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심판장’이라 불리는 총선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가에 서서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누구보다 초조히 심판을 기다리는 이들은 여야 정당일 것이다. ‘정치가 없다’는 비난이 거셌던 정권교체후 2년여의 세월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어떤 것일지 두렵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판의 대상은 이들만이 아니다. 역대정권, 즉 5공-6공-YS정부하 인사들(정확히는 현재 여야에 속하지 않은 인사들)도 명예회복을 내걸고 대거 내년 총선에 출마, 유권자의 심판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역대정권 인사들이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는 땅은 과거 정권의 산실이었던 영남권. 5-6공 인사 대부분은 TK(대구-경북)지역, YS쪽 사람들은 주로 PK(부산-경남)지역에서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들이 영남의 맹주인 한나라당에 맞서 얼마만큼의 폭발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 다만 선거구제 변경 여부가 최대 변수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중선거구제로 가면 이들의 집단세력화나 여야의 이탈세력과의 연합이 수월해져 위력이 배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5.6공 인사
5공 인사들을 지칭하는 이른바 ‘J그룹’(J는 전두환전대통령의 이니셜)은 현재까지는 ‘각개약진’을 택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 “신당을 만들 생각이 없다”는 전전대통령의 발언은 아직은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대표주자로는 장세동전안기부장과 정호용전의원, 허화평-허삼수-허문도씨 등 이른바 ‘3허’를 꼽을 수 있다. 이들 외에도 10명 이상의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J2’ 또는 ‘리틀J’로 불리는 장씨는 “총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런 것은 묻지 말라” 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서울 송파갑 재선거에 나서려 했던 점으로 미뤄 출마를 기정사실화 하는 이들이 많다. 이 경우 서울의 한 곳이나 대구 중구를 택할 공산이 크다.
반면 장씨에 비해 정전의원이나 허화평 허삼수전의원 등은 매우 적극적이다. 정전의원은 15대 때 백승홍후보에게 패했던 대구 서갑에서 명예회복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허화평, 허삼수씨는 각각 경북 포항북과 부산 중-동에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특히 허화평씨는 15대 때도 44.2%의 득표율로 당선된 바 있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허문도 전통일원장관은 경남 통영- 고성이나 서울 강남지역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전전대통령의 동생 경환씨는 고향인 경남 거창-합천이나 대구 수성을, 동을 중 택일할 가능성이 높다는 후문. 하지만 전전대통령의 아들 재국씨(시공사대표)는 주위의 끈질긴 권유에도 “출판인의 길을 걷겠다”고 불출마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5공 인사 중 3선 관록이 있는 이치호(대구 수성을), 오한구(경북 영양-봉화-울진)전의원과 재선의원을 지낸 김상구(경북 상주)전의원도 재기전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또 이종구 전국방장관은 대구 동갑, 김길부 전병무청장은 대구 북갑 출마가 예상된다. 김진영 전육참총장, 김주호 전농수산장관, 강민창 전치안본부장, 최열곤 전서울시교육감 등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5공 인사들만큼 활발하진 않지만 6공 인사들의 움직임도 관심거리다. 15대 때 낙마한 노재봉전총리와 정해창 전청와대비서실장의 재도전이 점쳐지고 있다. 손주환 전공보처장관은 경남 마산 합포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노전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대구에 출마하리라는 소문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전대통령의 동서인 금진호전의원은 경북 영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TK지역 선거의 관심사는 뭐니뭐니 해도 TK신당(또는 영남신당)의 태동 가능성. 요즘도 이곳 정가에서 는 이수성전총리의 신당창당설, 허화평전의원의 신당추진설 등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10월26일 대구에서는 ‘청년보수당’의 ‘창당을 위한 준비모임’이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모임에 5공 관련 인사들이 포함돼 있어 더욱 그랬다.
여기에다 자민련 TK의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박철언 자민련부총재는 10월20일 “중선거구제 도입 등 정치개혁이 안되면 비장한 각오로 결단할 일이 있을 것”이라며 영남신당 창당 가능성을 시사, 파문을 일으켰다. 박태준 자민련총재도 10월28일 영남권 원내외 위원장들과 회동, 독자세력화를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관측마저 불렀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TK신당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정치세력은 없다. 그만큼 가능성이 작다는 얘기다.
하지만 TK정서상 한나라당후보와 승부해 보려면 중대선거구제 또는 신당 외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신당의 점화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YS쪽 사람들의 총선을 향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인물은 10여명 정도. 여기에다 숙고중인 인사까지 합하면 20여명은 족히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YS를 따랐던 민주계(또는 상도동계) 핵심인사들 중 다수가 한나라당 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으로 활약중인 것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수치다.
YS가 ‘총선전 민산 재건’을 포기하는 바람에 신당 등의 집단세력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졌다. 하지만 이들은 내년 총선에서도 PK지역에 대한 YS의 영향력이 여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총선을 준비중인 인사들 중 상당수는 국민신당이나 한나라당에 있다가 국민회의나 자민련으로 간 인사들의 지역구를 집중공략하고 있다.
YS쪽 사람들의 대표주자는 김광일 전청와대비서실장. 지난 4월 YS의 거제 방문 때부터 그를 그림자처럼 수행했고 지난 5월 부산역 인근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그는 “문민정부의 정통성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겠다”며 출마할 뜻을 분명히 했지만 “아직 지역구를 정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주위 인사들은 민주계 출신으로 국민회의로 간 김운환의원의 지역구인 해운대-기장갑 출마가 유력하다고 귀띔한다.
문정수 전부산시장도 총선을 통한 정계복귀를 노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시장에서 물러난 뒤 부산의 북구지역을 꾸준히 관리해왔다. 그는 무소속 한이헌의원이 건강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한 부산 북- 강서을이나 연제, 수영 등 세곳 중에서 택일할 것으로 정가에서는 보고 있다.
최광 전보건복지부장관은 부산 사하갑에 나설 뜻을 굳혔다. 그는 최근 국민회의 서석재의원의 사무실 인근에 이미 개인사무실을 냈고 1주일에 4, 5일 이상을 부산에 머물고 있다. 그는 “YS가 권력을 갖고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가 이제 와서는 등을 돌리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나는 끝까지 YS의 뜻을 따르겠다”며 서의원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다.
김우석 전내무장관은 경남 진해, 조만후 전안기부1차장은 경남 진주, 조홍래 전청와대정무수석은 경남 의령-함안, 오규석 전기장군수는 해운대-기장을 출마가 점쳐지고 있다. 검사시절부터 민주계 핵심과 가까웠던 최병국변호사는 자민련 차수명의원 지역구인 울산남갑을 노리고 있다. 이밖에 정종욱 전주중대사, 이각범 전청와대정책기획수석, 황활웅 전부산경찰청장, 박청부 전증권감독원장 등의 출마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