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천선동의 성주사는 이르면 가야국 초기, 늦게는 신라 흥덕왕 10년(835)에 세워졌다는 설이 제기될 정도로 아주 오래된 절이다. 이 고색창연한 성주사의 대웅전 입구에는 돼지 석상 한 쌍이 서 있다. 다른 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드문 경우다. 돼지 석상은 사찰 풍수뿐만 아니라 고을 풍수에서도 희귀한 사례에 해당한다.
성주사 돼지 석상이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성주사 스님들은 50년이 넘은 것은 확실하고, 대충 잡아도 100년 전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돼지 석상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비슷비슷한 설들이 많다. 절터의 형상이 제비집[燕巢穴]인데 절 앞산이 제비를 노리는 뱀의 머리와 같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절에 뱀이 많아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성주사 절터와 뱀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실제로 돼지는 살모사가 물어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뱀과 상극인 동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왠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성주사 앞산이 뱀의 머리 모양이기 때문에 돼지석상을 세웠다는 것은 ‘풍수적 애교’로 보아줄 수는 있겠으나 100년 역사를 가진 돼지 석상이고 보면 그리 간단하게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또 절에 뱀이 많아 돼지 석상을 세워 내쫓으려 했다는 것도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영물인 뱀이 돌 돼지에 놀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답은 이 절터의 지기(地氣)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대웅전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돼지 석상 말고도 대웅전 계단 좌우에 서 있는 해태 한 쌍과 대웅전 입구에 조성된 연못 등을 볼 수 있다. 돼지·해태·연못 이 세 가지는 모두 물[水]을 대표한다. 돼지는 음양오행학의 12지지 이론에서 물을 상징하고, 해태 역시 바다에서 사는 만큼 물을 의미한다.
결국 대웅전 주변에 이런 조형물들이 배치된 것은 이 절터가 화기(火氣)가 강하기 때문에 물로 불을 제압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화기가 많으면 화재가 빈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1991년에 성주사에 큰 불이 있었다. 이곳에 뱀이 많다거나 앞산이 뱀 머리 산이라는 표현도 사실 불을 상징화한 것이다. 뱀은 12지지 이론에서 불[火]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화기가 많은 곳에 절터를 잡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실은 터잡기에서 공간 배치구조에 문제가 있었다. 이 절의 창건 연대가 가야 혹은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였지만, 현재의 공간 배치구조는 지나치게 이론 풍수 혹은 남향 선호를 중시한 것으로 보아 중국 풍수의 영향을 받았음을 엿볼 수 있다. 남향으로 절터를 고르다 보니 물길이 빠져나가는 북서쪽이 허하게 된다. 당연히 북서풍이 절터를 강하게 치게 되며 화재가 빈발할 수밖에 없다. 화재가 빈발하다 보니 스님들은 화기가 강한 절터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에둘러 불의 상징인 뱀이 많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또한 억지로 남향을 고집하다 보니 이 절의 우백호 끝 부분에 절터를 정하게 돼 제비집 형상이 되었던 것이다. 제비집에서 앞산 정상 부분에 뱀 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대웅전을 치고 들어오니, 그것이 이 절에 불행을 가져다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애당초 터잡기에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터는 뒷산을 등지고, 좌우 산들이 감싸주어야 할 자리다. 풍수를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성주사를 가면 그 진혈처가 어디인지 쉽게 지적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그 진혈처 부근이 쓰레기 집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주사 돼지 석상이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성주사 스님들은 50년이 넘은 것은 확실하고, 대충 잡아도 100년 전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돼지 석상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비슷비슷한 설들이 많다. 절터의 형상이 제비집[燕巢穴]인데 절 앞산이 제비를 노리는 뱀의 머리와 같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절에 뱀이 많아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성주사 절터와 뱀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실제로 돼지는 살모사가 물어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뱀과 상극인 동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왠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성주사 앞산이 뱀의 머리 모양이기 때문에 돼지석상을 세웠다는 것은 ‘풍수적 애교’로 보아줄 수는 있겠으나 100년 역사를 가진 돼지 석상이고 보면 그리 간단하게 보아넘길 일이 아니다. 또 절에 뱀이 많아 돼지 석상을 세워 내쫓으려 했다는 것도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영물인 뱀이 돌 돼지에 놀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답은 이 절터의 지기(地氣)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대웅전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돼지 석상 말고도 대웅전 계단 좌우에 서 있는 해태 한 쌍과 대웅전 입구에 조성된 연못 등을 볼 수 있다. 돼지·해태·연못 이 세 가지는 모두 물[水]을 대표한다. 돼지는 음양오행학의 12지지 이론에서 물을 상징하고, 해태 역시 바다에서 사는 만큼 물을 의미한다.
결국 대웅전 주변에 이런 조형물들이 배치된 것은 이 절터가 화기(火氣)가 강하기 때문에 물로 불을 제압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화기가 많으면 화재가 빈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1991년에 성주사에 큰 불이 있었다. 이곳에 뱀이 많다거나 앞산이 뱀 머리 산이라는 표현도 사실 불을 상징화한 것이다. 뱀은 12지지 이론에서 불[火]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화기가 많은 곳에 절터를 잡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실은 터잡기에서 공간 배치구조에 문제가 있었다. 이 절의 창건 연대가 가야 혹은 신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였지만, 현재의 공간 배치구조는 지나치게 이론 풍수 혹은 남향 선호를 중시한 것으로 보아 중국 풍수의 영향을 받았음을 엿볼 수 있다. 남향으로 절터를 고르다 보니 물길이 빠져나가는 북서쪽이 허하게 된다. 당연히 북서풍이 절터를 강하게 치게 되며 화재가 빈발할 수밖에 없다. 화재가 빈발하다 보니 스님들은 화기가 강한 절터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을 에둘러 불의 상징인 뱀이 많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또한 억지로 남향을 고집하다 보니 이 절의 우백호 끝 부분에 절터를 정하게 돼 제비집 형상이 되었던 것이다. 제비집에서 앞산 정상 부분에 뱀 머리처럼 생긴 바위가 대웅전을 치고 들어오니, 그것이 이 절에 불행을 가져다준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애당초 터잡기에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터는 뒷산을 등지고, 좌우 산들이 감싸주어야 할 자리다. 풍수를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성주사를 가면 그 진혈처가 어디인지 쉽게 지적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그 진혈처 부근이 쓰레기 집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