 말했다. 조위원은 “(이러한 일련의 발언으로 인해) 북한측의 반응이 안 좋을 것 같다”면서 한국이 3자회담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SOFA·작전 통제권 언급 안 해 아쉬움
그러나 한미동맹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문가들은 노대통령의 발언이 한국에 대한 불신을 씻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편 박인휘 한미교류협회 연구위원은 “미국 도착 직후부터 일관되게 나온 대미 우호적 발언들이 평소 노대통령에게 의구심을 갖고 있던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의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 자체를 바꿔놓지는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정상회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상회담 이전에는 친미 발언의 수위를 낮추고 회담 이후 부시와의 신뢰 구축을 거론하면서 적극적인 친미 언행을 했더라면 더 큰 효과를 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가장 미흡했던 부분을 묻는 질문에는 베이징 3자회담의 진로와 관련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박건우 전 주미대사는 “베이징 3자회담의 향후 진로에 대한 토의가 다소 미흡했다”고 지적했고, 통일연구원 허문영 선임연구위원도 “중국을 포용하는 차원에서 동북아 주변 평화 구축을 언급하거나 향후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언급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장희 외대 교수는 “3자회담에서 북한이 내놓은 ‘새롭고 대담한 해결방안’에 대해 미국측이 통일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나 작전 통제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덧붙였다.
정상회담 이후의 과제와 관련해서는 정상회담의 결과를 북한측에 어떻게 설명하고 남북관계 발전에 촉매제로 삼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한미정상회담 이후의 과제에 대해 통일연구원 허문영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정권 붕괴를 우려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정상회담 결과를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식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명지대 강규형 교수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대북 포용정책을 대전제로 하더라도 DJ식 햇볕정책과는 달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희대 남궁곤 교수는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 유지와 남북관계 진척이라는 모순된 현상을 보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이를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