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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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죽느냐 사느냐?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authodox@orgio.net

    입력2005-01-19 13: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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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디, 죽느냐 사느냐?
    서태지는 우리에게 또다시 뜨거운 화두 하나를 던졌다. 대중음악계의 ‘이재수의 난’으로 명명할 수 있는 이른바 ‘컴배콤’ 패러디 논쟁.

    이 문제를 ‘톱스타의 유난스러움’으로 몰고 가려는 불순한 기도나 ‘음치의 버르장머리 없는 장난’으로 치부해 버리는 단편적인 판단은 이제 중지해야 한다.

    이 분쟁에는 크게 두 겹의 개념이 충돌한다. 하나는 인류 예술사의 여명기부터 존재해 온 패러디라는 미학적 방법론과 부르주아의 등장 이후에 확립한 지적재산권이라는 법적 권익이다.

    모더니즘의 선구자 뒤샹의 ‘변기 작품’에서 보듯 패러디가 피지배계급이나 ‘대안적’ 진영의 유구한 문법이라는 사실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패러디 대상이 억압적인 지배계급이거나 막강한 영향력을 이미 획득한 고전적 규범인 것도 거의 예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패러디 앨범’을 이슈로 한 이재수가 1990년대 한국의 문화 아이콘인 서태지를 ‘재료’로 삼은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의 정당성이다. 이재수측과 일부 매체들이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과는 달리 저작권협회에 저작권료를 물고 ‘사후승인’을 받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저작권법은 이 대목에 대해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즉 ‘저작자는 그 저작물의 내용과 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저작자의 동의가 없는 한 저작물은 원형 그대로 존재하여야 한다는 이른바 동일성 유지권이 있다. 동시에 성명 표시권과 인격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법률은 이야기하고 있다.



    이같은 조항을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강행했는지 간에 이재수측은 분명 이 조항들을 어겼다. 그리고 현실은 예상한 대로 ‘강자’ 서태지 대 상대적 ‘약자’ 이재수의 여론전으로 번졌다. 하지만 이것도 정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재수는 약자일지 모르나 이 음반의 제작사인 우퍼 엔터테인먼트는 결코 마이너 음반사가 아닌 것이다.

    물론 저작권법이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법률인 만큼 서태지측이 ‘너그러이’ 용인했다면 아무런 분쟁도 없을 수 있다. 서태지측의 맞대응이 일면서 이 음반은 여름 시즌의 핫 이슈로 떠올랐으며, 치열한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감정적인 양비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관행적으로 승인한 패러디 행위에 대해 서태지가 정면으로 대응한 것은 그다운 행동이다. 그리고 우리는 재판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기대한다. 이재수측이 원작자의 문제제기에 대해 패러디라는 창작방법론에 대한 예술적 정당성의 논지를 어떤 진전된 수준으로 펼칠 것인지를 말이다.

    어쩌면 바로 이 사안을 통해 우리 모두는 저작권과 패러디에 대한 결정적인 전환의 계기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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