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문화의 수준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달력도 이제는 어엿한 문화상품이 됐다. 날짜가 하루 지나갈 때마다 한 장씩 뜯어 모아놓았다가 화장실 휴지로 대용하던 두루마리 달력이나, 안방 벽에 밥풀로 아예 붙여놓았던 한 장짜리 달력(이런 달력에는 항상 근엄한 국회의원의 얼굴이 큼지막히 박혀 있었다)은 이제 찾으려야 찾을 길이 없다.
달력의 크기도 벽에 걸어놓는 것에서 점차 책상이나 컴퓨터 모니터 위에 올려놓는 탁상형으로 ‘축소 지향’을 하고 있다. 장롱과 각종 세간살이로 너저분한 안방에 달력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장식용 그림 노릇을 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요즘에는 개개인이 원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넣고 생일 등 개인 기념일도 활자로 넣는 맞춤 달력에서부터 점자 달력, 운세 달력, 먹을거리 달력, 건강 달력에다 동영상 달력까지 진화의 역사가 눈부실 정도다.
500여부 한정 희소성, 그 뒤엔 계급 구분의 씁쓸함
그러나 한 부에 7만원 하는 한정판 VIP 달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듯하다. 달력은 한 해 쓰고 나면 버리는 것인데 뭐가 그리 비싸냐고 하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이 달력은 국내외 유명 화가의 명화나 판화 등을 넣어 한정 수량으로 제작한다. 판화 제품을 몇 십점 정도로 제한해 찍어내듯 이 달력 역시 일련번호를 매겨가며 500여부밖에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달력 자체를 한 장씩 뜯어 표구로 만들거나 미술 액자에 넣으면 곧바로 훌륭한 카피 제품이 될 수 있게끔 특수 인쇄, 특수 제작돼 있다. 당연히 종이부터 프랑스에서 수입한, 매우 두꺼운 아트지로 돼 있다. 바로 삼성그룹 문화재단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VIP 달력이다.
삼성그룹 문화재단의 백승원 부장은 “원래 그룹 차원에서 특별한 분들에게만 드리는 내수용으로 만들었는데, 소량이 남으면 아트센터에서 팔기도 한다”면서 “5년 전부터 만들었지만 수량이 적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아는 캘린더가 됐다”고 말한다.
‘속물 근성’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사람들은 ‘남과 구별되는 그 무엇’(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동물이다. 연말연시 선물 역시 ‘흔하지 않은, 그래서 계급이 자동적으로 구별되는 그 무엇’을 받길 원한다. 출세의 실감을 이런 종류의 선물에서 느끼기도 한다. ‘명품족’의 확산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프티 부르주아가 그만큼 많아지고 있거나, 이 계급에 속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서울 ‘청담동’이 언제부터인지 ‘럭셔리’라는 단어와 어울리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VIP 달력은 한 해에 500여부밖에 없다는 희소가치 때문에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 희소가치로 인해 ‘7만원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냥 묻힌다. 달력과 더불어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500등 안에는 든다는 만족감까지 선물로 받는 셈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6%가 전체 총소비의 25%를 차지한다. 또한 인구의 8.7%가 총소비의 절반을 차지한다. 인구 100명 중 8~9명이 먹고 마시고 입는 데 쓰는 액수가 나머지 90여명이 쓰는 것의 절반보다 많다는 얘기다.
지난해 1억원 이상 고액 연봉자는 2만1000여명. 99년의 1만5000여명에서 무려 6000여명이 늘어났다. 그러나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과세 미달자 역시 516만8000여명으로 지난해의 387만명보다 무려 33.5%나 늘어났다. 우리 사회가 20대 80의 사회는커녕 5대 95의 양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빈익빈 부익부는 이제 상식이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VIP용 달력을 따로 만드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건강하다고 평가하고 모범적인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들에서 이런 예는 더 셀 수 없이 많다. 문제는 부의 축적과 행사가 아니라 그 과정의 투명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세정책을 통한 빈부격차 해소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부’를 표방했던 DJ 정부도 조세정책으로 빈부격차만 더 늘려놓았다. 결국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달력의 크기도 벽에 걸어놓는 것에서 점차 책상이나 컴퓨터 모니터 위에 올려놓는 탁상형으로 ‘축소 지향’을 하고 있다. 장롱과 각종 세간살이로 너저분한 안방에 달력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장식용 그림 노릇을 하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요즘에는 개개인이 원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넣고 생일 등 개인 기념일도 활자로 넣는 맞춤 달력에서부터 점자 달력, 운세 달력, 먹을거리 달력, 건강 달력에다 동영상 달력까지 진화의 역사가 눈부실 정도다.
500여부 한정 희소성, 그 뒤엔 계급 구분의 씁쓸함
그러나 한 부에 7만원 하는 한정판 VIP 달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듯하다. 달력은 한 해 쓰고 나면 버리는 것인데 뭐가 그리 비싸냐고 하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이 달력은 국내외 유명 화가의 명화나 판화 등을 넣어 한정 수량으로 제작한다. 판화 제품을 몇 십점 정도로 제한해 찍어내듯 이 달력 역시 일련번호를 매겨가며 500여부밖에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달력 자체를 한 장씩 뜯어 표구로 만들거나 미술 액자에 넣으면 곧바로 훌륭한 카피 제품이 될 수 있게끔 특수 인쇄, 특수 제작돼 있다. 당연히 종이부터 프랑스에서 수입한, 매우 두꺼운 아트지로 돼 있다. 바로 삼성그룹 문화재단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VIP 달력이다.
삼성그룹 문화재단의 백승원 부장은 “원래 그룹 차원에서 특별한 분들에게만 드리는 내수용으로 만들었는데, 소량이 남으면 아트센터에서 팔기도 한다”면서 “5년 전부터 만들었지만 수량이 적기 때문에 아는 사람만 아는 캘린더가 됐다”고 말한다.
‘속물 근성’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사람들은 ‘남과 구별되는 그 무엇’(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동물이다. 연말연시 선물 역시 ‘흔하지 않은, 그래서 계급이 자동적으로 구별되는 그 무엇’을 받길 원한다. 출세의 실감을 이런 종류의 선물에서 느끼기도 한다. ‘명품족’의 확산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프티 부르주아가 그만큼 많아지고 있거나, 이 계급에 속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서울 ‘청담동’이 언제부터인지 ‘럭셔리’라는 단어와 어울리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VIP 달력은 한 해에 500여부밖에 없다는 희소가치 때문에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 희소가치로 인해 ‘7만원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냥 묻힌다. 달력과 더불어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500등 안에는 든다는 만족감까지 선물로 받는 셈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6%가 전체 총소비의 25%를 차지한다. 또한 인구의 8.7%가 총소비의 절반을 차지한다. 인구 100명 중 8~9명이 먹고 마시고 입는 데 쓰는 액수가 나머지 90여명이 쓰는 것의 절반보다 많다는 얘기다.
지난해 1억원 이상 고액 연봉자는 2만1000여명. 99년의 1만5000여명에서 무려 6000여명이 늘어났다. 그러나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과세 미달자 역시 516만8000여명으로 지난해의 387만명보다 무려 33.5%나 늘어났다. 우리 사회가 20대 80의 사회는커녕 5대 95의 양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빈익빈 부익부는 이제 상식이라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VIP용 달력을 따로 만드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건강하다고 평가하고 모범적인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들에서 이런 예는 더 셀 수 없이 많다. 문제는 부의 축적과 행사가 아니라 그 과정의 투명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세정책을 통한 빈부격차 해소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부’를 표방했던 DJ 정부도 조세정책으로 빈부격차만 더 늘려놓았다. 결국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