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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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에선 ‘공보다 돈’

세계 부호들 앞다퉈 구단 사들인 뒤 돈벌이 위해 철저한 경영논리 적용

  • 정윤수 축구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입력2008-01-30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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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어리그에선 ‘공보다 돈’

    삼성은 첼시 유니폼에 ‘SAMSUNG mobile’이라는 문구를 새겨넣는 조건으로 5년 동안 1000억원을 지불한다.

    축구는 자본의 세계화가 도래하기 전부터 세계인을 하나의 시장으로 묶었다. 이 인류사적 제전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밤낮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후대 역사가들이 오늘날의 세계를 해석하려 한다면 선진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뿐 아니라, 그야말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촌의 즐거운 일상이자 볼거리인 축구라는 문화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내가 축구에 관한 글을 쓰는 ‘지금’도 외신은 유럽이라는 거대 축구시장의 흥미로운 뉴스를 타전한다. 그중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소식이 있다. 잉글랜드의 대중잡지 ‘주(Zoo Magazine)’가 여성 독자 2500명에게 ‘못생긴 축구선수 20’이란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다는 보도가 그렇다.

    놀랍게도 동아시아 끝자락인 한국에서는 ‘국민 남동생’으로 불리고, 팀 동료 리오 퍼디낸드가 “90분 내내 공격수인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며 극찬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공격수 웨인 루니가 1위로 꼽혔다. 이 밖에도 반 니스텔루이, 에드윈 반데르 사르, 피터 크라우치, 디르크 카윗, 필리페 센데로스 등이 ‘못생긴’ 리스트에 올랐다. 글쎄, 이들의 면면이 그라운드 안팎에서 보여주는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육체의 향연을 잉글랜드 여성들이 인색하게 평가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런 소식도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 구단은? 이 질문에 대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답은 아마도 맨유일 것이다. 다음으로 잉글랜드의 첼시와 아스널,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와 AC 밀란이 떠오를 것이다. AFP에 따르면 2006~07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가 1년 매출액 2억6300만 파운드(약 4817억원)로 맨유(2억4500만 파운드), 바르셀로나(2억1600만 파운드), 아스널(2억80만 파운드), 유벤투스(1억7370만 파운드), AC 밀란(1억6500만 파운드), 첼시(1억5280만 파운드)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박지성 이영표 덕분에 맨유를 포함한 잉글랜드 구단에 일종의 ‘감정이입’이 돼서 레알 마드리드가 ‘최고 부자’란 사실이 ‘의외’일 수 있지만, 1990년대 ‘축구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세계 최고 리그로 거듭난 오늘의 스페인 리그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레알 마드리드가 있으니 놀랄 일은 아니다. 한때는 ‘은하계 영웅’들로만 선수단을 구성했으니 500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도 적다고 할 수 있다.



    주목할 대목은 2위 맨유의 성취다. 맨유는 수익 면에서 전년 동기 대비 93%의 엄청난 증가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 ‘최고 부자’ 구단이 됐는데, 이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FA컵 중계권료 수입에다 지난 시즌 올드트래포드 홈구장을 7만여 석으로 새 단장하면서 입장료 수입이 증가했고 새 유니폼 스폰서 AIG와의 후원 계약 및 비유럽 지역 투어 등으로 끝없이 시장을 개척하고 확대한 결과다. 맨유가 앞장서서 돌파하는 신(新)시장 ‘사커로드’는 유럽의 여타 명문구단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물론 맨유의 공격적 마케팅이 언제나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1월20일 맨유는 레딩과의 리그 경기를 마친 뒤 곧바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동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자가 제공한 전세기 편으로 움직여 이튿날 알 힐랄과 친선경기를 치르고 1월24일 맨체스터로 귀환하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아스널과 선두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황금 같은 3박4일을 쪼개 알 힐랄의 공격수 사미 알 자베르의 은퇴 기념 친선경기에 ‘팔려가야’ 했느냐”는 팬들의 비난 여론도 거셌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1월20일 ‘스카이 스포츠’ 인터넷판 인터뷰에서 “따뜻한 기후에서 훈련 기회를 가지려 한다”고 해명했으나 진짜 의도는 ‘황금 같은 시간’보다 소중한 ‘황금 그 자체’, 즉 100만 파운드(약 18억원)에 이르는 대전료였다.

    상위 10개 팀 중 8개 팀이 非잉글랜드 자본에 인수

    지금 당장 노벨문학상을 받더라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우루과이의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명저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서 현대축구가 ‘패배에 대한 공포 때문에 주력과 힘의 경연장’으로 변했으며,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가는 서글픈 여행’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맨유 선수들이 일정을 쪼개면서 18억원을 벌기 위해 전세기를 타야 하는 현실은 갈레아노의 한탄이 그저 문학적 수사가 아님을 말해준다.

    어쩌면 지구촌의 억만장자들이 축구 구단을 상대로 벌이는 ‘머니게임’의 행태에서 맨유의 ‘파이트 머니’18억원은 해프닝에 그칠지 모른다. 맨유, 첼시, 리버풀, 애스턴빌라, 블랙번 등 프리미어리그 올 시즌 상위 10위권 팀 중 8개 팀이 비(非)잉글랜드 자본에 넘어갔다. 2003년 7월 러시아의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해 2004년 한 해에만 감독 및 선수 영입에 약 1702억원을 쏟아부은 뒤, 첼시를 ‘황금알 낳는 거위’로 탈바꿈시킨 것을 본 세계 부호들에게 축구가 벤치마킹 대상이 된 것이다. 미국의 스포츠 재벌인 글레이저 가문, 조지 질레트, 태국의 탁신 전 총리 등이 잉글랜드에 잇따라 상륙했다.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지던 아스널도 매각설이 끊이지 않는다.

    억만장자들의 전세기가 시간 남고 돈 남아서 취미삼아 히드로공항에 착륙하는 것은 아닐 게다. 극단적인 예로 2007~08 시즌의 하위권 팀이 받게 될 중계권 수입 분배금이 2005~06 시즌 우승팀 첼시가 받았던 3040만 파운드(약 566억원)와 비슷할 정도다.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꾸려놓은 잉글랜드의 중계권 수익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향후 세 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는 아시아 시장에서 중계권 수익료로만 6억2500만 파운드(약 1조3000억원)를 벌게 된다.

    고액 스타 모셔오느라 연고지 대표선수들 조기은퇴 바람

    억만장자의 회계사들이 계산한 수익률에 따라 감독과 선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최근 경질된 뉴캐슬은 샘 앨러다이스 감독을 비롯해 올 시즌 중도하차한 감독이 8명에 이른다. 구단의 연고 지역 출신이거나 그 지역을 기반으로 축구산업에 뛰어든 구단주들과 달리, 어떤 정서적 연고도 없는 억만장자들에게 축구는 투자와 수익이 반드시 직선으로 연결돼야 하는 산업인 것이다. 한두 명의 고액 스타를 영입하기 위해 지역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노장 선수의 은퇴 시기는 빨라지고 있으며, 그들을 성원하기 위해 구장으로 들어가려는 팬들도 해마다 오르는 입장료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그라운드에선 선수들이 최고의 드리블을 자랑하고 팬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지만, 현대축구는 이것만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다. 공간 감각과 프리킥 능력이 현대축구 관점에선 현저하게 떨어지는 데이비드 베컴의 시장가치가 1억1200만 파운드(약 2126억원)에 이를 만큼 오늘날의 축구는 ‘구경거리’(21세기의 상징격인 문화 및 소비 산업)의 블루오션인 것이다.

    ‘지금’ ‘지구의’ 경기장엔 수십 대의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이를 통해 선수들의 동작은 지구통합 시대의 다채널/다매체로 그야말로 땅끝까지 전파된다. 날마다 새로운 구경거리를 찾는 문화소비 시대 한복판에서 축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황금알 그 자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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