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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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몰리나+매콤한 국물’ 향수 달래주는 데 그만

  • < 백승국/ ‘극장에서 퐁듀 먹기’의 저자·기호학박사 > baikseungkook@yahoo.co.kr

    입력2004-12-03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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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몰리나+매콤한 국물’ 향수 달래주는 데 그만
    비 오는 날 저녁, 마음 둘 곳 없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은 말없이 서로를 알아본다. 늙은 독일여자 에미는 청소부로 빠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작 그녀를 힘겹게 하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출가한 자식들에게조차 소외당하는 에미는 어느 날 아랍인들이 즐겨 찾는 바에 갔다가 외국인 노동자인 모로코 청년 알리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스무 살의 나이차와 인종에 대한 편견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랑에 빠진다. 결혼까지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시종일관 불안하다. 이들의 결혼은 이웃 사람들과 동료들의 집단적 경멸과 자식들의 분노의 대상이 된다.

    1970년대 ‘뉴 저먼 시네마’를 이끌었던 파스빈더는 집단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성을 자신의 영화 속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파스빈더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줬던 이 영화에도 전후 독일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파시즘의 잔재와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자본주의 신화에 저당잡혀 있는 70년대 독일사회의 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영화 속에는 ‘쿠스쿠스’(couscous)라는 요리가 등장한다. 고향 모로코에 대한 향수병이 짙어질 때마다 알리는 에미에게 ‘쿠스쿠스’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모로코인의 주식이기도 한 쿠스쿠스는 모로코와 알제리, 튀니지 같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아랍인들이 즐겨 먹는 국민음식이지만, 유럽에서도 인기 있는 대중음식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직장인들이 즐겨 먹는 점심 메뉴로 꼽히는가 하면, 아예 캔으로 만들어 슈퍼에서 팔기도 한다. 아무리 작은 소도시라도 쿠스쿠스만을 파는 전문식당을 만날 수 있다.

    쿠스쿠스는 배아를 거칠게 갈아 만든 밀가루 ‘세몰리나’(semolina)를 쪄서 먹는 요리로, 여기에 쇠고기와 닭고기, 다진 토마토, 양파, 당근, 감자, 마늘, 파, 불린 콩, 호박, 가지, 하리사 소스 등을 넣고 끓인 매콤한 국물과 야채, 소스, 소시지 등이 함께 나온다. 이때 어떤 고기를 곁들여 먹느냐에 따라 양고기 쿠스쿠스, 쇠고기 쿠스쿠스, 닭고기 쿠스쿠스 등의 메뉴로 나뉜다. 쿠스쿠스는 매콤한 국물 맛 때문에 한국 유학생이나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고향을 두고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음식인 만큼, 해외여행을 갔을 때라도 매콤한 국물 맛이 그리워지면 쿠스쿠스를 주문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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