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이라는 이름을 거론했다면 그는 수사지휘관의 자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 수사하는 사람이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합니까.”
모 일간지가 최병모특별검사의 사석에서의 발언을 인용해 ‘박주선씨가 김태정씨에게 사직동팀 최초보고서를 전달했다’고 ‘보도’한 11월25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한 양인석특별검사보(41)는 직속상관인 최특검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검사는 이름 없이 일합니다. 말이 앞서면 정치가이지 수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양특검보의 발언은 최특검에 대한 ‘항명’의 한계를 아슬아슬 넘나들고 있었다.
우선 다른 언론들이 이 일간지의 기사를 받아 다음날 다시 왈가왈부하면 당장 자신이 데려온 파견검사와 특별수사관을 데리고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
얘기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파견검사들이 “최특검이 왜 사석에서 기자를 만났으며, 무슨 말을 했기에 이런 엄청난 오보가 나오는가”고 공식 항의하는 등 옷특검팀도 파업유도특검팀과 같은 내홍을 겪고 있다는 말도 했다. 라스포사 직원의 진술조서를 통째로 모방송사에 제보한 사람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내부자’라는 충격적인 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이야기까지 쓰는 기자들이 있다면 수사를 그만두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못박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역설적 화법의 뜻을 알아차린 기자들은 “수사를 그만두게 하자”며 신나게 기사를 썼다.
양특검보의 이런 언론플레이는 적중했다. ‘일타삼피’의 효과를 낸 것. 우선 최특검은 이때 이후 기자들의 접근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검찰로 돌아가겠다”며 씩씩대던 파견검사들은 자신 때문에 팀이 깨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정상출근했다. 기밀을 흘리던 ‘내부자’는 이날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양특검보는 이런 사람이다. 법원이 정일순사장에 대한 영장을 처음으로 기각한 11월17일 전체 수사팀을 모아 공식기자회견을 열고 법원과 청와대를 자극한 것도 그의 작품.
10여년의 검사시절 대부분을 정통 수사부서에서 보낸 베테랑 검사출신답게 양특검보는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다. 상대방의 ‘힘의 중심부’가 무엇인지를 알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그것을 무너뜨릴 줄 아는 인물이다.
그가 이번 사건에서 직시한 힘의 중심부는 ‘라스포사 동맹’에서 연결부분에 있는 정일순사장이었다. 비록 구속에는 실패했지만 양특검보는 “영장청구로 효율적으로 적진을 교란하는 데는 성공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최특검과 그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최특검이 꼿꼿한 판사생활과 시민단체활동을 통해 때묻지 않은 이상을 지켜온 이상주의자라면 양특검보는 거악(巨惡)과의 싸움을 통해 현실에 기반한 전략적 마인드를 갖춘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양특검보는 경복고-한양대 법대를 나와 사시 23회에 합격, 법조계에 발을 디뎠다. 93, 94년 서울지검 검사시절 광운대 입시부정, 국방부 포탄도입 사기사건, 장영자씨 2차 어음부도사건 등 대형사건을 파헤쳤다. 이후 해남지청장을 거쳐 서울지검 외사부 부부장으로 있다가 96년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로 사표를 내고 개업했다.
비슷한 시기에 법복을 벗은 판사출신 김종훈변호사와는 막역한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