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을 통해서 본 ‘개와 인간의 문화사’라는 긴 제목의 이 책은 개와 인간의 관계 맺기의 역사를 보여준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 하필이면 개를 친구로 삼았을까. 누구나 궁금해할 이 질문에 답해준 사람은 별로 없다.
문학사를 연구해 온 저자 헬무트 브라케르트는 개를 ‘인간이 정복한 매우 소중한 동물’이면서 ‘가장 일찍부터 인간과 친숙해진 동물’이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거꾸로 ‘자신의 지배자인 인간에게 은밀하게 영향을 준 동물’이라고 말한다.
일단 개는 선사시대부터 사냥하는 인간의 주위를 맴돌며 동물의 찌꺼기를 먹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한때는 인간의 사냥감이며, 사냥의 라이벌이기도 했을 늑대가 어떻게 인간과 공생하는 개로 바뀌었는지 정확한 계보는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이 최초로 개를 이용한 것은 사냥이 목적이었음이 명백하다.
이집트, 페르시아, 고대 그리스 시대를 지나면서 개는 단순히 사냥 보조원의 역할을 넘어 인간의 친구로 격상한다. 철학자 키케로는 기원전 45년 저술한 ‘신에 관하여’에서 개는 네 발을 지닌 인간의 친구이며 오로지 인간의 즐거움과 번영을 위해 탄생한 자연의 선물이라고 칭송했다. ‘철저한 경계심’을 지닌 개는 부유한 사람들의 경호원 역할을 했고, 목걸이에 편지를 달아매는 방법으로 로마시대 우편집배원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갑옷을 입은 맹견들이 인간과 함께 전투에 나서기도 했다. 이때부터 애완견은 인간의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잠자리를 같이했다.
중세는 사냥개의 전성시대였다. 1600마리에 달하는 사냥개를 키웠던 프랑스의 가스통 드 푸아 백작은 ‘사냥 안내서’라는 책을 써 개의 종류와 관리요령, 사냥법 등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중세에 단순히 사냥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종교인들과 문인들은 사냥과 개를 비유의 대상으로 삼아 인간에게 교훈을 남기려 했다.
근세에 접어들어 개는 한층 더 인간을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가 된다. 토끼를 뒤쫓는 사냥개는 구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행동을, 달을 향해 짖어대는 개는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꿈을 좇는 허망함을, 양떼를 지키는 개는 군주와 국민의 관계를 대신했다.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개에 대한 이미지는 티치아노가 그린 ‘지혜의 알레고리’가 잘 말해 준다. 이 그림은 왼쪽을 바라보는 노인의 옆모습(과거)과 정면을 바라보는 중년 남자의 얼굴(현재), 그리고 오른쪽을 바라보는 청년(미래)의 말끔한 얼굴로 삶의 3단계를 표현하며, 각각의 얼굴 아래 늑대, 사자, 개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청년의 위치에 놓인 개는 동물의 본성과 이성을 동시에 지니며, 새로움을 향한 출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함의한다.
그러나 데카르트 시대에 접어들어 동물은 위대한 인간의 정신세계로부터 배제되었다. 16세기 퐁텐블로파가 그린 ‘사냥꾼 디아나 여신’에서 볼 수 있듯 그림 속에서 사냥개는 영혼이 없는 장식물로 전락한다. 프라고나르의 ‘소녀와 개’에서처럼 주인의 침대에서 함께 뒹구는 개라 할지라도 명령에 복종하는 신세요, 이용당하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같은 신의 피조물이면서도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인간에게 다시 ‘동물은 인간과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람이 철학자 쇼펜하우어였다. 실제로 그는 푸들 아트마를 끔찍하게 아낀 것으로 유명하다. 쇼펜하우어는 동물은 인간을 위한 물건이 아니며, 인간이 동물에 대해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하고, 따라서 인간은 동물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 아니라 정의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철학적 바탕은 20세기에도 유효했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동물이 산업적으로 이용되는가 하면, 생동감과 자발성을 지닌 동물을 친밀한 대화 파트너로 삼으려는 인간들에 의해 애견 산업은 번창한다.
이쯤 해서 이 책이 개라는 존재를 통해 본 인간의 역사라는 것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저자는 문학, 고고학, 철학, 역사, 미술사, 인류학을 총동원해 개를 주제로 한 서양문화사 전반을 훑고 있다. 다소 무리한 시도였다고 느껴지지만 ‘개와 인간’을 관계로 풀어본 서양사는 흥미롭다. 무엇보다 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단, 남녀 독자를 모두 의식해 두 종류의 표지를 낸 출판사의 깜짝 아이디어에 속지 말기를. 두 권이 아니라 한 권짜리 책이다.
헬무트 브라케르트 지음/ 최상안, 김정희 옮김/ 백의 펴냄/ 368쪽/ 1만5000원
문학사를 연구해 온 저자 헬무트 브라케르트는 개를 ‘인간이 정복한 매우 소중한 동물’이면서 ‘가장 일찍부터 인간과 친숙해진 동물’이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거꾸로 ‘자신의 지배자인 인간에게 은밀하게 영향을 준 동물’이라고 말한다.
일단 개는 선사시대부터 사냥하는 인간의 주위를 맴돌며 동물의 찌꺼기를 먹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한때는 인간의 사냥감이며, 사냥의 라이벌이기도 했을 늑대가 어떻게 인간과 공생하는 개로 바뀌었는지 정확한 계보는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이 최초로 개를 이용한 것은 사냥이 목적이었음이 명백하다.
이집트, 페르시아, 고대 그리스 시대를 지나면서 개는 단순히 사냥 보조원의 역할을 넘어 인간의 친구로 격상한다. 철학자 키케로는 기원전 45년 저술한 ‘신에 관하여’에서 개는 네 발을 지닌 인간의 친구이며 오로지 인간의 즐거움과 번영을 위해 탄생한 자연의 선물이라고 칭송했다. ‘철저한 경계심’을 지닌 개는 부유한 사람들의 경호원 역할을 했고, 목걸이에 편지를 달아매는 방법으로 로마시대 우편집배원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갑옷을 입은 맹견들이 인간과 함께 전투에 나서기도 했다. 이때부터 애완견은 인간의 식탁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잠자리를 같이했다.
중세는 사냥개의 전성시대였다. 1600마리에 달하는 사냥개를 키웠던 프랑스의 가스통 드 푸아 백작은 ‘사냥 안내서’라는 책을 써 개의 종류와 관리요령, 사냥법 등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중세에 단순히 사냥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종교인들과 문인들은 사냥과 개를 비유의 대상으로 삼아 인간에게 교훈을 남기려 했다.
근세에 접어들어 개는 한층 더 인간을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가 된다. 토끼를 뒤쫓는 사냥개는 구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행동을, 달을 향해 짖어대는 개는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꿈을 좇는 허망함을, 양떼를 지키는 개는 군주와 국민의 관계를 대신했다.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개에 대한 이미지는 티치아노가 그린 ‘지혜의 알레고리’가 잘 말해 준다. 이 그림은 왼쪽을 바라보는 노인의 옆모습(과거)과 정면을 바라보는 중년 남자의 얼굴(현재), 그리고 오른쪽을 바라보는 청년(미래)의 말끔한 얼굴로 삶의 3단계를 표현하며, 각각의 얼굴 아래 늑대, 사자, 개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청년의 위치에 놓인 개는 동물의 본성과 이성을 동시에 지니며, 새로움을 향한 출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함의한다.
그러나 데카르트 시대에 접어들어 동물은 위대한 인간의 정신세계로부터 배제되었다. 16세기 퐁텐블로파가 그린 ‘사냥꾼 디아나 여신’에서 볼 수 있듯 그림 속에서 사냥개는 영혼이 없는 장식물로 전락한다. 프라고나르의 ‘소녀와 개’에서처럼 주인의 침대에서 함께 뒹구는 개라 할지라도 명령에 복종하는 신세요, 이용당하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같은 신의 피조물이면서도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인간에게 다시 ‘동물은 인간과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람이 철학자 쇼펜하우어였다. 실제로 그는 푸들 아트마를 끔찍하게 아낀 것으로 유명하다. 쇼펜하우어는 동물은 인간을 위한 물건이 아니며, 인간이 동물에 대해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하고, 따라서 인간은 동물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 아니라 정의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철학적 바탕은 20세기에도 유효했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동물이 산업적으로 이용되는가 하면, 생동감과 자발성을 지닌 동물을 친밀한 대화 파트너로 삼으려는 인간들에 의해 애견 산업은 번창한다.
이쯤 해서 이 책이 개라는 존재를 통해 본 인간의 역사라는 것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저자는 문학, 고고학, 철학, 역사, 미술사, 인류학을 총동원해 개를 주제로 한 서양문화사 전반을 훑고 있다. 다소 무리한 시도였다고 느껴지지만 ‘개와 인간’을 관계로 풀어본 서양사는 흥미롭다. 무엇보다 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단, 남녀 독자를 모두 의식해 두 종류의 표지를 낸 출판사의 깜짝 아이디어에 속지 말기를. 두 권이 아니라 한 권짜리 책이다.
헬무트 브라케르트 지음/ 최상안, 김정희 옮김/ 백의 펴냄/ 368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