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2

2007.11.27

특명! 철새의 계절 인수전염병 막아라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 가능성 … 변종 질병 발생 땐 대재앙, 예방이 최선책

  • 군산·익산·전주·정읍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11-21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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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명! 철새의 계절 인수전염병 막아라
    11월13일 새벽 5시30분, T농장(전북 익산시 함열읍)의 닭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침을 연다. 농장주 L(58)씨는 날마다 닭보다 먼저 일어나 농장 안팎을 소독한다. 계사를 꼼꼼하게 소독하는 건 지난해 11월19일의 기억 때문이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닭 수천 마리가 죽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지난 겨울 L씨의 농장은 조류 인플루엔자(AI·H5N1형)의 습격을 받았다. 닭 6031마리가 AI에 걸려 죽었고, 1억원 넘는 손해를 봤다. L씨 농장에서 3km 떨어진 C씨의 계사(황등면)에서 추가로 AI가 발생하자 익산시는 공포에 휩싸였다.

    전북 최대의 한우 목장이던 정읍시의 E농장은 을씨년스럽다. E농장은 축협에서 구입한 임신우 33두 가운데 91%인 30두가 브루셀라에 감염돼 새끼를 유산했고, 기존의 사육우들에게도 브루셀라가 전염돼 키우던 소 402두를 모두 도축했다. 목장주 E씨와 부인 K씨도 브루셀라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했다.

    “너무나 괴로워 병원에서 살려달라고 외쳤죠. 검사를 여섯 번 받은 뒤에야 브루셀라라는 확진을 받았어요.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 말고도 또 있을 거예요.”(K씨)



    E농장은 브루셀라가 무서워 소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시세의 100%이던 살처분 보상비용이 60%로 줄어들어 소가 브루셀라에 감염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AI와 브루셀라는 인수공통전염병(人獸共通傳染病·주노시스·zoonosis)이다.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중증의 병을 일으키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는 AI, 광우병, 탄저(炭疽), 페스트, 광견병, 우결핵병(牛結核病) 등이 있다. 또한 동물에겐 경증 또는 불현성 감염(不顯性感染)으로 그치지만 사람에겐 중증을 가져오는 브루셀라, 야토병(野兎病), Q열, 그리고 사람에게 발병하는 일은 드물지만 동물에겐 심각한 질병인 구제역(口蹄疫)과 출혈성패혈증(出血性敗血症)도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종(種)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AI는 향후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판데믹[pandemic·특정 전염성 질환이 전 지구로 급속히 확산돼 유행하는 현상. 한정된 지역에서 이질,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는 현상인 ‘에피데믹(epidemic)’의 상대 개념]의 유력한 후보다. 1997년 홍콩 AI(H5N1형)는 감염 환자 18명 가운데 6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변종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던 환자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 AI 변형 독감 대비책 낙제 수준

    “1918년 스페인독감 때 AI로 추정되는 바이러스가 유행해 세계 인구 20억명 가운데 약 5억명이 감염됐고, 4000만~5000만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망자가 1억명이 넘었으리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역임한 고(故) 이종욱 박사가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가 변형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씀한 게 절대 공연한 소리가 아닙니다.”(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양기화 박사)

    “AI는 진화하고 있습니다. 2004~2005년 AI(A/H5N1형)는 1997년 홍콩 AI보다 더 독했죠.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하고 백신을 개발해야 합니다.”(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감염내과)

    AI가 새→사람 감염을 넘어, 사람→사람으로 전파되는 일은 시간문제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은 2006년 1월 영국 위기관리회사 매플크로프트가 제시한 ‘판데믹 위기 세계 전망도’에서, 인도와 함께 판데믹 위기지수(PRI) 공동 6위에 오를 만큼 전염병 발생 위험과 확산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분류됐다. 그럼에도 판데믹 발생을 가정한 위기대처 능력 면에서 여전히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주간동아’ 539호 ‘판데믹 독감 공포 한국은 끄떡없다?’ 제하 기사 참조).

    AI는 ‘기우’가 아닌 ‘현실’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비책은 낙제 수준이다. AI로 추정되는 1918년 스페인독감 때 한반도의 상황을 기록한 일본 경무총감부의 통계는 충격적이다. “조선인 742만명이 독감에 걸려 14만명이 사망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강타한 1918년 스페인독감이 과학자들의 추정대로 AI이고, 경무총감부의 기록이 팩트(fact)라면 한국은 벌써부터 ‘AI 재앙’을 겪은 셈이다. 미국 의학협회지 ‘JAMA’ 1919년 4월호도 “일본에서 정확한 자료를 입수하지 못해 사망자 수는 알 수 없지만, 인플루엔자가 1918년 한반도를 강타했다”고 적고 있다. ‘매일신보’ 1918년 11월9일자 기사도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감기가 의주, 신의주, 용암포, 철산, 정주, 박천, 희천, 진남포, 성천군, 중화군, 강동군, 개천군, 통강군, 강서군 등 각 군에 전염돼 많은 사망자를 냈다. 포병공장에서도 7000명이 결근했고, 철도원에서도 7500명이 결근해 운송에 차질이 생겼다. 공주에서도 1만1800명이 감기에 감염됐고, 목포의 경우는 총인구 4531명 중 580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원산에서는 1만명이 걸렸다.”

    11월12일 오전 7시30분, 전북 군산시 금강 하구(금강호). 백주(白洲·모래톱)는 새들의 안식처다. 고니, 갈매기, 청둥오리, 고방오리가 앞다투어 아침을 연다. 아침 강변(江邊)은 고즈넉하면서도 분주하다. 바로 이 철새 녀석들이 AI를 한반도로 옮겨오는 ‘주범’으로 의심된다. 중국 칭하이성 칭하이호의 오리가 한국과 일본으로 AI를 나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5월 중국→11월 한국→12월 일본’ 순서로 AI가 발생한 탓이다.

    “철새가 AI를 텃새(까치 등)에게 옮기고 텃새가 닭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에서 AI가 발병한 곳은 대부분 철새도래지 인근이에요. 고병원성 AI뿐 아니라 저병원성 AI도 가금류에 순환 감염되면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장형관 전북대 교수·조류질병학)

    익산시청 정광수 축산팀장도 T농장의 L씨처럼 지난 겨울을 잊지 못한다. 그는 T농장에서 AI가 발병한 지난해 11월 닭 76만 마리, 오리 131마리, 돼지 446마리를 죽여 땅에 묻는 작업을 지휘했다. 당국에선 가스를 이용해 가축의 숨통을 끊으라고 가르쳐줬으나, 그 방식으로는 녀석들이 좀처럼 죽지 않았다.

    “가축을 죽이는 방법부터 국가에서 연구해야 할 것 같아요. AI는 예찰이 중요한데, 현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올 겨울 익산에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정광수 축산팀장)

    76만여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닭과의 전쟁을 벌이던 이들은 땀으로 흥건한 방역복을 벗고 마스크만 쓴 채 포대에 닭을 담아 질식사시켰다. 지방자치단체의 현실로는 방역의 ABC를 지키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방역지침에는 살처분자는 살처분에 참가하기 전 치료제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독감 백신주사를 맞은 뒤 바이러스 침투를 막는 고글, 장화, 마스크, 방역복, 장갑을 착용하도록 돼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재완 의원(한나라당)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는 2007년 1월 AI가 발생한 전북 익산시 함라면의 육군 ·#52059;·#52059;부대에서 1월26일 단체 채혈을 했다. 군인들도 방역 활동에 참여했는데, AI 예방지침은 AI 관련 가금류 살처분 종사자 및 방역요원은 채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스크만 쓴 채 살처분에 참가한 공무원 군인 경찰 자원봉사자 가운데 무증상 감염자 수를 둘러싼 지적이 의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당국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합니다. 단체 채혈을 강행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죠. 전염병의 경우, 유비무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박재완 의원)

    악몽의 지난 겨울 … 당국 안전불감증 여전

    적십자사의 안전불감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브루셀라 병력자인 전북 정읍시의 A씨는 142회(발병 인지 전 및 치료 후 포함)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헌혈했다. A씨의 혈액은 모두 ‘분획’ 목적으로 출고됐는데, 분획은 혈액제제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는 뜻이다. 적십자사가 브루셀라에 감염된 A씨의 혈액을 헌혈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법정전염병 병력자는 헌혈유보군에 넣어 관리하는 게 맞는데, 왜 그런 식으로 혈액을 다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전북대 백병걸 교수·수의공중보건학)

    브루셀라는 소 돼지 염소 개에게서 발병하는 2종 가축전염병이자,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제3군 법정전염병이다. 소와의 접촉이 빈번한 농장 및 도축장 종사자, 수의사, 인공수정사 등에게서 주로 나타나며, 2002년 이후 499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실제 브루셀라를 앓은 환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브루셀라 감염 소는 2002년 845두, 2005년 1만7690두, 2006년 2만5454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브루셀라 감염 소의 살처분 보상비는 2003년 40억원에서 2006년 1700억원으로 증가했는데, “경제 손실 규모가 연간 6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분석된다.”(전북대 수의대)

    살처분 보상비는 2006년 11월 이전엔 소값의 100%였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예산문제 등으로 2006년 11월 이후 80%, 올 4월엔 60%로 축소됐다. 브루셀라 감염 의심 소가 이따금 국민의 식탁에 오른 것은 줄어든 보상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브루셀라 감염 사실을 숨긴 채 도축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는 게 농민들의 얘기다. 일부 지역에선 가짜 브루셀라 검사증명서가 유통되고, 소를 거래 및 도축할 때 필요한 귀표(耳標)도 매매됐다. 기르던 소가 브루셀라에 감염된 전북 거주 농민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브루셀라 재발 위험 때문에 재입식을 못하겠어요. 방역을 철저하게 하는 주변 농가에서도 발병하는 것을 보면 겁이 나요. 브루셀라 발병 시 받게 되는 보상비율 60%로는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죠.”(농민 A씨)

    “8월에 소들이 브루셀라에 감염됐습니다. 우사를 새로 짓고 당국 지시대로 방역했는데도 그렇게 됐습니다. 방역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농민 B씨)

    전북대서 인수공통전염병 본격 연구 시작

    당국은 축산 농가의 피해를 우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지만, 브루셀라의 확대는 꽤 심각한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잠재적이라면, 브루셀라의 위험은 현실적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전국에서 사육되는 소를 모두 조사한 뒤 감염 소를 살처분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온다. “인수공통전염병인 우결핵병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송희종 전북대 교수·수의전염병학)는 지적이다.

    “나는 쇠고기를 절대로 날것으로 먹지 않아요. 생고기는 현재의 브루셀라 방역 시스템으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살처분만으로는 브루셀라를 막을 수 없다고 봅니다. 백신 투여를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백병걸 교수)

    인수공통전염병 가운데 치사율이 가장 높은 것은 인간광우병(vCJD·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다. 인간광우병은 발병하면 1~2년 안에 100% 사망한다. 치사율이 높은 것은 바이러스처럼 전염되는 ‘프리온’ 때문인데, 프리온이 세포를 파괴하고 뇌를 스펀지처럼 만든다. 사슴의 프리온 질병인 광녹병(CWD·사슴만성소모성 질병)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광녹병 우려로 수입이 중단된 북미산 엘크의 뿔이 중국에서 러시아산으로 세탁된 뒤 약재로 수입되는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엘크를 사냥해 먹었다가 광녹병에 걸린 예가 있습니다. 그래서 WHO는 광녹병에 걸린 사슴을 먹거나 가축 사료로 쓰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양기화 박사)

    2002~2006년 질병별 총진료비 증가율 2, 3위는 인수공통전염병인 브루셀라와 Q열이다. 브루셀라는 가축과 접촉이 많은 고위험 그룹뿐 아니라, 애완동물 보호자나 일반인의 발병도 증가세에 있다. ‘털진드기’가 사람을 물어서 생기는 쯔쯔가무시 환자도 2000년 1758명에서 2006년 648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도시에 서식하는 빨간집모기가 매개체 구실을 하는 웨스트나일바이러스의 대유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종을 넘나들면서 변이가 일어나면 치명적이 될 수 있습니다. 동물에서 유래되는 전염병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동물 단계에서 예방하는 것입니다. 돼지에게 일본뇌염 백신을 맞힌 게 대표적인 예죠. 의학계와 수의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양기화 박사)

    그동안 한국에는 인수공통전염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전북대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동물난치병연구소를 꾸릴 계획이다. 연구동 설계비, 교수 연구비 등이 2008년부터 지원된다. 전북대 의대·수의대·자연대·공대 교수들이 참여한 동물난치병연구소의 소장은 백병걸 교수가 맡았다. 서거석 전북대 총장은 “동물난치병연구소를 아시아 최고 수준의 인수공통전염병 연구기관으로 키워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특명! 철새의 계절 인수전염병 막아라
    양기화 박사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역임한 고(故) 이종욱 박사가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가 변형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씀한 게 절대 공연한 소리가 아닙니다.”

    특명! 철새의 계절 인수전염병 막아라
    백병걸 교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동물난치병연구소가, 그것도 정부 예산으로 세워진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브루셀라와 관련해서는 3년 안에 살처분이 아닌 다른 해결 책을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돈을 허투루 썼다는 소리가 나와선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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