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발생 9일째인 1월 19일 소방 관계자들이 외벽이 붕괴된 아파트 31층에서 잔해를 치우고 있다. [동아DB]
“철거비용 가늠 조차 어려워”
건설업계는 초유의 건설 현장 붕괴 사고를 낸 현대산업개발에 대해 “예단하기 어렵지만 수천억 원대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업계는 △이미 투입된 공사비용 △철거비용 △입주자 페널티 비용 △재시공 및 분양비 △기타 금융비용 등이 손실로 집계될 것으로 예상한다.당장 철거비용이 최대 관심사다. 정몽규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1월 17일 “구조안전점검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오면 수(기)분양자 계약 해지는 물론,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재건축 현장 철거비용은 3.3㎡당 30만 원 상당이다. 화정아이파크 전체 연면적이 16만2565㎡에 달해 전면 철거를 할 경우 철거비만 150억 원 안팎에서 형성될 전망이다.
단, 건물 구조가 철거비용을 산정하는 데 변수가 된다. 붕괴가 발생한 201동은 2단지 3개 동과 지하 주차장으로 연결돼 있어 철거 작업이 쉽지 않다. 건설업계는 현장 인근에 상가와 빌라 등이 밀집해 폭파 방식의 철거를 진행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상층부부터 한 층씩 ‘쳐내는 방식’으로 철거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이 정도 고층건물을 철거한 전례가 없어 철거비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입주자 페널티 비용도 1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11월 30일로 예정됐던 847가구 규모의 입주 계획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입주자들은 입주가 지체된 기간만큼 보상금을 받게 된다. 입주를 포기할 경우에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위약금과 이자 등을 받을 수 있다.
입주 지체 보상금은 가구당 1억4000만 원 안팎에서 집행될 것으로 추정된다. 입주 지체 보상금은 입주자가 지급한 계약금과 중도금, 연체료율과 지체 기간을 고려해 결정한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세부 계약 내용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건설업계는 통상적으로 18% 연체료율을 적용한다. 화정아이파크의 평균 분양가는 3.3㎡당 1631만 원이다. 철거 후 재시공까지 2년가량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 만큼 847가구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용면적 84㎡ 입주자는 1억4000만 원가량 보상금을 받게 될 전망이다.
계약을 파기할 경우에는 1억1000만 원 상당을 보상받을 것으로 보인다. 입주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기존 입주예정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계약을 취소하고 분양가의 10%를 위약금으로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분양가가 5억7000만 원인 전용면적 84㎡ 입주자는 위약금 5700만 원을 받는다. ‘계약금과 중도금’(분양가의 50%)에 대한 반환이자도 함께 받을 수 있다. 상법상 이율 6%를 적용하면 반환이자는 5586만 원가량이다.
현대산업개발은 당초 화정아이파크 개발 도급액으로 2557억 원을 책정했다. 건설업계가 현 공정률을 60% 정도로 추산하는 만큼, 지금까지 1500억 원 상당이 투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철거 범위에 따라 향후 재시공 과정에서 기존 도급액에 준하는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게 된다. 앞서 철거와 재시공 등 제반 비용을 합하면 이번 사태로 3000억 원 이상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보중금 돌려줄 테니 떠나주세요”
1월 16일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입구에 HDC현대산업개발 시공 반대 내용을 담은 재건축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현대산업개발은 1월 13일부터 이틀간 전국 65개 공사 현장의 작업을 중단하고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했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미 광주 운암 3단지 재건축정비조합은 착공을 한 달여 앞두고 시공사 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다. 조합 임원들은 시공 계약 해지 의견이 다수일 경우 총회를 통해 계약을 해지할 계획이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원 내부에서도 “시공사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주 시장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관측된다.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재건축사업 일부 조합원은 “보증금 돌려줄 테니 제발 떠나주세요!”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현대산업개발 보이콧을 요구했다. 이로써 2월 4일 예정된 시공사 선정에도 먹구름이 낀 모양새다.
‘사법 리스크’가 기피 여론을 더 부채질할 개연성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영업정지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본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일으켜 공중의 위험을 발생시켰다”고 인정될 경우 등록말소 및 1년 이내 영업정지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광주 학동 재개발 참사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일어난 사건이고, 같은 시공사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측면에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대산업개발에 일정 기간 영업정지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광주 동구청은 이미 지난해 발생한 학동 재개발 참사 건으로 서울시에 8개월 영업정지처분을 내려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다만 근로자의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게 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1월 27일부터 시행되기에 이번 사고에 적용되지 않는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는 공사를 총괄한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처벌받기는 했으나 정몽규 전 회장과는 경우가 다르다는 시각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는 어떻게 다를까
HDC현대산업개발(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1995년 6월 29일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는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다친 한국 역사상 최악의 붕괴 사고다. 대법원은 1996년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업무상 과실치상 △뇌물공여 혐의를 확정해 징역 7년 6월을 선고했다.경찰은 1월 19일 현대산업개발 붕괴 사고와 관련해 현장소장 A(49) 씨 등 직원 10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건축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했다. 이에 정몽규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산업개발 사고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이 전 회장이 지상 4층으로 허가받은 건물을 5층으로 무리하게 증축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청장 등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면서 비롯됐다. 이 전 회장은 시공사를 우성건설에서 삼풍건설산업으로 바꾸면서까지 공사를 강행했다. 반면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현장 관리 소홀 등이 주요 사고 원인으로 꼽힌다.
법조계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유사하게 업무상 과실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광주 학동 재개발 참사 7개월 만에 다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업무상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처벌 대상과 관련해서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곽 변호사는 “현재 거론되는 붕괴 원인이 불량 콘크리트 사용 등임을 고려할 때 처벌 주체는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닌, 공사 현장 관리 책임자인 현장소장과 실질적으로 공사를 진행한 하도급 업체 관리자 등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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