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稅風) 주역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신병이 미국 사법당국에 인도된 지난 2월, 한나라당은 이석희씨와 가까운 관계였던 정치권 L씨가 여권 모 인사와 접촉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L씨를 만나 흔들리는 눈빛을 읽은 한나라당 당직자 K씨는 ‘이석희 체포 및 향후 전망, 여권의 회유공작 내막’이란 보고서를 작성해 한나라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이 보고서가 전달된 직후 당의 다른 조직은 L씨와 이 전 차장과의 관계 및 L씨의 활동반경 등을 면밀히 체크해 L씨의 ‘변심’이 몰고 올 파장을 진단했다. 아직 L씨의 변심 흔적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한나라당은 지금도 그의 주변을 주시한다.
‘세풍’을 둘러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막후 신경전은 아직도 매우 치열하다. 특히 이 드라마의 주역인 이석희씨와 주변 인사들을 둘러싸고 설득과 회유, 공작과 역공작 등이 마치 냉전시대의 스파이 게임처럼 흥미롭게 전개된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5대 비리 의혹, ‘이 전 차장을 귀국시켜 세풍의 진실을 밝히면… 이회창 후보 구속사안이 될 수 있다’는 ‘이회창 불가론 문건’ 등은 이 같은 첨예한 막후 신경전의 일단이다.
한나라당 당직자 K씨는 “이 전 차장을 둘러싸고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수도 없이 했다”고 말한다. 민주당 H의원은 “병풍(兵風)이 이후보의 도덕성을 겨냥한 것이라면, 세풍은 이후보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사건”이라며 이 전 차장을 쫓는 민주당의 노림수를 설명했다.
“이후보 법정 세울 수 있는 사건이다”
이 전 차장을 둘러싼 신경전은 때로 외교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5월 중순 한나라당에 매우 민감한 정보가 전달됐다. 미 CIA 고위간부가 5월7일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청구동 자택을 찾았고, 이 자리에서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조기 송환을 검토하고 있는 미국측 입장이 전달됐다는 것.
‘왜 CIA가 김총재에게 이런 입장을 전달했는가’ ‘미국은 조기 송환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분석의 틀로 접근한 한나라당 인사들은 일단 정보 내용이 부풀려졌다고 확인했지만 이후보를 길들이려는 미국측의 의지도 숨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노풍’(노무현 바람)으로 위기에 빠진 이후보를 압박해 보다 친미적 노선으로 견인하려는 의도된 연출이라는 해석이었다.
미국통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한 인사가 미국을 방문한 것은 그 얼마 후. 이 인사는 이후보의 미국 방문 및 대북 기본정책 등을 다시 한번 미국 조야에 설명했고, 비공식 루트를 통해 미국 내 최고 권력자를 만났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 인사가 귀국한 후인 6월30일, 이후보는 서울 S호텔에서 허바드 주한 미대사와 조찬을 함께 했다. 의례적인 만남으로 한반도 문제 등 외교 일반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지만, 이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허바드 대사와 이후보가 회동한 3일 후, 이번에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허바드 대사를 같은 장소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교전 등 민감한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여야 대통령후보의 주한 미대사 회동은 조기 송환설이 나돌던 이 전 차장을 둘러싼 외교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99년 출국해 4년 동안 도피 행각을 벌였던 이 전 차장의 미국 생활은 매우 고달팠다고 한다. 한때 사진찍기에 취미를 붙인 그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국내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지만, 외롭고 험한 도피 생활에서 비롯된 심적 고통과 갈등을 극복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같은 사정을 노린 정치권의 ‘회유’가 여야 가리지 않고 벌어진 것은 당연하다.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 이 전 차장의 형 명희씨는 LA 지역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지원하는 조직을 책임지고 있던 황제선씨(현 연금관리공단 감사역)를 만났다. 7월26일 전화통화에서 황감사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를 만난 명희씨가 ‘더 이상 이총재에게 미련이 없다’고 하더라. ‘FBI가 추적하고 있고… 더 이상 숨을 곳도 없다, 도와달라’고 몇 차례 부탁하더라.”
그렇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여권의 공작으로 규정했다. 당시 황씨가 명희씨에게 ‘(이 전 차장이) 한국에 들어오면 집행유예로 쉽게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 것. 명희씨도 “(황씨가) 김대통령을 만나게 해주고 20만 달러를 준다는 얘기도 했다”며 여권의 회유설을 뒷받침했다. 황씨와 이명희씨는 이 전 차장의 귀국을 놓고 이후 10여 차례 더 만났고 이를 눈치챈 한나라당 관계자가 부랴부랴 미 현지로 급파됐다.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여권의 한 관계자는 “공작과 역공작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 전 차장을 귀국시키려는 여권의 회유는 이후 몇 차례 더 있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의 설명. “이 전 차장이 세풍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고서화를 사는 등 개인용도로 쓴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는 얘기가 있고, 이런 것을 가지고 여권이 압박, 회유에 나섰던 것 같다.”
이 밖에 2000년 8월 4·13 총선에서 떨어진 이종찬 전 민주당 고문이 하와이를 방문해 ‘모종의 작품’을 연출했다는 의혹, 서상목 전 의원의 이 전 차장 회동설도 있다.
민주당은 이후보가 불법모금에 관여했거나 보고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는 1999년 대검 중수부의 발표에 지금도 무게를 둔다. 이 전 차장을 통해 선거자금을 준 모 대기업 총수는 검찰조사에서 “돈은 이 전 차장에게 줬는데, 나중에 이후보측으로부터 감사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는 진술과 모금 활동중 이후보로부터 격려전화를 받았다는 임채주 전 국세청장의 증언 등을 들어, 세풍의 주역은 이후보라는 논리를 엮어나간다. 최소한 주범은 아니더라도 ‘종범’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
민주당 정보통 K씨는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팩트’를 하나 더 보탠다. 그는 “2000년 9월 박지원 당시 문광부 장관이 언급한 녹취 테이프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K씨는 녹취록에 ‘이 전 차장과 이후보 간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에 관한 내용이 숨어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세풍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여유는 ‘세풍’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작업을 마쳤기 때문인지 모른다. 민주당이 5대 비리 의혹으로 공세를 취한 직후, 한나라당은 여의도 연구소를 통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또 그 얘기냐’며 식상해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대선 이전 이석희씨의 귀국은 어렵다고 본다. 미국의 모든 라인을 동원해 내부적으로 확보한 정보를 취합, 내놓은 결론이다. 설사 이씨가 귀국하더라도 민주당이 바라는, 이후보가 검찰에 불려가는 최악의 상황은 ‘연출’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씨가 입을 열 리도 없고, 이후보의 관련 여부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는 것. 또한 임기 말의 검찰이 대선을 앞두고 무리한 수사는 피할 것이란 점 등을 들어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느긋한 분위기다.
한나라당 H씨는 이 전 차장의 당시 모호한 행적을 거론하며 세풍의 파괴력을 평가절하한다. 이 전 차장의 정치적 뿌리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며 이 뿌리를 캐면 97년 연말 DJ측에 대한 이 전 차장의 서비스 내역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현재 김홍업씨의 친구 김성환씨의 청탁을 받아 미스터피자의 추징금 삭감 지시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안정남 전 국세청장의 조기송환을 요구하는 정치적 공세도 마련해 놓고 있다. ‘세풍은 세풍으로 잡는다’는 전략이다.
의혹의 냄새가 진동하는 ‘세풍 상자’의 뚜껑은 아직도 굳건히 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정치권은 이 판도라의 상자를 주시한다.
이 보고서가 전달된 직후 당의 다른 조직은 L씨와 이 전 차장과의 관계 및 L씨의 활동반경 등을 면밀히 체크해 L씨의 ‘변심’이 몰고 올 파장을 진단했다. 아직 L씨의 변심 흔적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한나라당은 지금도 그의 주변을 주시한다.
‘세풍’을 둘러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막후 신경전은 아직도 매우 치열하다. 특히 이 드라마의 주역인 이석희씨와 주변 인사들을 둘러싸고 설득과 회유, 공작과 역공작 등이 마치 냉전시대의 스파이 게임처럼 흥미롭게 전개된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5대 비리 의혹, ‘이 전 차장을 귀국시켜 세풍의 진실을 밝히면… 이회창 후보 구속사안이 될 수 있다’는 ‘이회창 불가론 문건’ 등은 이 같은 첨예한 막후 신경전의 일단이다.
한나라당 당직자 K씨는 “이 전 차장을 둘러싸고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수도 없이 했다”고 말한다. 민주당 H의원은 “병풍(兵風)이 이후보의 도덕성을 겨냥한 것이라면, 세풍은 이후보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사건”이라며 이 전 차장을 쫓는 민주당의 노림수를 설명했다.
“이후보 법정 세울 수 있는 사건이다”
이 전 차장을 둘러싼 신경전은 때로 외교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5월 중순 한나라당에 매우 민감한 정보가 전달됐다. 미 CIA 고위간부가 5월7일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청구동 자택을 찾았고, 이 자리에서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조기 송환을 검토하고 있는 미국측 입장이 전달됐다는 것.
‘왜 CIA가 김총재에게 이런 입장을 전달했는가’ ‘미국은 조기 송환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분석의 틀로 접근한 한나라당 인사들은 일단 정보 내용이 부풀려졌다고 확인했지만 이후보를 길들이려는 미국측의 의지도 숨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노풍’(노무현 바람)으로 위기에 빠진 이후보를 압박해 보다 친미적 노선으로 견인하려는 의도된 연출이라는 해석이었다.
미국통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한 인사가 미국을 방문한 것은 그 얼마 후. 이 인사는 이후보의 미국 방문 및 대북 기본정책 등을 다시 한번 미국 조야에 설명했고, 비공식 루트를 통해 미국 내 최고 권력자를 만났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 인사가 귀국한 후인 6월30일, 이후보는 서울 S호텔에서 허바드 주한 미대사와 조찬을 함께 했다. 의례적인 만남으로 한반도 문제 등 외교 일반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지만, 이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허바드 대사와 이후보가 회동한 3일 후, 이번에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허바드 대사를 같은 장소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교전 등 민감한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여야 대통령후보의 주한 미대사 회동은 조기 송환설이 나돌던 이 전 차장을 둘러싼 외교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99년 출국해 4년 동안 도피 행각을 벌였던 이 전 차장의 미국 생활은 매우 고달팠다고 한다. 한때 사진찍기에 취미를 붙인 그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국내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지만, 외롭고 험한 도피 생활에서 비롯된 심적 고통과 갈등을 극복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같은 사정을 노린 정치권의 ‘회유’가 여야 가리지 않고 벌어진 것은 당연하다.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 이 전 차장의 형 명희씨는 LA 지역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지원하는 조직을 책임지고 있던 황제선씨(현 연금관리공단 감사역)를 만났다. 7월26일 전화통화에서 황감사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를 만난 명희씨가 ‘더 이상 이총재에게 미련이 없다’고 하더라. ‘FBI가 추적하고 있고… 더 이상 숨을 곳도 없다, 도와달라’고 몇 차례 부탁하더라.”
그렇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여권의 공작으로 규정했다. 당시 황씨가 명희씨에게 ‘(이 전 차장이) 한국에 들어오면 집행유예로 쉽게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 것. 명희씨도 “(황씨가) 김대통령을 만나게 해주고 20만 달러를 준다는 얘기도 했다”며 여권의 회유설을 뒷받침했다. 황씨와 이명희씨는 이 전 차장의 귀국을 놓고 이후 10여 차례 더 만났고 이를 눈치챈 한나라당 관계자가 부랴부랴 미 현지로 급파됐다.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여권의 한 관계자는 “공작과 역공작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 전 차장을 귀국시키려는 여권의 회유는 이후 몇 차례 더 있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의 설명. “이 전 차장이 세풍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고서화를 사는 등 개인용도로 쓴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는 얘기가 있고, 이런 것을 가지고 여권이 압박, 회유에 나섰던 것 같다.”
이 밖에 2000년 8월 4·13 총선에서 떨어진 이종찬 전 민주당 고문이 하와이를 방문해 ‘모종의 작품’을 연출했다는 의혹, 서상목 전 의원의 이 전 차장 회동설도 있다.
민주당은 이후보가 불법모금에 관여했거나 보고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는 1999년 대검 중수부의 발표에 지금도 무게를 둔다. 이 전 차장을 통해 선거자금을 준 모 대기업 총수는 검찰조사에서 “돈은 이 전 차장에게 줬는데, 나중에 이후보측으로부터 감사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는 진술과 모금 활동중 이후보로부터 격려전화를 받았다는 임채주 전 국세청장의 증언 등을 들어, 세풍의 주역은 이후보라는 논리를 엮어나간다. 최소한 주범은 아니더라도 ‘종범’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
민주당 정보통 K씨는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팩트’를 하나 더 보탠다. 그는 “2000년 9월 박지원 당시 문광부 장관이 언급한 녹취 테이프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K씨는 녹취록에 ‘이 전 차장과 이후보 간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에 관한 내용이 숨어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세풍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여유는 ‘세풍’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작업을 마쳤기 때문인지 모른다. 민주당이 5대 비리 의혹으로 공세를 취한 직후, 한나라당은 여의도 연구소를 통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또 그 얘기냐’며 식상해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대선 이전 이석희씨의 귀국은 어렵다고 본다. 미국의 모든 라인을 동원해 내부적으로 확보한 정보를 취합, 내놓은 결론이다. 설사 이씨가 귀국하더라도 민주당이 바라는, 이후보가 검찰에 불려가는 최악의 상황은 ‘연출’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씨가 입을 열 리도 없고, 이후보의 관련 여부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는 것. 또한 임기 말의 검찰이 대선을 앞두고 무리한 수사는 피할 것이란 점 등을 들어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느긋한 분위기다.
한나라당 H씨는 이 전 차장의 당시 모호한 행적을 거론하며 세풍의 파괴력을 평가절하한다. 이 전 차장의 정치적 뿌리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며 이 뿌리를 캐면 97년 연말 DJ측에 대한 이 전 차장의 서비스 내역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현재 김홍업씨의 친구 김성환씨의 청탁을 받아 미스터피자의 추징금 삭감 지시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안정남 전 국세청장의 조기송환을 요구하는 정치적 공세도 마련해 놓고 있다. ‘세풍은 세풍으로 잡는다’는 전략이다.
의혹의 냄새가 진동하는 ‘세풍 상자’의 뚜껑은 아직도 굳건히 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정치권은 이 판도라의 상자를 주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