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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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신선한 만남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5-01-19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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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신선한 만남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KBS ‘도시괴담’ 시리즈 1편 ‘죽은 자의 노래’(8월5일)나 2편 ‘비명’(8월12일)을 본 사람이라면 기존의 TV 드라마와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음, 때깔도 좀 다르고, 분위기도 그렇고… 드라마라기보다는 어딘지 영화 같군.”

    어린시절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며 본 ‘전설의 고향’처럼 그저 무서운 공포물만기대한 사람에게는 ‘죽은 자의 노래’ 등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도시괴담’ 시리즈는 여름이면 의례적으로 만드는 방송가 납량 특집물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이 시리즈를 연출한 이들은 현재 충무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 영화감독들. ‘리베라 메’의 양윤호, ‘가위’의 안병기, ‘물고기자리’의 김형태, ‘현상수배’의 정흥순 등 감독 4명이 4부작의 한 편씩을 맡아 옴니버스식 호러 드라마로 만들었다. 드라마 제작에는 카메라만 방송용 디지베타 카메라를 사용하였을 뿐, 촬영과 조명 등 나머지 일에는 모두 영화 스태프들이 참여하였다.

    영화감독들이 TV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당시 신인감독이던 박철수 정지영 선우완 감독 등이 MBC ‘베스트셀러극장’을 연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TV 드라마 시리즈에 집중적으로 투입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 ‘도시괴담’에 쏠리는 관심은 남다르다. 더구나 지금은 TV에서 ‘떴다’ 하면 너도나도 충무로로 달려가는 추세인지라, 영화판을 이끄는 주체인 감독들이 TV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신선한 만남
    ‘도시괴담’은 ‘캐슬 인 더 스카이’라는 KBS의 외주회사가 기획·진행하고 있다. ‘캐슬…’측은 애초 이 시리즈를 프리랜서 PD들에게 맡기려고 했으나 통합방송법 통과 이후 방송사마다 외주제작 비율이 대폭 늘어나면서 스케줄이 여의치 않자 과감하게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KBS 외주제작국의 이성연 PD는 “드라마에 영화적 요소를 도입해 두 장르간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자 했다. 드라마가 대사 위주인 데 반해, 영화는 영상을 우선시한다.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드라마에 영화적 영상을 입히는 식의 실험이 TV와 영화 쪽 모두에 신선한 자극이 되리라 본다”고 이 시리즈의 기획 의도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어쩌면 ‘모험’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표현방식과 문법이 사뭇 다르기 때문. 큰 기대 속에 선보인 1편 ‘죽은 자의 노래’가 시청률이나 비평 면에서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PD는 “보통 드라마는 연출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시청자가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반해,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해석하도록 하는 열린 구조가 많다. 영화감독이 연출하다 보니 영상미는 뛰어난 반면, 스토리 텔링에서 그냥 지나친 부분이 눈에 띈다. 스토리 구조에서도 철저하게 계산한 연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이번 ‘도시괴담‘ 시리즈가 영화도 아니고, TV 단막극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행복한 만남은 아직 요원한 것일까. 문화 전반에서 ‘퓨전’과 ‘크로스오버’ 현상은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영화와 방송 두 영역은 지금껏 그다지 활발한 교류를 해오지 못했다. 충무로와 여의도 사이에는 많은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차이’가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신선한 만남
    2시간 동안 스크린에 몰입하는 극장의 관객과 일상생활 속에서 틈틈이 TV를 보는 시청자의 입장을 구분해야 하는 것도 TV 드라마를 연출하는 영화감독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광활한 스크린보다 대각선 70cm에 지나지 않는 브라운관이 영화감독들에겐 턱없이 비좁게 느껴질 것이고, 단순한 스토리만 가지고는 드라마적 재미를 줄 수가 없다. 50분이라는 방영시간이 영화로는 장편도, 단편도 아니어서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기 힘들다.

    ‘도시괴담’은 원래 예고한 방영시기보다 늦춰져 1주일 후에 방송을 시작했는데, 이 또한 드라마보다 상대적으로 제작일정이 덜 빠듯한 영화계에서 일해 온 영화감독들이 방송 스케줄에 맞춰 촬영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상한 공포물이 아니라 150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팬터지적 공포물로 기획했는데, 제작기간과 방영시간이 모두 짧아 충분히 의도를 살리지 못했다. 드라마를 만들면서 영화적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시청자와도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았다” ‘죽은 자의 노래’의 조감독으로 참여한 이상기씨는 방송의 속도감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와 방송의 교류가 활성화하려면 감독들이 창작 욕구를 원활히 발산할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이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존에 드라마를 만드는 식으로 해서는 완성도 높은 좋은 작품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2화 ‘비명’을 연출한 안병기 감독은 ‘가위’ 후속작을 준비하던 중 영화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다른 매체를 경험하고 싶어 ‘도시괴담’의 연출을 수락했다. 그 역시 영화와 방송의 전면적인 교류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였다. “많은 면에서 달라요. 개인적인 취향도 맞아야 하고…. 영화는 관객이 선택하는 거지만, TV는 무한히 열려 있는 매체죠. 드라마는 연출자가 모든 걸 책임지지만 영화는 기획에서부터 시나리오 캐스팅 연출 마케팅 모든 면에서 조화가 필요합니다. TV에서 성공한 PD들이 충무로로 진출해 만든 영화가 크게 빛을 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봅니다.”

    그런데도 TV와 영화의 교류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도시괴담’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면 방송사들은 충무로 영화감독들에게 달콤한 프로포즈를 계속해서 보낼 것이다. ‘신라의 달밤’ 등 영화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SBS와 자회사 MBC프로덕션을 통해 영화 제작을 적극 추진하는 MBC, 국내 방송사와 함께 TV 드라마를 제작하는 홍콩의 유명감독 왕자웨이(상자 기사 참조)까지. 여의도와 충무로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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