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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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재해보험 들어봤자…”

비싼 보험료, 피해보상 미흡 농민들 외면 … 농협 할당량 책정 ‘건수 올리기’식 가입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5-01-04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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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작물재해보험 들어봤자…”
    ”자의로 보험 든 농민은 거의 없어요. 보험료 낼 돈 있으면 차라리 재해방지용 바람막이나 하나 더 만들자는 게 농민들 정서입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서 8년째 사과농사를 짓는 P씨(38). 그는 지난 5월 초 가입금액 300만 원인 농작물재해보험에 들었다.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친분 있는 농협 직원이 애걸복걸해 가입 권유를 뿌리치기가 힘들었다. 마지못한 P씨는 4000평의 과수원 면적 중 300평에 대해서만 보험에 가입했다. 그는 “과수원 전체를 보험에 들어봤자 어차피 제대로 피해보상을 받기란 불가능하다”고 푸념했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도입한 농작물재해보험은 왜 이렇듯 외면당하는 것일까. 이 보험은 자연재해로 인한 농가피해를 보전해 농민들의 안정적인 농업경영을 돕자는 취지로 농림부가 올해 첫 도입한 제도. 보험기간은 1년으로 가입농가가 태풍ㆍ우박ㆍ동상해(凍霜害)로 작물피해를 볼 경우 평균 생산액의 70~80%를 보험금으로 보상해 준다.

    올해 재해보험은 농가소득 의존도가 높고 재배면적이 전국에 고루 분포된 2개 작목(사과·배)에 한해 시범 실시중이다. 보험적용 지역도 사과ㆍ배 주산지인 안동ㆍ영주ㆍ상주ㆍ괴산ㆍ예산ㆍ나주 등 40개 시ㆍ군에 국한하였다.

    농림부에 따르면 6월22일 현재 최종 보험가입농가는 8204농가(사과 4450, 배 3754), 가입면적은 4114ha다. 이는 당초 목표치인 1만5000여 농가, 2만3416ha와 대비할 때 각각 54.7%(농가수 기준)와 17.6%(면적 기준)의 가입률에 그친 것. 이것조차 지난 3월부터 4월15일까지 가입신청을 받았음에도 예상외로 가입률이 낮자 보험취급기관인 농협이 가입기간을 4월30일과 5월19일로 다시 늘려 추가신청을 받은 결과다.



    “농작물재해보험 들어봤자…”
    가입농가 수에 비해 턱없이 협소한 가입면적은 무엇을 의미할까. 농림부측은 “대농가들이 보험가입을 꺼린 때문”이라 분석한다. 이는 농민들의 ‘냉랭한 반응’의 근본원인이 ‘비싼 보험료’에 있음을 방증한다. 현행 재해보험의 상품유형은 자기부담(피해 중 일부를 농가가 자부담) 30%형과 20%형 등 2가지. 보험료는 각 도마다 다른데, 사과 주산지인 경북의 예를 들면 가입금액 1000만 원인 경우 자기부담 30%형의 보험료는 31만5000원, 20%형은 47만3000원이다. 보험료 중 50%는 국가가 보조하므로 가입농민은 나머지 절반을 부담한다.

    문제는 언뜻 많지 않아 보이는 이 보험료의 부담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 일례로 평균 소득 3000만 원인 중규모의 사과 재배농이 가입금액 3000만 원인 보험에 들려면 가입금액 1000만 원인 경우의 3배에 달하는 보험료를 내야 한다. 자연 재배면적이 넓은 전업농의 보험료 부담은 수백만 원을 넘어 가입을 꺼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보험가입의 실익이 없다. 농가부채와 농산물 가격폭락의 겹고통에 시달리는 영세농들은 보험료를 낼 여력조차 없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이호중 정책부장은 “재해보험은 보장형 보험이라 환급 받을 수 없고 해마다 새로 가입해야 한다”며 “분납도 허용하지 않아 목돈을 가입 즉시 일시불로 내야 하고, 납부시기도 영농비 부담이 많은 봄철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부담률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 보험체계도 ‘무리’란 지적이다. 자기부담률은 작물피해 부담의 일부를 가입자에게 지움으로써 보험금 지급에서 그만큼 제외되는 부분. 가입금액을 100%로 볼 때 자기부담 30%형을 택하면 나머지 70%를 한도로 보험금을 지급 받는다.

    이는 농민들이 작물피해 보전에 재해보험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전농 경북도연맹 김병욱 감사(46, 경북 의성군 춘산면)는 “통상 사과 재배농이 해마다 보는 태풍·우박 피해는 전체 생산액의 10% 미만이다. 30%의 피해라면 완전히 농사를 망쳐 ‘치명적 타격’을 입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자기부담률을 20~30%로 책정한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보험에 가입해도 어차피 20% 미만의 피해는 보상 받을 수 없는데다, 극단적으로 가입연도의 피해율이 30%인 경우 자기부담 30%형에 가입한 재배농은 단 한푼의 보험금도 못 건지는데 뭣하러 보험에 가입하느냐는 것. 3000평의 과수원을 소유한 사과 재배농인 그는 “춘산면의 500여 사과 재배농가 중 재해보험 가입농가는 단 한 곳도 없다”고 덧붙였다.

    보험에 가입해도 재해에 따른 소득불안에 시달리긴 마찬가지라는 농민들의 이런 주장과 달리, 농협측은 “일본이 1973년 농작물재해보험을 과수에 첫 적용할 당시 가입률이 면적기준으로 13.8%였던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가입률 17.6%는 꽤 높은 수치”라며 “단일상품으로 이 정도 가입률을 낸 보험은 처음”이라고 자평한다. 과연 그럴까. 아쉽게도 가입과정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허수’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농민들에 따르면 이같은 가입률은 농협중앙회의 실적 독촉에 쫓긴 일선 단위농협 직원들이 친인척과 선후배, 안면 있는 재배농들에게 가입을 떠안긴 결과라는 것.

    ‘건수 올리기’는 전체 가입목표 농가의 절반 가량이 밀집한 경북이 특히 심하다. 경북지역 가입농가는 3730농가. 이 지역의 가입목표 농가가 7300여 농가였으므로 전체의 50%가 가입한 셈이다. 이에 대해 농협 경북도지부 이창근 공제과장은 “중앙회에서 강제할당을 받진 않았다. 다만 우박피해가 잦은 경북 북부지역 농가들에 가입을 적극 독려한 결과”라고 답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김재현 농작물보험사업팀장은 “단위농협별로 가입할당량을 내려보낸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는 보험제도 조기 정착을 위해 가급적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농작물재해보험 들어봤자…”
    농협은 이번 재해보험이 시행성과의 평가와 제도개선을 위한 시범사업이란 점을 유난히 강조한다. 그럼에도 시행 초기의 ‘특수 상황’이 향후 분쟁을 불러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농림부측은 부인하지만, 보험가입을 꺼린 농가 중 상당수가 강권에 못 이겨 가입하는 과정에서 과수원 필지를 나눠 일부 재배면적에 대해서만 보험가입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농협에 따르면 가입의 전제조건인 ‘인수지침’상 재배 필지 전부를 계약해야 하는 것이 원칙. 때문에 실제 피해 발생 후 해당 가입자들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최근 농민 불평이 쏟아지면서 재해보험이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자 가뭄극복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6월16일 피해유형에 한해와 풍수해를 추가하고 보험대상 작물을 밭작물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정부의 발표는 전례 없는 가뭄피해에 성난 농심을 달래려는 선심성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사실 전농 등 농민단체들은 농작물재해보험이 일시적 생계구호 차원의 보상에 머무른 기존 농업재해대책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생색내기용’이어서 재해 보상의 현실화를 가져올 ‘최적안’이 못 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현재 농작물재해보험을 운영중인 세계 54개국 대다수는 한국보다 정부지원 폭이 훨씬 넓다. 일본은 보험료 50%와 보험사업운영비 80%를 지원하고, 미국도 정부의 보험료 지원율이 60%이며 보험대상 작물도 70여 종에 이른다. 농림부 농업정책과 관계자는 “국내 보험료가 다소 비싼 건 보험사업운영비의 50%(나머지 50%는 국고 지원)를 농협과 보험가입자가 부담토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내년부터 보험사업운영비 전액을 정부가 부담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라 밝혔다. 그는 또 “가뭄과 호우를 피해유형에 포함할지 여부를 검토중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장기적 관점”이라며 토를 달았다.

    가뭄과 호우를 포함하더라도 이로 인해 높아질 보험요율에 따른 농민부담의 경감은 새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결국 농작물재해보험의 ‘공회전’을 피하려면 정부의 보험재정 확충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농정 실패작’을 남길까 두려운 정부의 고민도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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