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년 가까이 침묵하던 슈퍼 스타들이 용틀임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팬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해체를 감행한 H.O.T의 프론트맨 강타가 첫 솔로 앨범을 8월 말 발표해 순식간에 밀리언셀러 붐을 조성하더니, 바로 이어 조성모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이 도매상 예약만으로 100만 장을 거뜬히 넘어서는 폭발력을 보였다. 사실 2001년 상반기 한국 음반시장은 염가 컴필레이션 음반의 돌풍 속에 신작 정규 앨범이 맥을 추지 못하는 이상 기류에 휩싸였다고 할 수 있다. 두 젊은 슈퍼 스타의 등장이 컴필레이션 음반시장의 급속한 위축을 불러온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강타와 조성모의 두 신작은 화려한 물량 투입이라는 공통점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이 음악적 홀로서기를 꾀하려는 의지를 뚜렷하게 표명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두 사람 모두 득의만면한 자작곡을 대거 선보이면서 싱어송 라이터로의 변신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하지만 두 준재들이 지향하려는 지점은 교묘히 엇갈린다. 강타의 앨범이 복고적 성숙함을 집중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오디오 스타’의 왕관을 겨냥하였다면, 조성모의 신작은 전가의 보도인 ‘이경섭표 발라드’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리듬의 향연 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점이 이색적이다. 그는 장르의 전관왕을 원하는 것이다.
아직 프로모션 싱글의 간판으로 내세우기에는 미흡하지만 각자의 자작곡도 만만치 않다. 앨범 제목이기도 한 강타의 ‘북극성’과 ‘스물 셋’, 그리고 강타의 작품보다는 상대적으로 응집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조성모의 ‘우요일의 비가’와 ‘약속’은 이제 이들이 새로운 버전의 스테이지에 어느새 진입하였음을 조용하게 증명하는 노래들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강타의 앨범이다. 그는 아이들(idol) 댄스그룹의 기억을 깡그리 지우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의 앨범을 무심히 듣는다면 리듬앤블루스의 신인이나 목소리가 가냘픈 조성모의 앨범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앨범을 완성시키는 사이드맨들의 면면--가령 기타의 이근형, 베이스의 이태윤, 드럼의 강수호 등은 조성모 앨범의 사운드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그는 한충완과 정원영, 그리고 심상원과 함춘호, 천장배 같은 1급 베테랑 작곡가와 연주자들을 대거 초빙함으로써 그가 걸어가야 할 ‘북극성’의 좌표를 일관되게 설정한다.
두 사람의 신작은 비록 통념적 주류의 음악 문법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한 발짝씩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려는 음악인의 무의식적 본능에 호소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역작이다.
강타와 조성모의 두 신작은 화려한 물량 투입이라는 공통점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이 음악적 홀로서기를 꾀하려는 의지를 뚜렷하게 표명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두 사람 모두 득의만면한 자작곡을 대거 선보이면서 싱어송 라이터로의 변신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하지만 두 준재들이 지향하려는 지점은 교묘히 엇갈린다. 강타의 앨범이 복고적 성숙함을 집중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오디오 스타’의 왕관을 겨냥하였다면, 조성모의 신작은 전가의 보도인 ‘이경섭표 발라드’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리듬의 향연 속에서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점이 이색적이다. 그는 장르의 전관왕을 원하는 것이다.
아직 프로모션 싱글의 간판으로 내세우기에는 미흡하지만 각자의 자작곡도 만만치 않다. 앨범 제목이기도 한 강타의 ‘북극성’과 ‘스물 셋’, 그리고 강타의 작품보다는 상대적으로 응집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조성모의 ‘우요일의 비가’와 ‘약속’은 이제 이들이 새로운 버전의 스테이지에 어느새 진입하였음을 조용하게 증명하는 노래들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강타의 앨범이다. 그는 아이들(idol) 댄스그룹의 기억을 깡그리 지우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의 앨범을 무심히 듣는다면 리듬앤블루스의 신인이나 목소리가 가냘픈 조성모의 앨범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앨범을 완성시키는 사이드맨들의 면면--가령 기타의 이근형, 베이스의 이태윤, 드럼의 강수호 등은 조성모 앨범의 사운드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그는 한충완과 정원영, 그리고 심상원과 함춘호, 천장배 같은 1급 베테랑 작곡가와 연주자들을 대거 초빙함으로써 그가 걸어가야 할 ‘북극성’의 좌표를 일관되게 설정한다.
두 사람의 신작은 비록 통념적 주류의 음악 문법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한 발짝씩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려는 음악인의 무의식적 본능에 호소하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