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3명 중 1명이 우울증상을 보이고 이 중 20%는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상태다. 또 4명 중 1명은 최근 2주 동안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지난 8월2일 언론에는 그야말로 ‘우울한’ 소식이 보도되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조맹제 교수팀이 경기도 부천시 거주 전체 중고생 7만1102명 중 2203명을 무작위 추출해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 이는 부천시의 용역의뢰로 지난 1999년 12월 한 달 간 이뤄졌다. 이 조사는 한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국내 최초의 청소년 우울증 관련 대규모 역학조사다. 조교수팀의 발표에 이어 ‘고교생 절반이 우울증 등에 관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전남 보성군의 자체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조사결과만 놓고 본다면 우울증은 21세기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떠오른 셈이다. 이렇듯 수많은 청소년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유는 대체 뭘까.
조맹제 교수(51)는 “학업성적에 대한 낮은 만족도가 우울증의 최대 원인으로 분석되었다”며 “발생 빈도는 상대적으로 진학률이 낮은 농촌보다 도시 쪽이 다소 높을 것으로 예상되나 청소년 우울증은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다”고 밝힌다.
사실 청소년 우울증의 여러 원인은 기본적으로 성인의 그것(유전적 요소, 대인관계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인지적 사고방식, 가족 내 문제,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 사건이나 사고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학업문제가 으뜸 원인이란 점은 실제 임상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모 병원 정신과에 입원중인 A군(19)도 그런 경우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재수생인 그는 3년 간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병원측이 분석하는 병인(病因)은 지나친 입시 중압감과 친구들에게서의 따돌림. 상태가 극심할 땐 망상과 환각증상마저 보였다. 다행히 A군은 자살을 기도한 적은 없다. 최근 두 달 간 입원치료를 받은 그는 치료에도 잘 적응해 현재 퇴원을 앞두고 있다. 당분간 통원치료가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A군은 ‘우울의 터널’을 거의 지난 셈이다. A군은 비교적 드문 사례에 속한다. 우울증이 심할 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A군처럼 정식 치료를 받는 것이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기성세대의 편견.
고려대 안암병원 우울증센터 이민수 교수(49, 정신과)는 “반드시 치료해야 할 ‘심한 우울증’(의학용어로는 주요우울증)과 ‘우울한 기분’(또는 가벼운 우울증상)은 물론 다르다. 하지만 언제든 병적인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우울증상들을 가정이나 학교에서 청소년기의 ‘일시적 방황’이나 ‘심적 갈등’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은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우울증을 좀처럼 ‘병’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우울증 ‘방치’에 한몫한다는 것. 더욱이 청소년 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이 우울증상을 겉으론 잘 표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원인이 되어 비행·폭력 등 공격적 행동이나 약물 및 사이버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인데, 유독 청소년에게 특유한 이런 우울증의 진행과정 역시 원인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청소년들을 ‘반사회적 일탈자’로 오인하게끔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청소년에 대한 비판이나 처벌보다는 우울증 치료를 우선해야 한다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의 견해다. 이같은 성향은 우울증상이 심해지면 현저하게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성인의 경우와 유형을 달리하는 것이다.
앞서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 정신과를 찾아 체계적 치료를 받는 청소년들은 많지 않다. 실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우울증클리닉의 경우 청소년 우울증 환자는 한 주에 3~4명 정도다. 고려대 안암병원 우울증센터에도 월 평균 40여 명의 청소년이 찾아오지만 입원 환자는 고작 2~3명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제때 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우울증이 계속 ‘성장’하면서 재발을 거듭한다는 점. 방치한 우울증의 50%는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소년기에 우울증을 앓은 사람은 성인기로까지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은 그룹에 속한다. 대학 졸업 후 겪을 사회에서의 극심한 경쟁과 실업 등은 재발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연세대 의대 전우택 교수(정신과)는 “청소년기에 발생한 우울증은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는 조울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성인기 우울증보다 훨씬 더 높다”며 “미국의 경우 청소년 우울증 환자의 20~40%가 5년 안에 조울증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방치한 우울증의 더 큰 심각성은 상당수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마감한다는 데 있다(36~37쪽 기사 참조). 부천지역 청소년 조사에서도 조사대상 남학생 3.3%와 여학생 7.3%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의들은 “정신과 치료를 환자 스스로 중단했다가 자살한 경우마저 있다”고 귀띔한다. 환자가 죽은 후 보호자가 진단서를 떼러 오면서 그같은 사실이 밝혀지곤 한다는 것.
하지만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시적 편견이 워낙 뿌리깊다 보니 일부 청소년들은 ‘자구책’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고민을 털어놓으며 우울을 떨쳐내려 애쓰기도 한다. 그런 사례는 드물지 않다. 한 우울증 관련 사이트 운영자인 대학생 B씨(21, 여) 역시 고교시절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공포증, 자기비하 등에 빠진 경우다. B씨는 당시 이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했다가 지금은 운영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픈 과거’에 대해선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그는 다만 “사이트 활동으로 우울증이 해소된다고 보긴 힘들다. 그러나 회원간 입시문제·가정불화·대인관계와 관련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동안 일시적 위로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이런 ‘편법’이 표준화한 치료법이 아니란 점에서 언제든 우울증이 심화·재발할 수 있으므로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예방적 차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방법도 전혀 없진 않다. ‘또래상담’이 대표적이다. 또래상담은 전문기관에서 상담훈련을 받은 학생이 고민에 빠진 자기 또래를 상담하고 고민 해결에 도움을 줌으로써 ‘진정한 친구 되기’를 지향하는 상담 프로그램. 지난 94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또래상담의 상담자로 활동중인 전국의 학생들만도 현재 1만4000여 명에 이른다.
98년부터 또래상담을 활성화한 서울 영신여고의 김현준 상담교사(47)는 “또래상담자들은 친구들에게서 소외당해 폐쇄적 성향을 보이는 학생과 상담교사 사이의 가교역할을 한다”며 “또래상담에 익숙해진 뒤 ‘선생님께도 상담을 받고 싶다’며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아이들도 한둘이 아니다”고 밝힌다. 또래상담의 또 다른 장점은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한 학생들이 상담훈련을 받고 또래상담자로 활동함으로써 자신의 성격까지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한국청소년상담원(원장 이혜성, www.kyci.or.kr) 노성덕 연구원은 “또래상담이 직접적인 우울증 치료효과를 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집단 따돌림과 가출, 학습·친구·이성문제 등 다양한 청소년 문제를 사전 예방함으로써 우울증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청소년 우울증 환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물론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온 바 없다. “해마다 거의 차이가 없다”는 일부 정신과 의사들의 의견도 있지만, 우울증 환자의 증가와 연동할 수밖에 없는 항우울증 치료제의 매출 증대는 이런 경향의 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경구용 항우울제의 대명사로 통하는 ‘푸로작’의 경우 재작년에 세계 모든 의약품 중 판매 5위권에 진입했다. 지난 89년부터 한국에서도 사용중인 이 약의 지난해 국내 매출액은 45억 원. 푸로작 생산·판매업체인 한국릴리의 푸로작 담당매니저 최진욱 과장은 “현재 국내 항우울제 시장은 250억 원 규모로 추정하지만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며 “항우울제 수요가 해마다 늘어 푸로작의 올해 목표 매출액도 60억 원으로 늘려 잡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한 연령별 항우울제 판매현황은 파악되지 않았다. 세계 제약업계에서 집계한 연령별 현황이 있긴 하지만 신뢰성에 대해선 업계 내부에서도 부정적이다. 때문에 과연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하는지에 대한 통계 역시 없다.
국가 차원에서의 정신보건사업도 아직 걸음마단계다. 지난 95년 정신보건법을 제정하고, 2년 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내에 정신보건과를 신설해 해당 사업을 총괄하지만 국민 정신건강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은 전무하다.
때문에 복지부는 지난 6월부터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눠 국립서울정신병원 주도하에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대상은 5000~6000명. 결과보고서는 오는 12월에 나올 예정. 그러나 조사대상이 18~65세에 국한해 청소년층 정신건강 실태까지 알아보기엔 극히 제한적이다.
관련 예산마저 태부족이다. 전국적인 실태조사에 투입되는 비용이 고작 3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복지부가 전국 16개 정신보건센터와 함께 펼치는 정신보건 홍보사업 예산조차 연 7000만 원에 그쳤다.
복지부 정신보건과의 한 관계자는 “병원 등 시설 조력을 받는 이들보다 재가(在家) 정신질환자가 훨씬 더 많은 현재의 여건상 국민 정신건강 관리사업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펴고 있다”면서도 “아직 청소년층에까지 눈돌리기엔 힘이 부치는 형편이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현실은 아직껏 청소년 우울증이 개인적 문제로만 귀착했을 뿐, 사실상 사회적으론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방증한다. 물론 청소년 우울증의 확산은 전 세계적 추세다. 그러나 청소년 우울증이 파편화한 개인을 뛰어넘는 ‘집단적 현상’이란 점에서 대학입시제도 등 청소년을 우울증에 빠뜨리는 사회구조적 요인의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돌파구’를 제대로 찾지 못한 청소년 우울증은 대한민국이 ‘우울 공화국’일 수밖에 없는 사유 중 하나가 아닐까.
지난 8월2일 언론에는 그야말로 ‘우울한’ 소식이 보도되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조맹제 교수팀이 경기도 부천시 거주 전체 중고생 7만1102명 중 2203명을 무작위 추출해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 이는 부천시의 용역의뢰로 지난 1999년 12월 한 달 간 이뤄졌다. 이 조사는 한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국내 최초의 청소년 우울증 관련 대규모 역학조사다. 조교수팀의 발표에 이어 ‘고교생 절반이 우울증 등에 관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전남 보성군의 자체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조사결과만 놓고 본다면 우울증은 21세기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떠오른 셈이다. 이렇듯 수많은 청소년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유는 대체 뭘까.
조맹제 교수(51)는 “학업성적에 대한 낮은 만족도가 우울증의 최대 원인으로 분석되었다”며 “발생 빈도는 상대적으로 진학률이 낮은 농촌보다 도시 쪽이 다소 높을 것으로 예상되나 청소년 우울증은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다”고 밝힌다.
사실 청소년 우울증의 여러 원인은 기본적으로 성인의 그것(유전적 요소, 대인관계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인지적 사고방식, 가족 내 문제,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 사건이나 사고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학업문제가 으뜸 원인이란 점은 실제 임상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모 병원 정신과에 입원중인 A군(19)도 그런 경우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재수생인 그는 3년 간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병원측이 분석하는 병인(病因)은 지나친 입시 중압감과 친구들에게서의 따돌림. 상태가 극심할 땐 망상과 환각증상마저 보였다. 다행히 A군은 자살을 기도한 적은 없다. 최근 두 달 간 입원치료를 받은 그는 치료에도 잘 적응해 현재 퇴원을 앞두고 있다. 당분간 통원치료가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A군은 ‘우울의 터널’을 거의 지난 셈이다. A군은 비교적 드문 사례에 속한다. 우울증이 심할 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A군처럼 정식 치료를 받는 것이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기성세대의 편견.
고려대 안암병원 우울증센터 이민수 교수(49, 정신과)는 “반드시 치료해야 할 ‘심한 우울증’(의학용어로는 주요우울증)과 ‘우울한 기분’(또는 가벼운 우울증상)은 물론 다르다. 하지만 언제든 병적인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우울증상들을 가정이나 학교에서 청소년기의 ‘일시적 방황’이나 ‘심적 갈등’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은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우울증을 좀처럼 ‘병’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우울증 ‘방치’에 한몫한다는 것. 더욱이 청소년 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이 우울증상을 겉으론 잘 표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원인이 되어 비행·폭력 등 공격적 행동이나 약물 및 사이버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인데, 유독 청소년에게 특유한 이런 우울증의 진행과정 역시 원인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청소년들을 ‘반사회적 일탈자’로 오인하게끔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청소년에 대한 비판이나 처벌보다는 우울증 치료를 우선해야 한다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의 견해다. 이같은 성향은 우울증상이 심해지면 현저하게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성인의 경우와 유형을 달리하는 것이다.
앞서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 정신과를 찾아 체계적 치료를 받는 청소년들은 많지 않다. 실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우울증클리닉의 경우 청소년 우울증 환자는 한 주에 3~4명 정도다. 고려대 안암병원 우울증센터에도 월 평균 40여 명의 청소년이 찾아오지만 입원 환자는 고작 2~3명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제때 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우울증이 계속 ‘성장’하면서 재발을 거듭한다는 점. 방치한 우울증의 50%는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소년기에 우울증을 앓은 사람은 성인기로까지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은 그룹에 속한다. 대학 졸업 후 겪을 사회에서의 극심한 경쟁과 실업 등은 재발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연세대 의대 전우택 교수(정신과)는 “청소년기에 발생한 우울증은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는 조울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성인기 우울증보다 훨씬 더 높다”며 “미국의 경우 청소년 우울증 환자의 20~40%가 5년 안에 조울증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방치한 우울증의 더 큰 심각성은 상당수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마감한다는 데 있다(36~37쪽 기사 참조). 부천지역 청소년 조사에서도 조사대상 남학생 3.3%와 여학생 7.3%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의들은 “정신과 치료를 환자 스스로 중단했다가 자살한 경우마저 있다”고 귀띔한다. 환자가 죽은 후 보호자가 진단서를 떼러 오면서 그같은 사실이 밝혀지곤 한다는 것.
하지만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시적 편견이 워낙 뿌리깊다 보니 일부 청소년들은 ‘자구책’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고민을 털어놓으며 우울을 떨쳐내려 애쓰기도 한다. 그런 사례는 드물지 않다. 한 우울증 관련 사이트 운영자인 대학생 B씨(21, 여) 역시 고교시절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공포증, 자기비하 등에 빠진 경우다. B씨는 당시 이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했다가 지금은 운영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픈 과거’에 대해선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그는 다만 “사이트 활동으로 우울증이 해소된다고 보긴 힘들다. 그러나 회원간 입시문제·가정불화·대인관계와 관련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동질감을 느끼는 동안 일시적 위로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의들은 이런 ‘편법’이 표준화한 치료법이 아니란 점에서 언제든 우울증이 심화·재발할 수 있으므로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예방적 차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방법도 전혀 없진 않다. ‘또래상담’이 대표적이다. 또래상담은 전문기관에서 상담훈련을 받은 학생이 고민에 빠진 자기 또래를 상담하고 고민 해결에 도움을 줌으로써 ‘진정한 친구 되기’를 지향하는 상담 프로그램. 지난 94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또래상담의 상담자로 활동중인 전국의 학생들만도 현재 1만4000여 명에 이른다.
98년부터 또래상담을 활성화한 서울 영신여고의 김현준 상담교사(47)는 “또래상담자들은 친구들에게서 소외당해 폐쇄적 성향을 보이는 학생과 상담교사 사이의 가교역할을 한다”며 “또래상담에 익숙해진 뒤 ‘선생님께도 상담을 받고 싶다’며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아이들도 한둘이 아니다”고 밝힌다. 또래상담의 또 다른 장점은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한 학생들이 상담훈련을 받고 또래상담자로 활동함으로써 자신의 성격까지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다.
한국청소년상담원(원장 이혜성, www.kyci.or.kr) 노성덕 연구원은 “또래상담이 직접적인 우울증 치료효과를 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집단 따돌림과 가출, 학습·친구·이성문제 등 다양한 청소년 문제를 사전 예방함으로써 우울증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고 강조한다.
그런데도 청소년 우울증 환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물론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온 바 없다. “해마다 거의 차이가 없다”는 일부 정신과 의사들의 의견도 있지만, 우울증 환자의 증가와 연동할 수밖에 없는 항우울증 치료제의 매출 증대는 이런 경향의 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경구용 항우울제의 대명사로 통하는 ‘푸로작’의 경우 재작년에 세계 모든 의약품 중 판매 5위권에 진입했다. 지난 89년부터 한국에서도 사용중인 이 약의 지난해 국내 매출액은 45억 원. 푸로작 생산·판매업체인 한국릴리의 푸로작 담당매니저 최진욱 과장은 “현재 국내 항우울제 시장은 250억 원 규모로 추정하지만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며 “항우울제 수요가 해마다 늘어 푸로작의 올해 목표 매출액도 60억 원으로 늘려 잡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한 연령별 항우울제 판매현황은 파악되지 않았다. 세계 제약업계에서 집계한 연령별 현황이 있긴 하지만 신뢰성에 대해선 업계 내부에서도 부정적이다. 때문에 과연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하는지에 대한 통계 역시 없다.
국가 차원에서의 정신보건사업도 아직 걸음마단계다. 지난 95년 정신보건법을 제정하고, 2년 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내에 정신보건과를 신설해 해당 사업을 총괄하지만 국민 정신건강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은 전무하다.
때문에 복지부는 지난 6월부터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눠 국립서울정신병원 주도하에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대상은 5000~6000명. 결과보고서는 오는 12월에 나올 예정. 그러나 조사대상이 18~65세에 국한해 청소년층 정신건강 실태까지 알아보기엔 극히 제한적이다.
관련 예산마저 태부족이다. 전국적인 실태조사에 투입되는 비용이 고작 3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복지부가 전국 16개 정신보건센터와 함께 펼치는 정신보건 홍보사업 예산조차 연 7000만 원에 그쳤다.
복지부 정신보건과의 한 관계자는 “병원 등 시설 조력을 받는 이들보다 재가(在家) 정신질환자가 훨씬 더 많은 현재의 여건상 국민 정신건강 관리사업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펴고 있다”면서도 “아직 청소년층에까지 눈돌리기엔 힘이 부치는 형편이다”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현실은 아직껏 청소년 우울증이 개인적 문제로만 귀착했을 뿐, 사실상 사회적으론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방증한다. 물론 청소년 우울증의 확산은 전 세계적 추세다. 그러나 청소년 우울증이 파편화한 개인을 뛰어넘는 ‘집단적 현상’이란 점에서 대학입시제도 등 청소년을 우울증에 빠뜨리는 사회구조적 요인의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돌파구’를 제대로 찾지 못한 청소년 우울증은 대한민국이 ‘우울 공화국’일 수밖에 없는 사유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