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영재’ 환상을 깨라
고액 유치원·이중언어 교육 효과의문 … 섣부른 환경에선 오히려 역효과
What is your name?”
“My name is John.”
“Who made your name?”
“….”
영어 유치원에서 만난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와의 대화 내용이다. 네 살 때부터 가정방문 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영어 유치원에도 6개월간 다녔다는 이 아이는 여러 가지 영어 노래를 어설프게나마 부르고 간단한 인사말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기자가 ‘뻔한 질문’인 “이름이 뭐니?” 수준이 아니라 “누가 이름을 지어 줬니?”하고 묻자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장면은 한국의 영어 조기교육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영어를 못하지만 내 아이만은 미국 사람 뺨치도록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부모의 바람으로 적지 않은 아이들이 돌 전부터 영어 플래시 카드, 영어 비디오 테이프 등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한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들에게 영어 테이프를 들려주는 열성 엄마까지 있다.
강남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영어유치원의 월 수강료는 최하 45만원 선. 70만~80만원 이상 받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름있는 영어유치원은 서너 달 이상 대기해야만 간신히 입학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자격 미달 외국인 강사와 성의 없는 수업 등 영어유치원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아예 직접 영어를 배워 아이와 영어로만 대화하겠다는 엄마들도 있다.
뱃속에서부터 영어 공부를 해서일까, 아이들은 ‘사과’가 ‘애플’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왓츠 유어 네임?’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엄마 사과 하나 주세요’ 하는 식의 표현은 구사하지 못한다. 때로는 ‘me no pencil’같은 국적 불명의 표현을 하기도 한다.
영어 조기교육 논의의 핵심은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배우면 미국 사람처럼 영어를 하게 된다’는 속설이다. 또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시켜서 뒤떨어지면 어떡하나’하는 엄마들의 걱정도 아이를 영어 조기교육으로 내몬다.
언어전문가들은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중언어 구사자가 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흔히 하는 ‘미국 갔더니 엄마는 2, 3년이 지나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데 아이는 미국 사람처럼 줄줄 하더라’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없지는 않은 셈이다.
“만 2~5세에 아이들은 기본적인 언어를 배웁니다. 이때 한국어와 영어의 이중언어 환경이 주어지면 아이는 한국어, 영어를 모두 모국어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만 5세가 지나 영어를 배우면 이때는 영어를 외국어로 인지하게 되죠. 한국어의 언어 규칙을 대부분 습득한 이후니까요.” 이화여대 김영태 교수(언어병리학)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서 이중언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다. 이중언어 환경이라는 것은 스위스나 벨기에처럼 두 가지 언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거나 부모 중 한쪽이 외국어의 네이티브 스피커인 경우를 뜻한다. 동덕여대 우남희 교수(아동학)는 “집에서 내내 한국어를 듣고 자란 재미교포 2세도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학원 보내고 영어 테이프 좀 틀어준다고 해서 영어가 모국어처럼 익혀지는 게 절대 아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섣부른 이중언어 환경은 한 가지 언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결과를 낳거나 심하면 언어장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버지는 프랑스인, 어머니는 영국인, 태어난 곳은 독일이라면 아이는 자라면서 세 가지 언어를 자연스레 배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방식으로 영어를 가르치려면 아버지는 한국어를, 어머니는 미국인과 똑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해야 합니다. 이 경우가 가능하다 해도 아이가 한국에서 자라기 때문에 어머니가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영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 자극’이 비슷해질 수가 없으니까요.” 이중언어 전문가인 한국언어청각임상협회 이승환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이사장은 “언어 환경의 혼란으로 언어발달 지연이나 언어발달 장애 증상을 보이는 외교관 자녀들을 많이 보아왔다”면서 영어 조기교육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아이가 사는 곳이 영어권이 아니고 부모가 영어의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이상, 아이는 영어를 외국어로 배울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기를 기대하는 부모와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아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원에서 외워온 생활영어 표현이나 영어 노래를 듣고 ‘아이가 영어를 너무 잘한다’고 착각하는 엄마, 또 ‘이웃집 아이는 영어로 인사하고 영어책도 읽는다더라’는 엄마의 성화 속에서 아이들은 영어 조기교육의 전쟁터로 내몰리고 있다.
“몇 마디의 영어를 외우기 위해 아이를 들볶는 일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나이에 아이가 해야 할 일, 친구들과 놀면서 스스로 깨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는 교육학자보다 더 할말이 많은 한국의 엄마들에게 이 말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한 유아교육 전문가의 한탄이 긴 여운을 남긴다.
고액 유치원·이중언어 교육 효과의문 … 섣부른 환경에선 오히려 역효과
What is your name?”
“My name is John.”
“Who made your name?”
“….”
영어 유치원에서 만난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와의 대화 내용이다. 네 살 때부터 가정방문 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영어 유치원에도 6개월간 다녔다는 이 아이는 여러 가지 영어 노래를 어설프게나마 부르고 간단한 인사말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기자가 ‘뻔한 질문’인 “이름이 뭐니?” 수준이 아니라 “누가 이름을 지어 줬니?”하고 묻자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장면은 한국의 영어 조기교육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영어를 못하지만 내 아이만은 미국 사람 뺨치도록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부모의 바람으로 적지 않은 아이들이 돌 전부터 영어 플래시 카드, 영어 비디오 테이프 등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한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들에게 영어 테이프를 들려주는 열성 엄마까지 있다.
강남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영어유치원의 월 수강료는 최하 45만원 선. 70만~80만원 이상 받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름있는 영어유치원은 서너 달 이상 대기해야만 간신히 입학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자격 미달 외국인 강사와 성의 없는 수업 등 영어유치원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아예 직접 영어를 배워 아이와 영어로만 대화하겠다는 엄마들도 있다.
뱃속에서부터 영어 공부를 해서일까, 아이들은 ‘사과’가 ‘애플’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왓츠 유어 네임?’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엄마 사과 하나 주세요’ 하는 식의 표현은 구사하지 못한다. 때로는 ‘me no pencil’같은 국적 불명의 표현을 하기도 한다.
영어 조기교육 논의의 핵심은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배우면 미국 사람처럼 영어를 하게 된다’는 속설이다. 또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시켜서 뒤떨어지면 어떡하나’하는 엄마들의 걱정도 아이를 영어 조기교육으로 내몬다.
언어전문가들은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중언어 구사자가 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흔히 하는 ‘미국 갔더니 엄마는 2, 3년이 지나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데 아이는 미국 사람처럼 줄줄 하더라’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없지는 않은 셈이다.
“만 2~5세에 아이들은 기본적인 언어를 배웁니다. 이때 한국어와 영어의 이중언어 환경이 주어지면 아이는 한국어, 영어를 모두 모국어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만 5세가 지나 영어를 배우면 이때는 영어를 외국어로 인지하게 되죠. 한국어의 언어 규칙을 대부분 습득한 이후니까요.” 이화여대 김영태 교수(언어병리학)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서 이중언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다. 이중언어 환경이라는 것은 스위스나 벨기에처럼 두 가지 언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거나 부모 중 한쪽이 외국어의 네이티브 스피커인 경우를 뜻한다. 동덕여대 우남희 교수(아동학)는 “집에서 내내 한국어를 듣고 자란 재미교포 2세도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학원 보내고 영어 테이프 좀 틀어준다고 해서 영어가 모국어처럼 익혀지는 게 절대 아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섣부른 이중언어 환경은 한 가지 언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결과를 낳거나 심하면 언어장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버지는 프랑스인, 어머니는 영국인, 태어난 곳은 독일이라면 아이는 자라면서 세 가지 언어를 자연스레 배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방식으로 영어를 가르치려면 아버지는 한국어를, 어머니는 미국인과 똑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해야 합니다. 이 경우가 가능하다 해도 아이가 한국에서 자라기 때문에 어머니가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영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 자극’이 비슷해질 수가 없으니까요.” 이중언어 전문가인 한국언어청각임상협회 이승환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이사장은 “언어 환경의 혼란으로 언어발달 지연이나 언어발달 장애 증상을 보이는 외교관 자녀들을 많이 보아왔다”면서 영어 조기교육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아이가 사는 곳이 영어권이 아니고 부모가 영어의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이상, 아이는 영어를 외국어로 배울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기를 기대하는 부모와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아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원에서 외워온 생활영어 표현이나 영어 노래를 듣고 ‘아이가 영어를 너무 잘한다’고 착각하는 엄마, 또 ‘이웃집 아이는 영어로 인사하고 영어책도 읽는다더라’는 엄마의 성화 속에서 아이들은 영어 조기교육의 전쟁터로 내몰리고 있다.
“몇 마디의 영어를 외우기 위해 아이를 들볶는 일은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나이에 아이가 해야 할 일, 친구들과 놀면서 스스로 깨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아이들에 대해서는 교육학자보다 더 할말이 많은 한국의 엄마들에게 이 말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한 유아교육 전문가의 한탄이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