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7월30일 토요일 오후 3시 광주 북구청에서 김태홍 광주시정무부시장(57·당시 광주 북구청장)과 이재용 대구시남구청장(46)이 만났다.
이날 만남은 이청장이 ‘전격적으로’ 광주를 방문해 이뤄졌다. 김태홍부시장은 깡마른 체구에 젊어 보이는 사람이 구청장실로 들어오기에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이청장은 “대구 남구청장입니다. 한 번 찾아 뵙고 싶었는데 오늘 광주까지 달려왔습니다”고 말했다.
호남 구청장과 영남 구청장은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맞대면했다. 두 사람은 ‘동서 갈등’을 풀어보자고 다짐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다음해 2월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19명이 참여한 최초의 기초자치단체장 모임인 ‘머슴골’이 탄생했다.
김태홍부시장은 한국일보 견습기자(70년 입사) 출신이다. 80년 기자협회장으로 5공 정권에 맞서 언론자유운동을 펴던 그는 구속되었다가 강제 해직당했다. 86년에는 월간 ‘말’지의 ‘보도지침’ 보도 관여로 또다시 구속되었고 이듬해 1회 가톨릭언론대상을 수상했으며, 88년에는 한겨레신문 창간멤버로 참여했다.
이재용청장은 서울대 치대 출신의 치과의사. 청년시절 본업보다는 연극활동에 열성적이었고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집행위원장으로 환경운동을 해 왔다.
전혀 다른 길을 걸어 온 두 사람이었지만 사회운동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강한 추진력에 반해 가까워졌다고 한다. 두 사람은 틈나는 대로 만났다. 김부시장은 대구를 30여 차례 찾았고 이청장도 그만큼 광주를 방문했다. 96년 의형제를 맺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역의 문화-예술인, 시민운동가들을 소개해 주며 우정을 쌓아갔다.
김부시장과 이청장은 지역 사회단체들을 대상으로 영호남 교류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선해 왔다는 평을 듣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지리산에서 470여명의 시각장애인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영호남지역 시각장애인 등반대회’를 함께 이끌어 가기도 했다.
올해 김부시장은 대구의 영남일보와 광주-대구 초등학생 40명 교환 홈스테이사업을 공동 주최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부시장은 이 행사를 4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광주사람과 대구사람이 자주 만나는 것이 서로 친해지는 첫걸음이라고 김부시장은 믿고 있다.
11월26일 오후 5시 대구 남구 프린스호텔에서 김부시장의 저서 ‘작은 만족이 아름답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청장이 김부시장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문곤 대구예총회장 등 대구의 많은 인사들이 김부시장을 따뜻하게 맞았다. 이재용청장은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맺은 다짐을 평생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광주 토박이와 대구 토박이의 우정이 아름답게 느껴진 귀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