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선을 국내 대중음악 판으로 옮기면 금세 우울해진다. 우선 2002년 상반기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 40만장 이상 판매액을 올린 앨범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디를 포함한 마이너리티 장르들은 완전 몰락했다. 베테랑이라도 시중 음반 판매대에서 신보를 찾기 어렵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5만장을 돌파한 것이 거의 유일한 예외다.
본말이 전도된 뮤직비디오 중심의 마케팅(뮤직비디오 제작과 홍보에 드는 비용이 음반 제작비용의 네댓 배를 훌쩍 넘어선 이 기막힌 현실),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의 기막힌 관행(박경림 가수 만들기라는 이른바 ‘박고태’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해프닝), 무장해제 당한 작가주의 정신(아니 아직까지 그런 것이 남아 있나?), 여기에 MP3의 득세로 음반구매 의욕이 사라지고 말았다(한두 곡 들으려고 CD를 사는 바보가 있을까?).
이 폐허의 공화국을 SM엔터테인먼트의 뮤지션들이 독주하고 있다. 보아 외에도 신화, S.E.S. 등이 단숨에 30만장 이상의 고른 판매액을 올리며 경쟁자들의 추격을 불허한다. 그 정점은 말할 것도 없이 보아.
뉴밀레니엄의 상징적 세대인 보아는 이미 알려졌듯 14세에 오디션에서 픽업될 때부터 철저히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다듬어졌고, 이러한 매니지먼트는 불투명한 전망과 예상되는 난관을 넘어 득의의 과실을 거두었다. 강타와 유영진 같은 SM엔터테인먼트의 스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일본, 유럽의 뮤지션까지 참여시킨 보아의 앨범은, 흔치 않은 재능을 종잣돈으로 해서 음악상품의 완성도를 어떻게 극한적으로 끌어올리는지 보여주는 필살의 일격이다.
오프닝인 유로신스팝(유럽 스타일의 신시사이저 팝) ‘No.1’과 강타의 성숙한 발라드 ‘늘...’을 위시하여 오리콘차트 1위곡까지 보너스 트랙으로 넣은 앨범의 구성은 빈틈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노랫말이 한국어라는 것을 빼놓고 ‘한국적 감수성’은 완벽하게 제거되었다. 자, 당신은 어떻게 볼 것인가. 국내 프로축구는 외면한 채 월드컵 16강의 주문만 외워대는 참혹한 월드컵 신드롬의 시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