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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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감성에 띄우는 상큼한 ‘러브레터’

  • 입력2004-10-11 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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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마른 감성에 띄우는 상큼한 ‘러브레터’
    김용택 시인은 지난해 가을 ‘갑자기 푸른 산천을 뚫고 오는 흰 빗줄기처럼 다가왔던 시들’을 엮으면서 ‘연애시집’(마음산책 펴냄)이라 이름 붙였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연애란 말에는 봄바람에 실려오는 햇풀 냄새가 난다. 연애라는 말을 떠올린 순간, 세상 어느 곳에서 상큼한 머릿결 냄새가 이는 것 같다…” 입 안에서 ‘연애’라는 말을 사탕처럼 돌돌 굴리며 녹여본다. 절로 미소짓다, 지금도 가슴 어딘가 뚫린 구멍에서 솔솔 바람 소리를 듣는다.

    시인의 ‘서해에서’를 읽다 혼자 웃었다. ‘해가 진다/ 해가 지는구나/ 해가 졌다/ 그래/ 내가 졌다/ 지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해뿐이로구나/ 져도 아름다운 것은 사랑뿐이로구나’ 말장난처럼 들리다가도 스무 살 시절을 휘휘 저은 사랑 앞에서 이제야 ‘허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발견한다. 그러나 ‘빈 들’은 우리를 그 시절로 돌려보낸다. ‘빈 들에서/ 무를 뽑는다/ 무 뽑아 먹다가 들킨 놈처럼/ 나는/ 하얀 무를 들고/ 한참을 캄캄하게 서 있다/ 때로/ 너는 나에게/ 무 뽑은 자리만큼이나/ 캄캄하다’ 시인의 ‘연애’가 꼭 ‘그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연애시집’은 그리운 모든 이들에게 날린 연서다. 물론 시인은 아내에게 이 작은 시집을 바쳤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주인공으로 더 알려진 네루다의 시집 ‘100편의 사랑 소네트’도 그에게 시적 영감을 불어넣은 아내 마틸데 우루티아에게 헌정된 것이다. 정현종 시인이 우리말로 옮긴 이 시집(문학동네)은 네루다가 마틸데와 살기 시작한 1955년부터 2년 동안 썼다. 13세기 이탈리아 민요에서 파생한 4.4.3.3행의 ‘소네트’ 형식에 절절한 사랑을 담아낸 고전적인 시다. ‘내 사랑이여, 나는 당신을 그다지 사랑할 수 없었으리!/ 그러나 내가 당신을 지닐 때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닌다-/ 모래, 시간, 비의 나무’

    문자메시지로 날리는 파편화된 언어에 익숙한 세대에게 네루다식 연애편지가 유치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에 누가 ‘오, 사랑하는 이여’로 시작하는 편지를 쓸까. 하지만 그 유치함이 지독히도 그리울 때가 있다. ‘나는 당신의 입, 당신의 목소리, 당신의 머리카락을 갈망한다’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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