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7일 고 제정구 의원 추모 모임에 참석한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한나라당 김홍신·신영국 의원, 유홍준 교수, 손학규 지사(앞줄 왼쪽부터).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행사장으로 들어서자, 노당선자 측근인 이강철 민주당 개혁특위위원은 “재오야”라고 부르며 반갑게 맞았다. 추모행사 사회는 민주당 출신 원혜영 부천시장이 맡았다.
이날 행사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후보가 1년 예정으로 미국으로 떠나는 시각과 거의 겹쳤다. 대선 기간 이 전 후보의 비서실장이었던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기자에게 “고 제정구 의원과는 친분이 있다. 인천공항에 들러 이 전 후보를 배웅한 뒤 곧장 추모식장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같은 일정이었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인천공항 배웅은 생략하고 추모식에만 참석했다.
노당선자는 허리수술을 받은 뒤로는 두툼한 한복을 입고 다닌다. 이날도 한복 차림이었다. 개혁국민정당 김원웅 대표는 노당선자에게 다가와 “허리는 어때요”라며 친근한 말투로 물었다. 노당선자는 “레이저로 지져놓았기 때문에 조금 조심해야 된대요”라고 답했다. 추모식장에서 노당선자와 한나라당 이부영, 김홍신 의원이 나란히 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제의원 업적 기리는 추모행사 논의도
노당선자는 추모사에서 고 제정구 전 의원을 “정구형”이라고 불렀다. 그는 “옳은 것에 몸을 던질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에 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왔다”며 “정구형, 저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우정 회복’과 ‘통추 이념의 실천’을 상기시키려는 말로 들렸다. 노당선자는 이어 고인 등 한나라당행을 택한 통추 인사를 지난 대선 방송토론에서 비판한 것과 관련,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노당선자의 추모사가 끝나자 방청석에 있던 한나라당 소속 박계동 전 의원은 “노무현보다 제정구가 옳았습니다. 무슨 변명을 그렇게 해”라고 외쳤다. 그러자 바로 이어진 추모사에서 김원기 민주당 고문은 ‘딴 의미를 두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우리 입장을 오해하지 않도록 말씀을 잘 생각해서 해주셔야 하겠습니다’라는 한나라당 한 의원의 사전 부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통추는 정치개혁, 지역감정 극복 등을 목표로 고 제정구 의원 등이 1995년 결성했으나 97년 대선을 앞두고 해체된 조직이다. 이날 추모모임에는 노당선자, 김원기 고문, 손학규 지사, 김부겸 의원, 김원웅 대표, 이부영 의원, 김홍신 의원,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자, 원혜영 시장, 이철 전 의원, 박석무 전 의원 등 통추 출신 인사들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 김상현 의원, 장을병 전 의원, 유시민씨 등 여야 정치인이 대거 참석했다. ‘개혁 대 보수’의 정계개편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 이날 모임 주요 참석자들의 발언과 행보는 주목받을 만했다.
경남 고성 출신인 고 제정구 의원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72년 청계천 판자촌 야학을 시작으로 평생을 도시빈민 구제에 헌신했다. 86년엔 이 공로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렸다. 그는 통추 등 정치활동을 통해서 ‘지역분할 정치 반대’ 등 정치개혁에도 앞장섰으나 99년 폐암으로 55세를 일기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날 모임엔 고 제정구 의원을 추모하는 각계 인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의 유홍준 대표(명지대 교수)는 “제정구 추모 기행 행사를 열겠다”고 말했다. 제정구재단추진위원회 김학준 위원장(동아일보 사장)은 “고 제정구 의원의 빈민운동 업적을 기리는 ‘제정구상’을 제정해 제3세계 사회 운동가들이 이 상을 받게 하고 싶다”며 “여러 추모행사를 주관할 재단을 내년중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