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6

2012.02.27

남녀가 살아서 천국에 가는 시간

‘섹스’

  • 입력2012-02-27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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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가 살아서 천국에 가는 시간

    ‘성교’, 실레, 1915년, 종이에 연필과 구아슈, 빈 레오폴드 박물관 소장.

    살면서 천상의 기쁨을 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섹스다. 하지만 동일한 스타일을 고집한다면 매일 밤 천국을 구경하긴 힘들다. 변강쇠도 매일 밤 같은 인물과 같은 포즈로 섹스를 했다면 최고의 정력남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과감한 스타일로 섹스하는 남녀를 그린 작품이 에곤 실레(1890∼1918)의 ‘성교’다. 남자는 무릎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받치고, 여자는 남자의 허리를 꼭 안은 채 정면을 바라본다. 남자가 입은 붉은색 바지와 쌍을 이루는 조끼는 정장차림임을 나타내며 여자의 상체는 남자의 와이셔츠에 가려졌지만, 배꼽이 드러난 것에서 여자가 벌거벗었음을 암시한다. 여자의 머리 위에 있는 남자의 팔은 여자가 벽에 기댔음을 나타내며, 두 사람이 선 자세로 섹스하는 것을 강조한다.

    작품 속 남자는 실레 자신이며, 여자는 그의 애인 노이첼이다. 실레는 노이첼과 동거하면서 섹스의 모든 것을 배웠다.

    이 작품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두 사람이 정면을 바라보는 것은 섹스 광경을 다른 사람에게 들켰을 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동그랗게 뜬 두 사람의 눈은 죄의식보다 무안함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낸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스타일만 바꾼다고 기쁨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 누워서 하든, 앉아서 하든, 서서 하든, 스타일에 상관없이 일방적이면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기쁨을 얻으려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섹스는 국지전이 아니다. 전방위 체제다. 천국에 갈 때 엘리베이터를 타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천천히 올라간다.

    여자에게 서비스하는 남자를 그린 작품이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도라와 미노타우로스’다. 이 작품은 피카소가 자신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려고 신화를 주제로 제작했다.

    포세이돈이 미노스 왕에게 제물로 쓰라고 흰 황소를 보냈고, 미노스 왕이 나중에 돌려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자 분노한 포세이돈은 왕비 파시파이가 흰 황소와 사랑에 빠지도록 저주를 내린다. 포세이돈의 저주대로 흰 황소를 꾀어낸 파시파이는 얼굴과 꼬리는 황소이고 몸은 인간인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훗날 미노타우로스는 성적 욕구가 강한 남자를 상징한다.

    남녀가 살아서 천국에 가는 시간

    (왼쪽)‘도라와 미노타우로스’, 피카소, 1936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오른쪽)‘가학 피학성 변태 성욕자들의 헌정’, 딕스, 1922년, 종이에 수채, 개인 소장.

    신화를 주제로 성적 능력 과시

    숲 속에서 미노타우로스가 여자의 음부에 얼굴을 대고 있다. 손으로 여자의 팔과 다리를 잡은 것은 남자에게 힘이 있음을 상징한다. 벌거벗은 여자의 벌어진 입과 감은 눈은 성적 황홀감을 나타내며 미노타우로스의 발기된 페니스는 사랑의 쟁취를 의미한다. 또한 미노타우로스의 뿔은 강한 남자임을 강조하며 흑색의 얼굴과 사타구니는 남자의 성욕을 암시한다.

    피카소의 이 작품에서 미노타우로스는 피카소 자신이며 여자는 그의 네 번째 정부(情婦)인 도라 마르다. 피카소는 1926~36년 미노타우로스 작품 시리즈를 통해 마르에 대한 성적 욕구를 표현했다.

    평생 한 스타일만 고집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매번 다른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도 섹스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섹스에 대한 탐닉이 지나치면 평범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섹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을 그린 작품이 오토 딕스(1891~1969)의 ‘가학 피학성 변태 성욕자들의 헌정’이다. 검은색 부츠를 신은 여자는 코르셋 뒤로 채찍을 숨겼고, 허리에 권총을 찬 여자는 모피 코트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여자들 뒤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으며 십자가 아래 탁자에는 피가 흐르고 바닥에는 늑대 가죽이 펼쳐져 있다. 널브러진 도구는 이곳이 고문실임을 나타낸다. 해골과 십자가는 희생자를 암시하면서 위협적인 분위기도 자아낸다.

    딕스의 이 작품에서 채찍과 권총은 변태 성욕자를 의미하며, 해골과 늑대 가죽은 남자를 암시한다. 붉은색 의자 시트와 젊은 여자의 붉은색 스타킹은 가학적 섹스의 상징이다. 젊은 여자의 코르셋 위로 보이는 곧추선 유두는 변태 성욕으로 인한 성적 흥분을 나타낸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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