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씨, 당신이 당 총재를 맡으시오….” 이 밑도 끝도 없는 얘기가 난데없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 한 귀퉁이에서다. 말인즉슨 자민련이 내년 16대 총선을 맞아 보수대연합 차원에서 한나라당 조순전총재를 접촉하면서 영입을 제의했다는 것이다. 물론 가능성과는 별개의 얘기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총선거 같은 큰 행사에는 크든 작든 간에 합종과 연횡, 이합집산 등을 통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제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내년 4월의 16대 총선도 마찬가지다.
“조순씨, 총재 맡으시오”
합종과 연횡은 정치권의 취약한 고리에서 터져 나온다. 한나라당 내 일부 불만세력과 공동정부의 한 축인 자민련 일각에서부터 합종연횡의 싹이 보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다. 특히 자민련은 이념적 색채가 상이한 국민회의와의 연대에 따른 정체성의 상실,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정당 지지율, ‘새천년민주신당’의 출현 등에 따른 위기감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풍부히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자민련은 내년 총선에 앞서 정치권의 급속한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진원지가 될 전망이다. 이미 내년 1월 당 복귀를 선언한 김종필총리의 보수연대 움직임이나 박태준총재의 합당반대 행보, 김용환의원의 벤처신당 창당 작업 등은 그 편린들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내부 역학 관계의 변화, 비주류들의 이탈 움직임, 대구-경북(TK)지역의 홀로서기 시도 등 변수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정치권 합종연횡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종필총리의 엇박자 행보는 이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다. 김총리는 11월26일 인천 로얄호텔에서 열린 자민련 신보수 대토론회에 참석, ‘온고지신’(溫故知新)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등 고사성어를 동원하며 특유의 보수론을 펼쳤다. 나날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는 신보수론이다. 김총리는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또 자민련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면서 신보수의 동지들과 손잡고 나라의 새로운 발전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이 단순한 신보수 철학을 설파한 것인지, 또는 신보수 세력을 결집해 확대판 보수신당 창당으로 나가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최근 그의 행보가 심상찮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김총리가 최근 한나라당 중진의원들과 잇따른 회동설 역시 보수대통합 작업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오는가 하면, 보수 세력을 결집해 충청권과 중부권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자민련 김용환의원도 정치권 합종연횡의 커다란 한 축이다. 김의원도 11월26일 대구 그랜호텔에서 정치개혁실천모임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 “내년 총선 전까지 정치결사체 건설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당 지도부에 대한 공세도 가파르다. 김의원은 “총선이 한두 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 여야가 게임의 룰(선거제도)을 만들지 못한 것은 소선거구에 자신이 없는 한두 명의 정치지도자들 때문” 이라며 당 수뇌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김의원이 ‘정치결사체 건설=신당 창당’에 착수하리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이 경우 김용환의원이 취할 길은 크게 세가지. 독자적으로 충청권에서 벤처신당을 조직하는 것, 무소속구락부 형태로 세를 관리하는 것, 야권과 연합하는 것 등이다. 어느 경우든 정치권 지각변동의 요인으로 작용하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김의원이 이날 대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회동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우연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이날 이회창총재는 김의원에게 “하시는 일(벤처신당 창당 작업)은 잘 됩니까”라고 인사를 건냈고, 김의원은 “야당이 요즘 살맛나죠”라고 받았다. 20분간 지속된 만남의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자민련에서 제명이나 탈당 권고, 당원권 정지, 출당 등의 조치를 취하면 김용환의원은 자연스럽게 당을 떠나게 될 것이다.
TK지역의 동향 역시 총선을 앞둔 이합집산을 가름할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다. 현재 여당이나 야당 모두 이 지역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한 듯이 보인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국 현대사를 지배했던 TK지역은 권력 쟁투에서 패배했다는 자괴감과 김대중정부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뿌리깊은 적대감,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지역패권주의를 배경으로 총선 정국에서 홀로서기를 모색하고 있다.
이 지역의 정서를 그나마 대변해온 게 이른바 5공세력인데, 항간에서 전두환전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을 중심으로 한 TK신당 출현을 예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16대 총선출마 예비군으로 정호용전의원이나 장세동전안기부장, 전전대통령의 친동생인 경환씨, 법정 대리인인 이양우변호사 등의 이름이 회자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이 정치결사체를 조직할 경우 정치권에 몰고 올 가공할 폭발력이다. 당장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일부 TK출신들이 가세할 태세를 보이고 있고, 결정적 시기를 기다리며 초야에 묻혀 있던 ‘그 때 그 사람’들이 대거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전전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재개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고, 주변의 정치 환경이 성숙하지 않은 만큼 당장 5공을 중심으로 한 TK신당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렇다 할 대안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 지역은 내년 16대 총선에서 군웅할거식 이전투구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합종연횡은 언제나 개혁 대 보수 같은 이념논쟁을 수반하거나 흑백논리식 명분 싸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합종연횡은 정치집단과 정치인 개인의 향후 전망에 대한 불안감의 소산이다. 특히 ‘국민의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회의가 짙어지고 한나라당의 대안제시 능력 부재에 대한 실망감이 이어질 경우 방황하는 표심을 잡기 위한 ‘헤쳐모여’가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총선거 같은 큰 행사에는 크든 작든 간에 합종과 연횡, 이합집산 등을 통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제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내년 4월의 16대 총선도 마찬가지다.
“조순씨, 총재 맡으시오”
합종과 연횡은 정치권의 취약한 고리에서 터져 나온다. 한나라당 내 일부 불만세력과 공동정부의 한 축인 자민련 일각에서부터 합종연횡의 싹이 보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다. 특히 자민련은 이념적 색채가 상이한 국민회의와의 연대에 따른 정체성의 상실,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정당 지지율, ‘새천년민주신당’의 출현 등에 따른 위기감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풍부히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자민련은 내년 총선에 앞서 정치권의 급속한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진원지가 될 전망이다. 이미 내년 1월 당 복귀를 선언한 김종필총리의 보수연대 움직임이나 박태준총재의 합당반대 행보, 김용환의원의 벤처신당 창당 작업 등은 그 편린들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내부 역학 관계의 변화, 비주류들의 이탈 움직임, 대구-경북(TK)지역의 홀로서기 시도 등 변수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정치권 합종연횡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종필총리의 엇박자 행보는 이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다. 김총리는 11월26일 인천 로얄호텔에서 열린 자민련 신보수 대토론회에 참석, ‘온고지신’(溫故知新)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등 고사성어를 동원하며 특유의 보수론을 펼쳤다. 나날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는 신보수론이다. 김총리는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또 자민련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면서 신보수의 동지들과 손잡고 나라의 새로운 발전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이 단순한 신보수 철학을 설파한 것인지, 또는 신보수 세력을 결집해 확대판 보수신당 창당으로 나가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최근 그의 행보가 심상찮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김총리가 최근 한나라당 중진의원들과 잇따른 회동설 역시 보수대통합 작업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오는가 하면, 보수 세력을 결집해 충청권과 중부권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자민련 김용환의원도 정치권 합종연횡의 커다란 한 축이다. 김의원도 11월26일 대구 그랜호텔에서 정치개혁실천모임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 “내년 총선 전까지 정치결사체 건설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당 지도부에 대한 공세도 가파르다. 김의원은 “총선이 한두 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 여야가 게임의 룰(선거제도)을 만들지 못한 것은 소선거구에 자신이 없는 한두 명의 정치지도자들 때문” 이라며 당 수뇌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김의원이 ‘정치결사체 건설=신당 창당’에 착수하리라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이 경우 김용환의원이 취할 길은 크게 세가지. 독자적으로 충청권에서 벤처신당을 조직하는 것, 무소속구락부 형태로 세를 관리하는 것, 야권과 연합하는 것 등이다. 어느 경우든 정치권 지각변동의 요인으로 작용하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김의원이 이날 대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회동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우연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이날 이회창총재는 김의원에게 “하시는 일(벤처신당 창당 작업)은 잘 됩니까”라고 인사를 건냈고, 김의원은 “야당이 요즘 살맛나죠”라고 받았다. 20분간 지속된 만남의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자민련에서 제명이나 탈당 권고, 당원권 정지, 출당 등의 조치를 취하면 김용환의원은 자연스럽게 당을 떠나게 될 것이다.
TK지역의 동향 역시 총선을 앞둔 이합집산을 가름할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다. 현재 여당이나 야당 모두 이 지역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한 듯이 보인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국 현대사를 지배했던 TK지역은 권력 쟁투에서 패배했다는 자괴감과 김대중정부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뿌리깊은 적대감,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지역패권주의를 배경으로 총선 정국에서 홀로서기를 모색하고 있다.
이 지역의 정서를 그나마 대변해온 게 이른바 5공세력인데, 항간에서 전두환전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을 중심으로 한 TK신당 출현을 예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16대 총선출마 예비군으로 정호용전의원이나 장세동전안기부장, 전전대통령의 친동생인 경환씨, 법정 대리인인 이양우변호사 등의 이름이 회자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이 정치결사체를 조직할 경우 정치권에 몰고 올 가공할 폭발력이다. 당장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일부 TK출신들이 가세할 태세를 보이고 있고, 결정적 시기를 기다리며 초야에 묻혀 있던 ‘그 때 그 사람’들이 대거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전전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재개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고, 주변의 정치 환경이 성숙하지 않은 만큼 당장 5공을 중심으로 한 TK신당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렇다 할 대안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 지역은 내년 16대 총선에서 군웅할거식 이전투구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합종연횡은 언제나 개혁 대 보수 같은 이념논쟁을 수반하거나 흑백논리식 명분 싸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합종연횡은 정치집단과 정치인 개인의 향후 전망에 대한 불안감의 소산이다. 특히 ‘국민의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회의가 짙어지고 한나라당의 대안제시 능력 부재에 대한 실망감이 이어질 경우 방황하는 표심을 잡기 위한 ‘헤쳐모여’가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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