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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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쏜살같이 밀려오는 쾌감!

  • < 허시명 / 여행작가> storyf@yahoo.co.kr

    입력2004-12-01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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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휙~ 쏜살같이 밀려오는 쾌감!
    서울 남산의 국립극장 위쪽에 활터 석호정(石虎亭)이 있다. 1630년에 생겼는데, 장충단공원이 조성되면서 남산 중턱으로 올라왔다. 국궁(國弓)을 배우려고 그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 사범으로 있는 김석철씨는 활쏘기는 레저가 아니라고 말한다. 잠깐 취미삼아 해볼 수 있는 놀이가 아니라, 심신을 수양하는 도(道)이자 예(禮)라고 했다.

    활은 살상 무기로 쓰였기 때문에 속성상 재미삼아 가지고 놀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활을 가지고 전국을 유람하며 레저 기행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전국에서 벌어지는 활쏘기 대회는 100여개에 달한다. 그중 전국대회만 20여개가 된다. 웬만한 지방 축제에서는 활쏘기 시합이 열린다. 그 대회를 활 하나만 가지고 순례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자체로 직업이 되기는 어렵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놀이삼아 승부욕을 불태워보는 것으로는 최고의 레저 기행인 셈이다. 우리 민족은 활을 잘 다뤘다. 중국은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렀다. 이때 오랑캐 ‘夷’자는 큰 ‘大’자와 활 ‘弓’자를 결합한 단어다. 곧 동이족은 활을 잘 다루는 동쪽 민족이라는 뜻이다. 우리 양궁 대표 선수들이 세계 대회를 석권하는 현실에서도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옛날엔 활을 잘 쏘면 한 나라를 세울 수도 있었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명궁으로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과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그 증인이다. 동명성왕은 부여에서 성장했는데, 그의 다른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당시 부여 말로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고 불렀다. 과연 그는 일곱 살 때 스스로 활과 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고 한다. 이성계 역시 멀리 떨어진 적장의 왼눈과 오른눈을 가려서 맞출 정도로 명궁이었다. 비록 국궁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양궁에 밀려 이즈음엔 아주 낯선 운동처럼 되었지만, 따지고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국궁은 양궁보다 훨씬 더 저변이 넓고, 접근이 쉽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에 좋은 전통 무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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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전국에 있는 활터는 300개가 넘는데, 개인이 상업적 목적으로 운영하는 활터는 하나도 없다. 모두가 공공시설화돼 있고, 활터를 드나드는 회원들이 함께 관리한다. 자연, 활터를 이용하는 비용이 저렴하다. 현재 활터의 정식 회원은 1만7500명쯤 된다. 대한궁도협회에 소속된 회원 숫자가 그렇다는 얘기고, 실제 활터를 이용하는 숫자는 그 배쯤 될 것이라는 게 대한궁도협회 박세광 사무국장의 말이다.



    국궁은 양궁과 아주 다르다. 석호정의 김석철 사범은 이 둘에 대해 활을 쏜다는 사실만 같고 모든 게 다르다고 한다. 양궁에는 정조준을 위한 보조기구가 달려 있는데, 국궁에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 또한 둘은 쥐는 법이 다르고 시위를 당기는 법도 다르다. 무엇보다 양궁은 전문 선수를 양성하는 구조만 갖추고 있어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데, 국궁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국궁은 대한체육회에 소속된 운동단체 중 유일하게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따로 없다. 그래서 전국체전 참가자 중 최고령자로 곧잘 궁도 선수 이름이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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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국궁은 각궁(角弓)이다. 각궁은 대나무, 뽕나무, 참나무, 물소뿔, 소 힘줄, 민어부레풀, 벚나무껍질로 만든다. 겉보기에는 하나의 막대기로 보이지만 그 속은 정교하게 짜맞춰져 있다.

    석호정 김사범이 건네준 각궁을 들어 시위를 당기려 하자, 김사범이 깜짝 놀라며 제지한다. 궁도의 9계 중 마지막에 ‘막만타궁’(莫彎他弓)이 있다고 한다. 타인의 활을 당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각궁은 시위를 얹기도 어렵거니와, 시위를 잘못 잡아당기면 활이 뒤집혀 부러지고 만다. 대신 김사범은 연습용 개량궁을 꺼내온다.

    개량궁은 70년대에 국궁의 대중화를 위해 만든 활이다. 김사범이 꺼내온 개량궁은 여궁사들도 다룰 수 있는 가벼운 것인데, 내가 아무리 힘껏 잡아당겨도 활이 활짝 펴지지 않았다. 두 손만 바들거리고 초장부터 어깨 근육이 뻐근해 온다. 활의 가운데 부분인 줌통을 왼손으로 쥔 채 힘껏 앞으로 밀고, 오른손으로는 시위를 있는 힘껏 뒤로 잡아당겨보기를 10여 차례 한 뒤에야 자세가 약간 잡히려 한다. 하지만 멀었다. 이렇게 열흘 정도 빈 활시위를 잡아당기면서 올바른 자세를 잡은 뒤라야 화살을 메길 수 있다. 하지만 그때도 화살 뒤에 끈이 묶여 있는 주살이라야 한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 하더라도 처음 활을 잡으면 145m 떨어진 과녁까지 화살을 날려보내기가 어렵다. 날아가는 화살의 방향도 제멋대로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자세를 잡고 주살을 날린 뒤라야 비로소 사대(射臺)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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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을 날려보내기 위해 시위를 잔뜩 잡아당긴 상태에서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긴장하게 된다. 왼손은 밀고, 오른손은 당기고, 아랫배에는 힘을 주고, 두 다리는 쇠기둥이라도 되는 듯 깊게 땅을 딛고, 발 끝은 땅을 움켜쥐듯 구부린다. 화살은 손으로 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가 놓아서 쏘는 게 아니라, 가슴을 뻐개듯이 벌려 화살을 놓아보낸다.

    활쏘기는 겉보기에 두 팔로 하는 듯 보여도 전신 운동이다. 그래서 활을 쏘면 오십견(오십대에 많이 생기는 어깨 통증)이 없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단전 호흡을 하게 되어 심장이 좋아지고 위장병이 치료된다고 한다.

    석호정 김사범은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시위를 당겨야 과녁을 맞출 수 있다고 했다. 활쏘기를 심신 수양이라 이르는 이유가 이것인가 보다.

    휙~ 쏜살같이 밀려오는 쾌감!
    이 땅에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활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후회할 것이다. 활은 우리를 오래도록 먹여살려 왔고, 우리를 지켜온 도구였다. 이제 시대가 변해 운동 수단으로 바뀌었지만, 활을 한 번 잡아보는 일, 시위에 화살을 메겨 당겨보고 그래서 화살에 마음을 실어 과녁을 명중시켜 보는 일은 아마도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호연지기를 느끼는 귀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국궁은 골프 말고도 노년에 즐길 만한 운동이기도 하다. 골프 치는 사람이 활을 잡게 되면, 골프공의 비거리가 10m 늘어난다고 한다.

    운동에 반드시 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건강과 그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한 해라도 빨리 배우는 게 좋다. 활쏘기는 중학생 이상이면 가능하고, 평생 즐길 수 있다. 제 팔힘에 맞추어 활을 선택하기 때문에 수저를 들어올릴 힘만 있어도 활을 쏠 수 있다. 이번 주말에 당장 가까운 활터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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