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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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는 새 틀을 짜라

비밀 송금으로 신뢰 상실 經協 방법 개선 목소리 … 대북사업 투명성 제고 기회 삼아야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2-13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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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정부는 새 틀을 짜라

    금강산 육로관광 개시로 현대의 관광사업 추진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개성공단 사업은 입주 희망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정부주도형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개성시 전경(아래).

    현대상선 대북송금 사건으로 정부뿐만 아니라 ‘현대’라는 기업 이미지도 큰 상처를 입게 됨에 따라 새 정부 들어 대북사업의 주체로 누가 나설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미 육로관광 실시 단계로 접어든 금강산 관광사업은 기존 사업권자인 현대가 계속 추진한다 하더라도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한 개성공단 사업은 현대가 당초 계획대로 밀고 나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번 기회를 남북경협의 틀을 새로 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남북경협의 유일한 에이전트 역할을 했던 현대는 이번 대북송금 사건으로 인해 신뢰 상실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런 만큼 남북경협의 대표기업으로서의 지위는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북한경제팀장은 “이제 남북경협에서 에이전트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북한과의 연결 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기업을 이용하고 그 기업에 특혜를 주는 식의 구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동팀장은 “지금이야말로 포용정책의 발전을 위해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단절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김연철 연구교수도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사업 모두 투자자 모집을 앞두고 있는데 대북 송금 사건을 보면서 누가 이 사업에 투자하려고 뛰어들겠느냐”면서 결국 새 정부에서는 남북경협의 파트너를 새로 정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교수는 “결국 단일기업으로는 힘들 것 같고 중국이 경제특구를 운영할 때 보여준 것처럼 개발공사나 개발청을 만드는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특정기업 이용 후 특혜’ 이대로는 안 된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북경협 사업에 있어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처럼 정부가 할 일을 민간기업이 대신하고 정부는 경협사업을 벌여온 기업에 발목잡혀 있는 ‘기형적’ 구조를 청산해야만 역할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좀더 근원적인 접근을 해보자. 현대는 1992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선 출마에 따른 후유증으로 김영삼 정부 내내 투자 부진 상황을 면치 못하다 1997년 IMF 위기가 닥친 후 남북경협 사업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IMF 체제 하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 입장에서는 햇볕정책을 경제적으로 지원사격해주는 현대의 대북사업이 당시로서는 유일한 ‘원군’이었던 셈.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 정부는 현대에게 커다란 부채를 안고 출범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준 것이나 ‘왕자의 난’ 당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데에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그런 의미에서 현대에 아무런 빚도 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현대와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면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함께 승계하겠다고 선언한 노무현 정부가 현대를 향해 ‘표정을 바꿀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남북경협 사업에서 정부와 민간이 어차피 새로운 관계설정을 해야 한다면 아직 공사일정조차 잡지 못한 개성공단 사업이 바로 그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사업이야말로 현대에만 맡겨두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큰 사업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대부분 국내 중소기업들이 참여하게 될 개성공단 사업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직접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중앙대 이상만 교수(경제학)는 “개성공단은 금강산 사업과 달리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는 지점이라는 점에서도 정부가 관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 건설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개성공단 시공과 건설은 정부를 대표하는 토지공사가 맡되,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참여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토지공사와 공동 참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평양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생산하고 있는 ㈜IMRI 유완영 회장은 “현대가 독점권을 확보하면서 지불한 대가를 결국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중소기업이 떠안게 될 판”이라면서 “기본적인 인프라 지원을 기업들이 떠맡을 수는 없는 만큼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구도는 물론 지금처럼 현대와 토지공사가 어정쩡하게 공동사업자 행세를 하고 있는 상황을 청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와 관련해 현대와 토지공사 간에 개성공단 사업권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장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판가름날 전망이다. 그러나 남북경협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는 구도에서 본다면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장을 토지공사 쪽에서 맡아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오히려 지금과 같은 ‘기형적’ 구조를 바로잡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정부주도론’을 펴는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새 파트너 참여 논의 북한 설득이 관건

    물론 이때도 현대를 대북사업의 유일한 사업자로 인식하고 있는 북한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지 않아도 대북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이미 북한측과 현대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 대변인은 최근 성명을 통해 “남한의 일부 반통일 세력이 북한과 현대의 경제협력을 대북 비밀자금 지원 의혹이라고 들고 나오는 것은 순조롭게 나아가는 북남관계에 제동을 거는 불순한 놀음”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한마디로 현대와 북한의 관계에 대해 제삼자가 시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현대가 갖고 있는 남북경협 사업의 유일한 파트너라는 지위에 손상이 갈 경우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현대의 실패는 곧 아태의 실패’로 해석될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현대를 보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육로관광 개시를 통해 일단 한숨을 돌린 금강산 관광사업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지금과 같은 사업 형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5월로 임기가 끝나는 조홍규 한국관광공사 사장 후임에 누가 임명될지가 관심사 중의 하나지만 누가 임명되더라도 관광공사가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금강산 사업을 떠받치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 상황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서비스 산업의 특성상 현대가 계속 맡아 관광사업을 벌이면서 수익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중앙대 이상만 교수는 “관광공사가 나서서 카지노 사업을 유치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로 현대의 역할을 인정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 관광사업은 현대가 주관하되 관광공사는 휴게소나 연계관광 등 주변 인프라에 해당하는 부분을 나눠 맡는 식의 역할분담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새 정부 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를 통한 투명한 대북지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부 국책연구기관 등에서는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매년 정부 예산의 일정 비율을 떼어내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대북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선언한 노무현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만난 대북송금이라는 암초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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